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한 가지 분야에 관해 10분 이상 이야기할 수 있습니까?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자 합니다. 요즘 나 자신에게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업무에 관련된 것이든, 즐기는 취미든, 현재 관심을 가진 분야든 한 가지에 관해 10분 이상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덕업일치라는 말이 있습니다. 덕질과 직업이 일치했다는 의미의 신조어입니다. 한 분야에서 깊이 있는 식견을 가진 사람을 뜻하는 ‘덕후’라는 단어에 직업을 합친 단어로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경우를 이르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좋아하는 일이 밥 먹여주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을 찾고, 좋아해서 몰입하니 잘하게 되고, 잘하는 것에 경제적 가치가 더해지는 그때가 덕업일치가 이루어지는 순간입니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지고, 자신의 행복이라는 가치가 우선이 되는 이때 덕업일치 할 수 있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고, 한편으론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글의 서두에서 던진 질문과 ‘덕업일치’라는 키워드를 한 가지 개념, ‘전문성’으로 엮어보고자 합니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따르면 ‘전문성(Expertise)’이란 “어떤 영역에서 보통 사람이 흔히 할 수 있는 수준 이상의 수행 능력을 보이는 것으로 연구자들은 전문성이 매우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획득될 수 있다고 본다.”라고 정의합니다.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것에 몰입하고, 잘하게 되는 것, 그리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10분 이상 막힘없이 이야기할 수 있을 때 최소한 전문성이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제게 있어 ‘전문성’이라는 것은 도무지 잡히지 않는 난제(難題)입니다. 부끄러운 사실입니다만, 대학 입학 후 20년 가까이 고민해왔음에도 아직 확실한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전문성을 찾기 위한 고민에 더랩에이치 김호 대표가 제시한 구체적인 방법을 활용해보고자 합니다. 김호 대표는 전문성을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의 연결지점이라고 표현합니다.
1. 최고의 경험 적어보기 Winning Experience Log
보통 이력서에 적는 직장, 직급(또는 직책), 담당 업무 등이 아닌 살아오면서 했던 최고의 경험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봅니다. 직장 생활이든, 학창 시절이든, 개인적인 취미 활동이든 삶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경험을 적어봅니다.
단 이 일을 한두 번으로 끝내지 않고, 몇 개월간 꾸준히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들 사이에서 연결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김호 대표는 “독특하고 차별화되는 전문성은 기존의 카테고리에서 나오기보다는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것의 연결성에서 나온다”고 강조했습니다.
2. 약력 만들기 Biography
다섯 가지 E로 시작하는 단어를 통해 나만의 약력을 만들어 봅니다.
- Experiences: 그동안 직장 생활을 했던 경험들은 무엇인가?
- Expertise: 지금 현 상태에서의(혹은 향후 3-5년 이내에) 나의 전문성은 무엇인가? 단 범위를 좁혀서 차별화 포인트를 찾아야 한다.
- Evidence: 나의 전문성을 입증하기 위해 보여줄 수 있는 중요한 성취는 무엇인가? 또는 앞으로 만들어가고자 하는 성취는 무엇인가?
- Education: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특별히 받은 트레이닝은 무엇인가? 자기 분야에서 꾸준히 업데이트하기 위해 스스로 어떤 공부를 하는가?
- Endorser: 나의 전문성에 관해 공개적으로 지지해주거나 증언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누가 있는가?
3. 스스로 다양한 질문을 던져보고 답을 적어보고, 적은 것을 다시 돌아봅니다.
- 예 1: 알랭 드 보통의 The School of Life 커리어 카드 100개 세트 중 “세상의 모든 직업이 같은 연봉이나 복지 체계를 가졌다면 당신을 어떤 직업을 선택하겠는가?”
- 예 2: 박재영 청년의사 주간 – 나만의 top five list (다양한 측면에서 묻고 답하기)
- 예 3: 『에센셜리즘』 저자 그렉 맥커운 – 지금 내 인생에서 단 한 가지의 일만을 할 수 있다면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김호 대표는 “□□□(내 이름) = ?(전문 분야)”을 정하는 데 최소 1년 이상의 지속적인 고민이 필요하며, 향후 10년 이내에 “?(전문 분야)=□□□(내 이름)”으로 만들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으로 시선을 돌려봅니다. 요즘은 자의든 타의든 한 곳에서 한 가지 일만 하면서 살기 어려운 세상입니다. 도서 『일하는 마음』의 저자 제현주 작가는 전문성보다는 탁월성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핵심기술을 자신의 언어로 어떻게 정의하느냐가 자신의 탁월성과 결부된다고 합니다.
전문성이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인정이라면, 탁월함은 자발적인 동기부여를 통해 스스로 쌓아가는 역량이다.
저는 김호 대표가 말하는 전문성과 제현주 작가가 말하는 탁월성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눈에 보이는 경력, 조직이 나에게 원하는 것, 타인의 평가와 시선을 넘어서서 나만의 경험과 기준, 내가 성취하기를 원하는 것을 찾는 것이 ‘탁월한 전문가’가 되는 길이 아닐까요? 글의 서두에서 던진 질문을 조금 바꿔봅니다. 당신은 당신에 관해 10분 이상 이야기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잘못된 판단에 근거해 일자리를 구한 다음에 거기에 그냥 안주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건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 클레이튼 크리스텐슨(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
원문: 낭만직딩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