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민정권 때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이 검찰 수사로 구속되고, 국민의 정권 때 역시 대통령의 아들인 김홍일 씨가 검찰 수사로 구속되고, 참여정부 때 대통령의 최측근 오른팔인 안희정이 역시 검찰 수사로 구속되고, 이명박 정권 때 대통령이 형인 이상득 씨가 검찰 수사로 구속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내 기억으로 당시 정권과 법무장관이 나서서 대통령의 혈육과 최측근 인사를 수사하는 검사들을 대놓고 좌천시키거나 정권 어용지식인 지지층이 나서서 검찰의 무리한 수사를 규탄하고 시위까지 해가며 무리한 수사 중단과 검찰 개혁을 외친 걸 본 적이 없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권 때는 공평무사하던 검찰이 문재인 정권 들어와서 선출된 권력을 욕보이고 권력을 탐하는 적폐 기득권 집단이 된 것일까? 아니면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에 대해 이제 대놓고 권력이 개입해서 무마시키는 게 손쉽게 될 정도로 사회가 후퇴한 것일까?
박근혜 정권 당시,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에 살아 있는 권력이 대놓고 간섭하는 것에 저항했던 채동욱과 윤석열을 향해 많은 사람이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권력의 부당한 압력과 힘으로 채동욱과 윤석열이 쫓겨나고 좌천되었을 때 많은 사람이 분노하고 살아 있는 권력에 저항하던 그 두 사람을 지지하고 응원해 주었다.
그런데 그 두 사람 중 윤석열이 똑같이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하자 그때 박수와 응원을 아끼지 않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윤석열이 반역을 하고 나라를 어지럽히며 스스로 권력화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전횡을 일삼으며 억울한 사람들 괴롭히는 조폭이 되었다고 침을 뱉고 돌을 던진다.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저항이, 그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정의가 될 수도 있고 불의가 될 수도 있는 것일까? 박근혜 때는 정의로웠던 윤석열이 문재인 때는 추악한 권력욕의 화신으로 타락한 것일까? 당장 문재인 대통령은 윤석열을 검찰총장에 임명하면서 무엇보다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엄정한 감시와 추상같은 엄정한 대응을 그렇게 당부했는데?
검찰의 수사 대상이던 조국과 청와대 참모들이 재판도 아직 확정 안 됐고 검찰의 무리한 수사에 의한 것이라 그렇다고 한다. 박근혜 정권 당시 채동욱과 윤석열도 아직 확정판결도 안 된 사안으로 단지 의혹과 단서만으로 여기저기 수사했다. 그럼에도 그때 수많은 사람은 그냥 덮어놓고 응원하고 박수 보냈는데?
윤석열과 이번에 좌천된 그의 측근 검사들이 현 정권 초기, 과거 이명박근혜 인사들을 수사하고 구속할 때, 소위 현재 대표적 검찰 개혁 대상으로 꼽히는 검찰 적폐 관행들이 수도 없이 등장했다. 박근혜 본인과 최순실, 정유라, 이명박, 양승태 그리고 이명박근혜 정권 당시 수많은 청와대 내각 인사를 수사할 때 일상적으로 피의사실 공표, 공개 포토라인, 별건수사, 심야조사, 수사 장기화, 무죄추정 원칙 무시, 소위 검언유착으로 불리는 언론의 검찰발 받아쓰기 등등 소위 이런 검찰의 적폐 관행이 아주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발생했다.
그때는 수많은 사람이 그러한 검찰의 적폐 관행에 아무런 문제의식도 문제 제기도 없이 오로지 검찰의 전 정권 적폐 수사에 열렬한 박수와 환호를 보내기 바빴다. 그런데 그렇게 박수받고 환호받던 동일한 조직과 인물들이 수사의 대상을 현 정권 인사로 바꾸자마자 검찰의 동일한 수사 관행은 하나에서 열까지 일일이 규탄받고 타도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현 정권 인사 의혹에 대한 어떠한 보도도 검언유착에 의한 검찰발 받아쓰기이며, 피의사실 공표에 의한 인권 유린이고, 무죄추정 원칙을 중대하게 위반한 권력 남용과 잔인한 폭력행위가 되어 버렸다. 이명박근혜 정권 사람들은 원래 나쁘고 사악한 사람들이니 그렇게 당해도 싼 거고 현 정권 인사들은 정의롭고 착한 사람들이니 동일한 대접을 받으면 안 되기 때문인 것일까? 정말 이런 거라면 이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고 공정하게 적용되는 법이라는 근대 사회의 기본 원칙과 정면으로 부정하는 시대착오적인 봉건시대 전래동화 수준의 유아적 도덕 윤리관일 뿐이다.
나는 무척 혼란스럽다. 내가 생각하기에 사회를 지탱하는 상식과 윤리, 규범, 논리는 어떤 상황에서든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상황과 대상에 따라 변한다면 그건 더 이상 우리가 추가해야 할 가치와 정의는 원시적인 힘과 세력밖에 남지 않는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물론 현실 정치가 완전히 이상과 고상한 가치만을 추구하는 게 불가능한 건 사실이고 어느 정도의 유연성과 융통성이 필요한 것도 맞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의 문제지 애초에 자신들이 남을 비판하던 그 기준에 대해 이 정도로 대놓고 노골적으로 자신들은 열외이고 다른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대놓고 주장한다면 이제 어디서 자신들이 국민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정당성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당장 눈앞의 위기를 모면하고 정파적 이익과 위해 혹은 순간의 정치적 이해득실과 정무적 판단 때문에 그동안 남들을 준엄하게 비판한 기준과 잣대를 스스로 망가뜨린다면 이는 결국 장기적으로 반드시 자신들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오게 되고 그때 되면 이에 상응하는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될 수 밖에 없다. 과거 정권을 쥐고 권력을 가졌던 모두가 자신만은 예외라고 생각했지만 단 한 번도 예외는 없었고, 시간이 지나면 결국 다들 심판의 순간을 맞았다.
제일 이해가 안 가는 게 ‘조국과 그 일가, 그리고 현재 검찰 수사 대상인 정권 인사들이 받는 여러 의혹을 검찰의 칼날로부터 무리해가며 지켜주는 게 미래에 받게 될 그 모든 심판과 대가를 감수할 만큼 훨씬 가치 있는 것일까?’라는 점이다. 정말 억울하고 검찰 수사가 부당한 게 맞는 거라면 사법부의 판단을 지켜봐도 되지 않았을까?
말이 나와서 하는 이야기인데 아직 판결이 나오지 않았으니 무죄추정의 원칙을 준수해야 하고, 검찰이 증거를 조작해서 억울한 사람들을 만든다고 생각한다면 최종 대법원판결도 나지 않은 박근혜, 최순실 그리고 이명박근혜 인사도 유죄라고 단정 지어서는 안 되며 검찰의 증거조작으로 억울하게 옥살이한다고 똑같이 생각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실제로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이미 훨씬 오래전, 한 1–2년 전부터 태극기 들고 매주 광화문에 정기적으로 모여 부당한 권력과 사악한 검찰의 음모에 맞선다고 주장하기는 한다.
원문: 한청훤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