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 수업료(tuition fee)가 도입된 것은 1998년이다. 그 전까지는 대학 및 고등교육은 완전히 무료였다. 생활비만 있으면 되었다. 1998년 수업료 도입 당시 대학이 학생들에게 요구할 수 있는 상한은 연간 최대 천 파운드였다. 현재 환율로 친다면 일 파운드가 이천 원이 조금 안되니, 이백만 원이 조금 안 되는 돈이다.
이것이 2004년에는 최대 삼천 파운드로 올랐다가 2010년에 일년에 최대 구천 파운드(즉, 대학은 연간 등록금을 최대 구천 파운드까지 책정할 수 있다)로 세 배나 껑충 뛰었다.
영국의 경우, 대학학자금을 부모들이 대주는 일은 별로 없다고 한다 (여유가 있는 경우는 물론 내주기도 하겠지만, 일반적으로는. 도리스 레싱의 단편집 <런던 사람들>에 실린 한 단편을 보면 영국 부모들이 자식에 대하여 얼마나 재정적으로 냉정한지를 살짝 엿볼 수 있다. 재작년 은퇴한 할아버지 파트너는 자식들의 학자금을 ‘불쌍해서’ 갚아 주었다는 이야기를 하며, 걔들은 운이 좋은 거야, 라고 했었다).
부모들이 자식들의 짐을 대신 져 주지 않으니, 학자금은 고스란히 사회 초년병들에게 빚으로 남는다. 요즈음은 돈이 없어 못 그러는 경우도 많다지만 대학 입학 시부터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나가는 것이 꽤 일반적이므로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아서 학자금 상환하고 남는 돈으로 생활비를 하여야 한다.
결혼을 하여 주택담보 대출로 집을 구매하는 경우, 공부하느라 진 빚에 집 사느라 진 빚에, 자식이 생기면 거기 돈 들어갈 일 또한 많으니 점심은 늘 집에서 싸 온 치즈샌드위치 따위로 때워야 하는 신세가 되는 거고, 그리고도 빚은 평생 갚아야만 되는 것이다.
하여 그야말로 큰일 난 학생들은 항의하기 시작했고, 등록금 인상안(엄밀하게는 등록금 상한선의 대폭 인상안이지만 그냥 이렇게 쓰자)이 발표된 2010년 초겨울, 네 차례의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으며, 이 시위는 런던 도심을 다 부술 듯한 폭력 사태로 번졌고(왕세자 부부가 탄 차도 공격당했다), 이에 대하여 과잉진압 논란이 벌어질 정도로 매우 강력한 경찰 대응이 있었다. 그러나 시위는 결과적으로 실패로 돌아갔고 결국 수업료 상한은 인상안 대로 연간 구천 파운드가 되었다.
당시 여론은 경찰 측 과잉진압에 대하여도 비판적이었지만 학생들의 시위에도 매우 냉담했다. 당시 나온 비판 중 가장 인상적이고도 당연한 것은 이것이다.
학생들이 그토록 절박하다면, 스스로를 조직화해서 다음 선거 때 Lib Dem(등록금 인상을 주도했던 자들)을 지구상에서 쓸어버리면 되겠네.
If they feel so strongly, the students can organise themselves and can wipe the Lib Dems off the face of the earth at the next general election.
지난 5월 20일,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재벌 아들이자 스스로도 대학을 소유하고 계신 분이 “반값등록금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최고 교육기관으로서의 사회적 인식이 떨어지는 것 같고, 졸업생에 대한 사회적 존경심이 훼손되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무슨 말인지 솔직히 말해서 잘 모르겠다.
최고 교육기관은 등록금이 비싸야 한다는 건가? 비싼 등록금을 내고 학교를 다녀야만 대학생에 대한 사회적 존경심이 유지된다는 건가? 대학이나 대학생에 대한 평가는 어떤 품성과 지식을 가르치고 습득하며 그 졸업생으로서 어떠한 인생 경로를 택하는 인간이 많은지에 따라 달라진다, 고 말하면 이건 너무 이상주의적인 이야기일지는 모르겠다.
다만, 적어도 등록금이 비싸기 때문에 명망이나 좋은 평판이 생기지는 않는다. 혹시나 그 반대라면 몰라도 말이다 (영국 등록금 인상 논의 당시, 소위 유명 대학들은 수업료를 상한까지 받을 것이므로 상대적 저소득층이 우수한 교육을 받을 기회를 박탈하는 영향을 미친다는 인상 반대 견해가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유명 대학들은 모두 상한인 구천 파운드로 등록금을 책정했다).
5월 28일, 이 분은 또한 돈 안받는 프랑스 교육은 성공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주장하셨다고 한다. 이 역시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다만, 비싼 것이 좋은 거다, 내지는 싼 것이 비지떡이다, 라는 인식이 매우 뚜렷하다는 것만 알겠다. 명품을 소비하는 심리라면 또 할 말 없다. 그러나, 돈이 없는 사람들은 어쩌란 말인가. 없거나 덜 가진 자에게 보장되는 최저 수준을 끌어 올리려 노력하는 사회, 없거나 덜 가진 자가 앞으로 나은 것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사회, 그것이 미래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희망까지 논할 것도 없이)을 덜어 주는 사회이다.
한국의 대학생들은 등록금이 높다는 이유로 거리로 쏟아져 나와 가게를 때려부수거나 폭력적인 시위를 벌이지는 않는다. 매우 착하다. 부모가 내주기 때문에? 그러니 당분간 남의 일이라? 그러나 한국의 경우 그 부모가 거덜이 나면 자식들이 책임을 피하기란 매우 어렵다. 한국은 영국이 아니다. 싫든 좋든 부모 자식은 운명공동체인 것이다. 또는 시위할 시간에 스펙을 쌓고 좋은 데 취직할 생각해야 해서?
그렇게 어렵게 진입한 사회에서 몇 년간, 어떤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불만과 불안이 없다면 가만히 있어도 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나와서, 그들을 ‘쓸어 버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