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케팅을 ‘책’으로 배웠다
사실 마케팅을 책으로 배우는 것이 그렇게 엄청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실무에 들어가자마자 깨달았다. 하지만 대학교에 다닐 당시 남들처럼 마케팅 서포터즈 활동을 하는 것도 아니었고, 복수전공으로 경영학이나 마케팅을 공부하지도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단순히 마케터를 꿈꾸기엔 차가운 현실을 이겨낼 수 없어 부득이하게 나는 책으로 마케팅을 공부했다.
단순히 SNS마케팅을 공부하고 싶어 『SNS마케팅 완전정복』이라는 책을 사서 별 도움 되지 않는 페이스북 페이지 운영 방법을 하나하나 공부하기도 했고, 학교 도서관에서 빌릴 수 있는 최대한의 책을 빌려 집에 가는 길, 학교에 오는 길에 읽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정말 많은 책을 읽었다. 다양한 분야의 책은 아니지만 경제, 심리, 경영 쪽 도서 중 이름이 알려진 책들뿐만 아니라 숨은 책들까지 읽으며 마케팅에 대한 개념을 어느 정도 잡을 수 있었다. 책 속에 있는 문장을 활용해 자기소개서와 포트폴리오를 짜기도 했다.(물론 넣은 곳은 모두 광속으로 탈락했다. 세상은 이렇게 공-평하다.)
약 300~400권의 책 중 마케터로 일하면서 많은 도움이 되었던, 많은 인사이트를 가져다준 7권의 좋은 책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참고로 이 20권의 책 중 인스타그램 마케팅 등 직접적으로 마케팅만을 다룬 책은 단 한 권도 없다. 또한 책에 대한 본인의 경험과 생각을 모두 글 속에 녹여냈다.
무조건 걸러야 하는 3가지 유형의 마케팅 도서
우선 ‘마케팅 도서’라는 이름으로 마케팅을 시작하는 사람들을 꼬드기는 책은 시중에 굉장히 많다. 하지만 이런 책을 사서 읽게 되면 책값도 아깝고, 책을 보는 데 들인 시간도 아깝다. 지금부터 그 세 가지 유형을 소개한다.
1) 기능이나 방법만 설명하는 책
지금 당장 인스타그램 마케팅을 시작해야 하는데 눈앞에 『인스타그램 완전정복하기』 라는 도서가 있다. 책 내용을 보니 기능적인 부분에 치중되어 있다. 당신은 마케팅 초보이기 때문에 이 책을 보면서 하나하나 따라 하겠다고 생각하며 책을 산다. 그러면 당신은 결국 그 책을 라면 받침대 용도로만 잘 쓸 것이다.
기능이나 방법을 설명하는 마케팅 서적들이 더러 존재한다. 장점은 초보자가 따라 하기 좋다는 것이다. 단점은 절대 실무에서 필요하지 않는 내용만 알려준다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마케팅 트렌드가 바뀌거나 마케팅 툴이 업데이트가 되어 전체적인 구조가 바뀔 경우 책이 무용지물로 변해 버린다. 컴퓨터를 모른다면 한 번쯤 접근할 만하지만, 바탕화면 들어갈 줄 안다면 이런 책은 거르는 것이 좋다.
2) 무턱대고 ‘절대적인 법칙’ 이 있다고 하는 책
이러한 책들을 수많이 봤다. 페이스북에서 콘텐츠를 붐업시키는 방법부터 시작해서 리타게팅을 하는 100% 적용 법칙까지 정말 다양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절대적인 법칙’이 존재하지 않는다. ‘당연한 법칙’을 절대적이라고 포장했을 뿐이다.
그 작가가 심리학적으로, 철학적으로 심오하게 인간의 본성을 연구한 게 아니라면, 누가 봐도 어려운 영역(콘텐츠 전환을 많이 발생시킨다거나)을 ‘몇 가지 절대적인 법칙’으로 정리하고 홍보하는 책은 책 속 내용이 공감되지 않을 수도 있을뿐더러 뻔한 내용을 끝없이 반복한다.
3) 실무에 바로 적용할 수 있다는 책
진짜 높은 확률로 이러한 책은 실무에서 쓸데가 없는 내용만 다룬다. 우선 마케팅이라는 직무는 분야가 다양하여 규정짓기조차 어렵다. 업종마다 마케팅하는 방식도 다르다. 실무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강의는 당신의 옆자리에 있는 선배의 가르침이나, 업계에서 산전수전 경험한 사람이 정리한 강의다. 아마 책 읽는 것보다 백만 배 효과적일 것이다.
그렇다면 무조건 믿고 읽어야 하는 3가지 유형의 마케팅 도서
1) 심리학, 철학 등 인문학적으로 깊이 다가간 책
『블랙 스완』, 『사피엔스』 등이 왜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을까? 우리가 알지 못했던 미지의 영역을 쉽게, 하지만 대가답게 전문적으로 이야기해주기 때문이다. 마케터는 마케팅 관련 책보다 사람에 대해 고민하는 책을 읽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2) 방법이 아니라 사고방식을 알려주는 책
인스타그램에 광고를 태우는 방법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고 나는 이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에 대한 마인드셋을 알려주는 것이다. 이러한 책들은 국소적으로 마케팅 관련 서적으로 분류되지만, 마케팅과 관련된 이야기보다는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심도 있게 알려준다. 이러한 책을 읽으며 내 상황에서 책 속의 내용을 어떤 식으로 적용해 볼 수 있을지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3) 그래도 마케팅 ‘원서’
앞서 ‘절대적인 법칙이 있다고 주장하는’ 책을 지양하라고 이야기했지만, 적어도 필립 코틀러의 『마케팅 4.0』 등 마케팅 관련된 유명 원서는 ‘딱 한 번’ 읽는 것을 추천한다. 물론 책 속의 내용을 실무에 바로 적용하는 것은 당연히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마케팅 원서에서 나오는 내용은 내 일의 근간이 될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이기 때문에 기회가 된다면 딱 한 번 읽는 것을 추천한다. 왜 한 번이냐면, 세상은 넓고 읽어야 할 책은 많기 때문이다.
