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일지 모르지만, 나는 일본 메이지가쿠인대학의 대학교수다. 현재는 캠퍼스를 보지도 못하고, 학생들의 숨결을 느끼지도 못하고, 그들의 환한 얼굴과 시끄러운 재잘거림을 듣지도 못하는 온라인 교수다. 이 글은 일본의 코비드 긴급조치 발령으로 일시적이나마 캠퍼스의 영토를 잃어버린 허전함에 되돌아보고 쓴 소회다.
나의 인문학적 깨우침에는 공간이 지닌 잠재적 교육 작용, 간접적 소통 구조를 누구보다 높이 치는 방향성이 있다. 그래서 조금 다른 의견이 있을 친구들도 있을지 모르지만 내게는 대학 자체는 물론 그 교정, 그 주변의 대학가는 한 세트로 잠재적 교육을 담당한다고 믿는다. 한국의 모교에서 재직할 때도, 캠퍼스와 신촌 거리가 나를 가르쳤고, 내 제자들을 나와 같이 교육한다고 믿으며 말해왔다. 고교 시절부터 대학 캠퍼스가 주 무대로 그곳에서 살며 노는 생활을 했다.
이화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가 내 고등 모교다. 고교의 교실과 교정이 이대의 캠퍼스에 연이어 있는 데다, 매주 채플은 이대 대강당에서 있었고, 학교의 백일장, 사생대회, 음악회, 가장 큰 행사로 매년 유엔데이에 치르는 모의올림픽 등등 크고 작은 행사는 거의 이대 캠퍼스에서 열렸다.
여름에 열흘 가까이 실시하던 해양 캠핑은 당시 충남 서천 비인에 있던 이화대학의 하계캠핑 시설을 이용했다. 그밖에도 당시는 어느 정도 금남의 구역으로 여겨지던 이대 캠퍼스에 고교의 남학생들이 자유롭게 활보할 수 있다는 으쓱함에 아무 용무 없이도. 친구들과 이대 캠퍼스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대 캠퍼스는 그 내용은 불문하고, 나에게 여러 잠재적 가르침을 주었다.
모교 연세대에 진학한 이후에는 누구보다 오랜 시간을 캠퍼스에서 보냈다. 강의를 듣는 시간은 그 일부였다. 물론 도서관에도 열심히 갔으나, 솔직히 그곳에만 파묻힌 열렬 학구파는 아니었다. 써클 활동, 데모, 아르바이트, 친구들과 사사로운 놀이, 심지어 연애마저 전부 캠퍼스와 신촌 거리가 무대였다. 캠퍼스와 그 주변은 나를 기르고 가르치는 공간, 그 자세였다.
그 시절의 캠퍼스와 신촌 거리의 빛깔, 바람, 냄새, 계절마다 다른 공기의 온도와 습도를 나는 지금도 몸으로 기억한다. 그 시절 거기의 음악 소리, 눈에 잔영으로 남아 있는 풍광, 먹고 마신 모든 것의 맛과 내음, 그리고 마주 앉았던 친구들의 목소리와 분위기, 그것에 더불어 우리가 목청을 높였던 토론의 아젠다도 거의 기억한다.
이런 습성은 유학 시절도 마찬가지였다. 일본 교토의 도시샤대학, 그 캠퍼스와 교토의 거리거리, 그 낡았으나 고상한 분위기와 냄새, 독특한 정경은 그대로 나의 생각과 사유의 바탕으로 흘러들었다.
한국으로 돌아가 시간강사와 연구 기간을 거쳐 모교의 전임교수가 되었다. 전임교수로서의 신분, 안정적 수입, 제자들을 기르는 기쁜 보람으로 가득했을 때, 철이 없는 나는 더욱더 기쁜 일이 하나 더 있었다. 연구실이다.
처음 모교에 부임했을 때, 내 연구실은 연대의 고색창연한 역사적 건물 ㄷ자형 중앙정원 언더우드 동상의 왼팔 쪽 석조건물 아펜젤러관 맨 가운데 창가에 있었다. 햇살 따사롭고, 대학의 숨결이 가득 밀려드는 작은 영토였다. 거기서 쉴 새 없이 논문과 책을 썼고, 강의 준비를 했다. 당시 하루 24시간 중 분명히 나는 그 반 이상을 그 영토에서 머물렀을 것이다.
한국과 일본에서 대학교수로 재직하면서 국내외 학회, 해외 콘퍼런스를 다녔다. 특히 내 전공이 역사 관련으로 다른 전문분야에 비해 답사, 필드 워크가 많다. 대부분의 학회나 콘퍼런스 장소는 대학 캠퍼스다. 혹 그렇지 않더라도 나는 어느 나라 어느 낯선 도시를 방문하던 다른 목적지에 앞서 대학 캠퍼스 투어를 꼭 했다.
그동안 어림잡아 보면, 고국에서만 해도 서울과 지방을 불문하고 100개 이상의 캠퍼스는 방문했던 거 같다. 일본에서도 소속 학회의 순회 개최, 필드워크, 강연 초청를 비롯한 특별한 용무로 50곳 이상의 국공립, 사립 대학 캠퍼스를 방문했다. 십수 년 전에는 연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두 차례에 걸쳐 미국의 소위 아이비리그 대학 거의 다와 그 밖의 전통적 대학, 캐나다의 유명 대학 등등을 순례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중국의 남북 지역 여러 도시, 홍콩, 타이완, 동남아시아 등등에 나갈 때도 그 도시의 대표적인 대학 캠퍼스는 필수적으로 방문했다. 이를 나는 직업병이요, 캠퍼스 중독이라고도 말했다. 이렇듯 캠퍼스는 그 자체로 놀라운 교육과 연구 작용을 한다는 것이 내 신념이다.
온라인 대학교수가 된 요즈음. 매일 노트북과 태블릿 PC 앞에서 리포트를 읽고, 코멘트도 하고, 질문에 응답도 한다. 가끔은 영상이나마 학생들을 불러 모은다. 그러나 거기는 싱그러운 봄학기의 5월 신록도, 바람 소리도, 햇살에 빛나는 캠퍼스의 향기로운 라일락 냄새도 없다.
배경이 없는 그림, 바탕이 없는 존재란 허무하기 이를 데 없다. 나 스스로도 잡동사니로 둘러싸인 캠퍼스의 독립국. 그 작은 영토에 머물러 있을 때, 진정 자유로운 사고의 주권을 지닌 교수가 될 수 있을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