지난해 전 세계적 화두 중 하나는 ‘실리콘밸리 버블론’이었다. 모바일·인터넷 서비스의 가치가 지나치게 높게 매겨졌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고 생각했다. 실리콘밸리 회사들 중 지나치게 고평가되어 있는 곳들도 분명 있다. 하지만 적정가치 대비 저평가된 곳들도 많다고 생각했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 유저가 반복 이용하는 서비스(유저가 효용을 느끼는 서비스)들이 꽤 많다.
- Exit 채널로서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등이 건재하다.
- 훌륭한 인재들이 혁신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이 생각은 코로나19 시대를 경험하면서 전면적으로 바뀌었다. 실리콘밸리가 아니라 전혀 다른 곳에 버블이 껴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4군데에 껴 있었던 것 같다.
1. 사람들의 이동에 버블이 껴 있었다.
원격 회의, 협업 툴은 2~3년 전부터 핫했다. 사람들의 물리적 이동 없이도 협업이 가능한 인프라는 이미 갖춰져 있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동했다. 원격으로 미팅이 가능해도, 만나지 않고도 미팅·업무가 가능한 환경이 도래했음에도 사람들은 더더욱 많이 이동했다.
오히려 실리콘밸리의 회사들은 원격근무를 점차 도입해가던 중이었다. 도로가 막히고 업무 효율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으니 금요일에는 집에서 일을 하는 식이었다. Zoom+슬랙+노션을 활용한 원격 협업을 늘려나가며 사람들의 이동량을 줄여나갔다.
반면 전통적 회사들은 ‘해외 컨퍼런스’ ‘글로벌 개척’ ‘벤치마킹 스터디’ ‘해외시장 탐방’ 등의 목적으로 이동량을 계속 늘려나갔다. 만나야 비즈니스가 성사된다는 과거 방식의 사고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코로나19 사태는 이런 이동에 꽤 많은 버블이 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동하지 않아도 충분히 협업이 가능하다. 재택근무의 비중을 늘려도 준비만 되어 있으면 퍼포먼스가 나왔다. 만나지 않아도 계약 체결까지 가능하다(향후 AR+VR이 조합된 기술이 보편화되면 온라인으로도 오프라인 만남 이상의 효과를 구현하는 미팅을 만들어 낼 것 같다).
결국 이동에 대한 버블이 걷히며 비즈니스/학술 관점의 불필요한 이동은 사라질 것이다. 다소 과했던(?) 이동량을 기준으로 세팅되었던 비즈니스들은 재조정될 것이다. 그에 반하여 온라인·모바일 협업툴과 게임 등의 즐길 거리는 더 빠르게 성장해 나갈 것이다.
2. 오프라인에 버블이 껴 있었다.
지난 3~5년간 실리콘밸리를 관통했던 화두는 빅데이터, 머신러닝, 딥러닝, AI, 그리고 B2B SaaS 시리즈였다. 언택트, 온택트 비즈니스는 사실 일상이었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O2O가 강세였다. 순수한 온라인·모바일 서비스 및 AI 기반 서비스보다는, 오프라인이 연계된 온라인·모바일 서비스가 많았다. 오프라인 위주이되 온라인으로 고객을 모집해 나가는 오프라인 중심 온라인 서비스도 많이 나왔다.
요즘 드는 생각은 오프라인에 버블이 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비약이 껴 있는 생각일 수도 있지만, 순수 온라인·모바일 서비스일수록 가격이 낮고 Tech Savvy할 수밖에 없다(대신 차별화를 콘텐츠력이나 데이터, 혹은 분석으로밖에 낼 수 없다). 온-오프라인 연계 서비스도, 온라인 중심일수록 가격이 낮고 Tech Savvy 해지는데 비해, 오프라인 비중이 높아질수록 가격은 높고 사람·관계 중심적으로 변한다.
여러 API를 조합하면 충분히 온라인·모바일에서 훌륭한 경험을 줄 수 있는 분야인데도 오프라인 비중이 높았던 곳들은,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에 급속한 온라인화를 경험할 것이라 생각한다.
더불어 이·미용 등 오프라인에서 제공될 수밖에 없는 업종들은 공유 미용실 등을 활용해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파티션 등을 활용해 사람 간 접촉을 최대한 줄여나가는 방향으로 진화해 나가지 않을까 싶다. 넓은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형태가 아니라, 좁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필요한 서비스만을 받는 형태로 진화해 나가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결국 오프라인의 버블이 걷히며 공간을 공유하고 효율을 극대화하여 자산 부담을 최소화하는 형태로 진화하지 않을까 싶다.
