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생은 유능하거나
회사는 어딜 가나 거기서 거기, 다 똑같다?
회사들이 궁극적으로 풀어야 할 숙제 같다. 그 ‘똑같은’ 범위 안에 들지 않는 것. 그 회사를 왜 다니냐고 물었을 때 ‘회사는 어딜 가나 거기서 거기라서’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후배가 퇴사 의사를 밝힐 때 ‘어차피 어딜 가나 똑같다’라는 말로밖에 붙잡지 못하는 상황이 되지 않도록.
모든 회사는 다 똑같지 않습니다
사람 성향마다 다르겠지만, 나를 가끔 답답하게 하는 반응은 ‘그래도 이게 그나마 낫다’이다. 가령 음식이 너무 맛없다고 했을 때 그래도 아프리카에서 굶어가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이게 낫다 등의 답변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음식이 아예 없는 것보다 맛없는 음식이 낫긴 하다. 맛없는 음식에도 감사해야 한다. 그 긍정적인 마인드, 참 좋다.
하지만 간혹 그런 답변에서 마치 나는 맛있는 음식을 먹을 권리가 없는 것처럼 느껴져서 불쾌할 때가 있다. 맛있는 음식과 맛없는 음식은 엄연히 다르고 맛있는 음식에 대한 갈망과 노력이 잘못된 것이 아닌데 말이다. 마치 현실에 안주하는 것만이 미덕인 양.
회사도 마찬가지다. 90년대생들은 성장 욕구로 충만하다. 그래서 앞길이 턱 막혀있을 때, 시간 낭비하고 있다는 불안감을 느낄 때 이직 욕구를 강하게 느낀다. 그런데 ‘어딜 가나 똑같으니 여기가 낫다’는 말은 즉시 말문을 막아버린다. 정말 모든 회사가 다 똑같을까? 이토록 개인의 성장이 꽉 막혀있는 느낌일까?
최근 이직한 후배를 만난 적이 있다. 우리 회사에 있을 때 그다지 말이 없는 조용한 친구였다. 팀 이동을 해주겠다는데도 퇴사 결단에 대해 흔들림 없이 단호했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만난 후배는 쉴 새 없이 재잘거리며 현 직장 이야기를 하였다. 두 번째 직장이기 때문에 후배는 두 회사 간의 비교가 가능하였고 비록 돈은 덜 받지만 상당히 행복해 보였다.
거기도 좋은 회사였죠… 어디가 더 좋다, 덜 좋다고 말하긴 어려운 것 같아요. 그냥 업무가 저랑 안 맞았던 부분이 컸다고 해두죠.
여기보다 더 좋냐는 말을 이렇게 넘긴 후, 현 직장이 구성원들 간의 평등한 기업문화 형성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후배의 초롱초롱한 눈빛은 이전과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현재 이런 일을 하고 있는데 몇 년 후에는 이러저러한 일을 하고 싶다는 말을 하는 후배의 모습을 보면서, 회사 안에서 꿈을 품게 된 모습을 보았다.
그의 달라진 표정과 성격이 그 어떤 말보다 절대로 모든 회사가 한 사람에게 똑같을 수 없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사실 사람이 제각각인데 월급만 맞춰주면 모든 회사를 다 똑같다고 느끼는 것이 더 이상하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혼자 뒤처지고 있음을 느꼈다.
안정성을 추구하는 이미지에 묻혀버린 90년생의 ‘성장 욕구’
90년생들은 장학금에 전전긍긍하고, 알바와 과외를 뛰며 온갖 자기 계발 및 시험 준비를 병행해왔다. 뭐든 돈만 잘 벌면 된다고 생각했다면 그렇게 치열하게 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자의 반, 타의 반 힘들게 고생한 만큼 내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가 매우 중요해진 사람들이다.
그러다 보니 더 이상 월급만 잘 나오는 것으로 ‘좋은, 오래 다니고 싶은’ 회사를 정의할 수 없는 시대가 도래했다. 직원들에게 이 회사에서 개인 역량으로 무엇을 얻어갈 수 있는지, 무엇으로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지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특히나 사기업에서 직원들의 레쥬메는 입사 전까지만 취업을 목표로 작성되는 것이 아니라 입사 후에도 차곡차곡 쌓이고 채워져 나가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래서 실제 본업무에 필요한 역량을 쌓을 수 있는 시간을 위한 적절한 업무분장, 체계적인 시스템, 성향 및 능력이 어느 정도 반영된 인사배치, 적당한 때에 진급이 되어 직급에 따라 업무성격이 바뀔 수 있도록 극심한 인사적체의 해소, 업무 능력에 따라 늦지 않게 매니저가 되어 주체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는 기회 등이 열려 있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고민과 건의사항을 돈 주는 것에 감사하라, ‘어차피 월급쟁이는 다 거기서 거기야, 여기가 그나마 낫다’라는 말로 묵살시킨다면, 결국 90년생들을 붙잡긴 힘들 수도 있다. 그 말은 ‘지금이 그래도 IMF 때보다 낫다'(무슨 건의만 하면 돌아오는 말)는 말과 함께 비전을 가지고 장기적으로 일을 해나갈 수도 있는 직원들과의 소통을 단절시켜버린다.
그 똑같은 회사들 틈 속에서 우리 회사는 어떻게 달라야 할지를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달라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달라지려면 무엇보다 젊은 직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걸 감사해할 줄 모른다고, 편하게만 일하려 한다고 볼 것이 아니라 들을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조직이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건 내가 젊은 직원이어서가 아니라, 실제로 직급이 올라갈수록 달라질 유인이 적어져서이다.
우리 회사엔 왜 이런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이렇게 많이 쓸까, 왜 이런 것 때문에 야근해야 하나 싶은 업무가 많다. 내 커리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기간 동안 레쥬메에 이런 업무만 잔뜩 쌓인다고 생각하면 민망하기도 하고, 걱정이 앞선다. 이에 관해 회사 선배님께 여쭤본 적이 있다.
외국 회사들 보면 이걸 다 직원들이 직접 하진 않던데요… 그건 전사가 다 아는 사실인데 왜 바뀌지 않는 거죠?
다들 알긴 알지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리에 가면 이건 더 이상 본인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지. 어차피 아래 직원들이 하는 일이잖아. 시키면 또 어떻게든 하고.
직급이 올라갈수록 지킬 것이 많아지고 대하는 윗사람들도 많아지며 튀는 행동을 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리고 ‘그래도 여기가 그나마 낫다’는 자기 위안적 사고방식에 훨씬 더 단련되어 있다. 조직과 업무의 여러 부조리함에 이를 갈던 사람들도 막상 그 자리에 올라가면 벙어리가 되거나 그저 위에만 잘 보이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 되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을 탓하는 것이 아니다. 나라고 다를 것이라는 확신을 못하니까. 하지만 모든 회사가 다 똑같지 않다고 알려주는 변화의 주체는 젊은 직원들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원문: 상추꽃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