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글을 쓸 때 호흡을 가다듬으려고 애를 썼다. 몇 년 전 가쁜 호흡 상태에서 흥분하며 쓴 글이 학교 안에서 필화 비슷한 상황을 연출한 뒤 그런 태도가 더 강해진 것 같다.
그때 나는 글감이 된 학교 내 상황을 담담하게 묘사한다고 나름대로 애를 썼으나, 가쁜 호흡과 흥분 기세를 온전히 숨기지 못한 것 같다. 나는 글에 등장하는 어떤 분에게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으면서 글을 쓸 때 호흡을 가다듬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강하게 깨달았다.
호흡을 가다듬는다는 것은 물리적인 숨쉬기뿐 아니라 심리적인 의식 상태를 조절함을 뜻한다. 글을 쓰다가 문장이 막히는 대목에 이르면 천천히 심호흡을 한다. 문장이 술술 흘러나올 때도 어느 순간에는 글쓰기를 멈추고 숨을 골라야 한다.
글을 촉발한 다양한 소재들의 이면에 깔린 기쁨과 분노, 즐거움과 슬픔, 환희와 절망 같은 갖가지 감정들이 머릿속에 조용히 자리 잡도록 한다. 이때에는 독수리가 높은 곳에서 한눈에 내려다보는 조감(鳥瞰)의 태도가 큰 도움을 준다. 적어도 내 경험에 따르면, 그렇게 호흡을 고르고 감정을 가라앉히고 나면 문장들이 자연스럽게 머리에 떠오른다.
글을 쓰면서 호흡을 가다듬는 일은 문장의 어조, 문체 들을 조절하고 결정하는 문제와 직결된다. 호흡의 완급이나 장단에 따라 단어 선택, 문장들의 길이, 접속사 등 연결 표현이나 부사어와 (보)조사의 쓰임새가 달라진다.
거친 호흡은 대체로 감정과 의식 과잉의 표현을 만들어 낸다. 글 읽는 이에게 메시지를 성급하게 들이대 (강제적으로라도) 안겨 주려는 욕심이 앞서면서 단어가 강경해지고 문장들이 장황해진다. 내 논리를 그럴듯하게 포장하려는 의도가 문맥 사이의 논리성을 뒷받침하는 데 자주 쓰이는 접속 표현의 남용이라는 결과를 가져온다. 부사어, 보조사가 남발된다.
호흡을 가다듬고 글을 쓰는 일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의의를 갖는다. 글 쓰는 자신이 아니라 독자를 좀 더 배려할 수 있다. 쓰는 사람 마음에 따르는 것이 글이지만, 독자와 무관한 글이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독자를 고려하는 글쓰기는 글쓰기의 기본이다. 그래서 호흡을 살피면서 글을 쓴다는 것은 나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독자를 위하는 손쉬운 방법이 된다.
호흡이 가파른 불안정 상태에서 글을 쓰면, 글이 그런 호흡의 주인공인 글 쓰는 이의 기분과 생각에 크게 좌우된다. 성급하고 거친 논리로 자신의 메시지를 독자에게 억지로 떠먹이려는 욕심이 앞선다. 그것은 폭망 글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글에서 다루는 소재로서의 사태나 상황 들을 관조하는 힘도 호흡 가다듬기에서 나온다. 차분한 관조와 응시, 이를 바탕으로 하는 냉철한 분석에 기대 쓰이는 글은 독자에게 설득을 구하고,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메시지를 여유 있게 바라보게 한다. 글을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 사이에 자연스러운 소통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한층 높아지는 것이다.
자신을 흥분에 빠지게 하고, 감정 폭발의 방아쇠를 당겨 화에 이르게 하는 사태나 상황을 만나 그것을 글에서 다루고자 할 때는, 얼마간의 시간을 두고 감정과 생각을 묵혀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편의 글을 통해 독자에게 즉각적이고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마음이 거세게 들수록 이런 자세를 취하는 일이 더 필요하다.
원문: 정은균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