여담으로 Bay Area에서는 곧 머리 자르는 로봇이 나올 것 같다. 코로나19 시기에 ‘머리 깎을 수 없어 힘들다’ 했던 사람들이 많았는데, 꽤 많은 팀이 이 문제를 인지하여 로봇으로 해결하고 있으리라 확신한다.
동시에 코로나19 이전 시대에는 ‘필요 이상으로 집이 아닌 공간에 오래 머물렀던 버블’도 있었던 것 같다. 네트워킹의 빈도를 높일수록, 문화생활의 비중을 높일수록 집을 비우는 시간은 상대적으로 커졌다. 하지만 코로나19 시대로 접어들며 집에 머무는 시간이 증가했다. 집에서도 여러 툴을 통해 네트워킹할 수 있기에, 정말 필요한 만남만 오프라인으로 하고 그 외는 온라인으로 하면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는 깨달음이 생겨난 것 같다.
이는 이용하는 가전제품의 퀄리티를 높이면 영화관·미술관 등의 문화생활 소비를 줄여도 그 이상의 효용을 느낄 수 있다는 깨달음으로 나아간다. 무엇보다 집과 가족이 중심이 되는 삶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넓게 전파되었다. 결국 코로나19 이후에는 집과 가족 이후의 산업이 더욱 흥하게 되리라 생각한다.
3. 직급에 버블이 껴 있었다
과거 회사에 다닐 때도 많이 했던 생각인데, 연차가 높다는 이유만으로 실제 실력과 관계없이 누구는 이사님이 되고, 누구는 주니어 컨설턴트로밖에 승진이 안 된다는 것이 매우 비합리적이었다. 나와 유사한 시기에 입사한 친구들 중에도 이제야 파트너로 승진한 사람들이 있다. 이들 중 일부는 3~4년 전에 충분히 승진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여러 산업에서 실력과 직급의 불균형이 보인다. 특히나 모바일·온라인은 굉장히 빠르게 움직이고, 경험 자산보다는 데이터 자산이 더 중요시된다(데이터가 경험을 이길 때가 많다). 연차로 인한 직급보다는 역량과 만들어 낼 수 있는 임팩트가 직급을 결정하는 기준이 되어간다.
모바일·온라인 스타트업은 상대적으로 연차가 적은 사람도 중역이 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젊은 스타트업의 기업 가치가 기존 회사들의 가치를 상회하는 경우도 왕왕 생겨나고 있다. 특히 실리콘밸리의 경우 3~4년 만에 10조, 20조, 50조 회사로 성장하는 곳도 많아지면서, 30대인데 웬만한 회사의 중역 이상으로 성장한 사람들이 늘어났다.
상대적으로 연차가 직급을 결정하는 문화가 유지되었던 한국도 변하지 않을까 싶다. 실력과 임팩트 위주로 직급이 결정되는 상황이 일상화 되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4. 생산에 버블이 껴 있었다.
요즘은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필요로 했던 자원 이상으로 소비하며 살아왔다는 생각을 한다. 필요 이상으로 이동하고, 필요 이상으로 만나고, 필요 이상으로 소비하며 생산 시설을 필요 이상으로 돌려왔다. 생산이 줄어드니 하늘과 물이 깨끗해졌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은 ‘사람의 지나친 활동’이 결국 문제였음을 깨닫고 있다.
물론, 정말 필요한 제품이 국경을 넘지 못하는 이 상황은 빠르게 개선되어야 한다. 다만 불필요하게 많이 생산되었던 부분은 재조정되지 않을까 싶다.
요즘 주가가 고공 행진하는 회사들은 한때 버블론의 중심에 있었던 회사들이다. 실리콘밸리 발 서비스의 핵심은, 더 저렴한 가격에 더 빠르고 우수한 서비스·제품을 정확히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곧 실질적 가치 제공에 집중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래서 코로나19로 인해 여러 버블이 빠져나가는 상황에서도 더 가파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소위 ‘뉴노멀’은 이들이 중심이 될 것이다. 상대적으로 온라인·모바일화가 덜했던 의료·교육·법률 등의 분야에서도 제2의 아마존이 등장하며 크게 성장하는 세상이 되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 트렌드는 스타트업 또는 테크사가 리드하게 될 것이다.
어떤 나라의 스타트업이 주인공이 될까? 이것은 팀 역량에 달려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