현직 마케터가 추천하는 마케팅 관련 도서 7선
지금까지 읽어온 수많은 마케팅 책 중, 가장 많은 인사이트를 줬던 7권의 책을 소개한다.
1. 『생각에 관한 생각』 대니얼 카너먼
이 책은 시스템 1(직관, 본능)과 시스템 2(이성)의 구조로 인간이 의사결정을 하는 방식을 설명한다. 사람은 직관과 본능을 자극하는 여러 기제로 인해 때때로 비이성적인 결정을 내린다. 그 원인과 유형을 상세하게 분류하고 있다. 이를 통해 고객들이 똑같은 상품을 더 효과적으로 소비할 수 있게 도와주는 다양한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실제로 ‘선착순 50명’과 같은 문구들은 심리적인 효과를 활용해 사람들에게 ‘그걸 사면 잔고가 빌 거야’라는 이성을 억제하고 본능적으로 구매를 유도한다.
2. 『인간 본성의 법칙』 로버트 그린
인간의 의사결정과 생각에 관한 내용을 총 18가지로 분류한 책이다. 수십 년의 집필 기간답게 그 내용이 굉장히 자세하고 구체적이다. 이 책을 읽은 후에는 사람(고객)들의 생각과 말투, 다양한 행동에 숨겨져 있는 원인이 어느 정도 보이게 된다. 그래서 직관적으로 사람들의 생각을 활용하여 다양한 마케팅 전략을 생각하고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마케팅에는 데이터도 중요하지만 때론 직관에 의한 선택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
3. 『유혹의 기술』 로버트 그린
처음에는 이성을 유혹하는 기술로 이해하고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그보다 더 더 깊은 층위의 유혹을 다룬다. 사람을 유혹하는 유형을 무려 9가지로 분류한 뒤 어떻게 유혹하고 유혹되는지에 대한 과정과 심리적인 요인을 누구보다도 자세히 묘사한 책이다. 『인간 본성의 법칙』처럼 페이지 수가 700페이지에 달하기 때문에 얻는 내용도 많고 읽는 기간도 긴 가성비 좋은 책이다.
4.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강민호
사실 광고에 많이 떠서 속는 셈 치고 사 본 책이다. 그런데 마케팅에 관한 내용과 고객들의 욕구를 이렇게 쉽고 정확하게 정리한 책은 이 책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특히 ‘여러분들의 상품·서비스가 뭔가 계속 잘 안 되고 있다면, 거의 대부분의 이유는 아주 심플합니다. “바로 그만큼의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라는 문구는 지금까지 읽었던 수많은 책들의 내용을 벗어던지고 온전히 내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게 해주었다. 두말할 것 없이 좋은 책이다.
5. 『설득의 심리학 1~3』 로버트 치알디니
문안을 잘 쓰고 싶은가? 내용을 잘 전달하고 싶은가? 이 책을 바탕으로 사람의 특성을 정확하게 파악해 보자. 이 책은 2020년 지금까지도 그 내용이 적절하게 적용될 정도로 이론이 잘 정리된 책이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사례를 실무에서 적용해 보는 것도 책에 있는 내용을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6. 『이기적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했던 ‘사람’ 에 대한 통념을 보기 좋게 깨 주는 책이다. 사람에 대해 다양한 사고를 하고 싶다면, 조금 더 현실적이고 제대로 된 시선으로 ‘인간’이라는 종족의 특성을 알아가고 싶다면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
7. 『마켓 4.0』 필립 코틀러
사실 실무에서 SWOT을 분석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래도 SWOT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그 도구와 이론이 실무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좋은 방법이 되기 때문이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내용은 ‘AARRR’ 퍼널과 같이 고객의 경로를 분석한 마케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수많은 데이터와 관련된 마케팅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도구다. 실무에서의 의사결정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 책은 필수 불가결로 읽어야 한다.
책은 당신에게 인사이트를 줘야 하지, 답을 주어선 안 된다
여기 소개한 7권의 책에는 공통점이 있다. ‘마케팅’과 관련된 직접적인 내용을 다루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케터에게 책이 답이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읽는 목적에 따라 다를 것이다. 실무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책을 구매하는 일도 중요하다. 하지만 오늘만 사는 지식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세월이 변해도 유동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본질적인’ 내용을 읽는 것이다. 그렇게 쌓은 내용은 중요한 순간의 통찰력으로 다가온다. 책은 그렇게 읽어야 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지, 답을 찾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답을 찾아준다고 하는 것이 결국 당신에게 만족감을 주지 못한다면 바로 그 이유 때문일 것이다.
지금, 3일 만에 끝나는 마케팅 서적 대신 3년을 읽어도 부족함이 없는 책을 읽자.
원문: 고석균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