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성, 회복탄력성, 대인민감도. 흔들릴 수밖에 없는 직장생활 속 흔들림 없는 멘탈을 지닌 이들은 이 세 가지가 특출나다. 점점 불확실성이 가중되는 상황 속 계속해서 변화하는 역할과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타고날 수도 있지만, 후천적 노력도 필요하다. 이것이 결국 나를 지탱하게 해 줄 테니 말이다.
직장은 두부멘탈 어른들 집합소
직장은 소용돌이 속과 같다. 매일 같은 삶의 패턴을 보이지만, 하루하루가 스펙터클의 삶이다. 늘 치열하게 살지만, 가끔은 “내가 지금 뭐 하는가…”라는 생각이 스친다. 그렇게 ‘내일의 조’처럼 하루를 보낸 이들은 자신의 멘탈을 붙잡거나 원상복구 하기 위해 애를 쓴다.
윗사람의 갑작스러운 부름도, 옆자리 동료의 요청도, 이제 막 들어온 신입 사원의 질문도 불편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들이 원하는 ‘올바른 답’을 주고 싶지만, 그 답이 나에게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무지 멘탈은 제자리를 찾을 줄 모른다. 자괴감이 밀려오기도 한다. 가끔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절박한 심정이었다. 나를 위해 사는 것인지, 그들을 위해 내가 존재하는 것인지의 ‘존재감’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답은 없다.
결론은 대부분 어른인 ‘척’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어렸을 적 봤던 어른들의 멋진 모습과는 다르게 막상 그들의 나이가 되고, 당시의 기억과는 다른 그들의 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웠기 때문이다. 나이 불문하고 충분한 멘탈리티를 가지지 못한 이들은 여기저기 치이는 난타를 당한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정신력(Mentality) 강화가 필요하다. 가끔은 게임 속 캐릭터처럼 정신 강화하는 약이라도 먹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심정이다. 그러나, 그런 약은 없다. 할 수 있는 훈련은 있다. 항상성, 회복탄력성, 대인민감도를 적절히 관리하여 원하는 수준으로 도달하는 성장을 추구하는 것이다.
직장인 멘탈리티의 세 요소: 항상성, 회복탄력성, 대인민감도
첫째는 항상성(homeostasis)이다. 사전적으로는 ‘생체가 여러 가지 환경 변화에 대응하여 생명 현상이 제대로 일어날 수 있도록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는 성질, 또는 그런 현상’이다.
아무리 상황 및 환경에 맞게 비즈니스가 변한다고 해도 이를 다루는 비즈니스 핵심 원리와 그들의 마음은 변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고객 또는 함께 일하는 이들이 바라는 최소의 수준을 늘 유지하려고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일정 수준 이상의 퀄리티를 내는 것이 직장인이 지켜야 하는 목표이기 때문이다.
이는 멘탈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누구를 만나도 적절한 응대를 할 수 있도록 이성과 감정의 큰 기복이 없을 수 있도록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예를 들어 평소 멘탈 컨디션을 최악-차악-차선-최상-최고로 나눠보고, 어느 때 차악 이하로 하락하는지 생각해보면 금세 답이 나온다. 내 멘탈을 붕괴할 만한 요소를 발견하여 사전에 미리 차단하는 것이다.
단, 누구나 좋든 나쁘든 주변의 다양한 자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예상하지 못한 일로 최고에서 최악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그렇게 시시각각 생각지도 못한 문제에 부딪히다 보면 저항력도 강화하지만, 반대로 멘탈이 외출 수준을 벗어나 가출을 할 수도 있다. 가출한 멘탈을 다시 원래 있던 자리로 돌리기 위해서는 항상성과는 다른 속성의 것이 필요하다.
이때 필요한 것이 둘째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다. 실패나 부정적인 상황을 극복하고 원래의 안정된 심리적 상태를 되찾는 성질이나 능력. 적절한 회복을 통해 자신의 원래 상태(멘탈)로 돌아가는 것이다. 감정보다는 이성적으로 사고하려고 노력한다. 벌어진 일에 대한 객관적 인식과 이해를 바탕으로,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도록 기획과 계획을 통해 적절한 단계를 밟아가는 것을 말한다.
어떤 일(문제)에 직면했는가에 따라, 그 일을 직접 처치할 수 있는가의 여부에 따라, 어떤 이들과 연계된 문제인가에 따라, 얼마의 자원과 시간이 필요하여 처리 가능한지의 여부에 따라 전부 다른 답이 나올 수 있다. 또는 답이 없을 수도 있다. 현재 벌어진 코로나19처럼 그냥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이해와 인정’이다. 현재 상황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바탕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해보는 것이다. 넋 놓다가 지켜야 하는 항상성의 최후 저지선 차악을 넘어 최악으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자신의 원래 자리를 기억하고, 다시 그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최악에 가지 않기 위해, 최악으로부터 빨리 탈출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셋째 대인민감도(Public Senstivity)다. 대인민감도는 보통 ‘Interpersonal Sensitivity’라고 부른다. 그러나 생각보다 우리는 더 많은 사람과 그들이 만들어 낸 여러 콘텐츠 및 메시지에 노출되기에 Public Sensitivity라고 표현했다.
대인민감도는 ‘사람 및 여러 주변 상황’에 얼마나 적절히 ‘대응’하며, 그들의 기대 수준을 채우는 것과 동시에 내 멘탈을 적절한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과 연결된다. 직장에서는 리더(상사)의 눈치를 가장 많이 보게 된다. 여기서 오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내 멘탈을 최악으로 모는 것도 그들의 몫이 크다. 하지만, 리더를 좌우할 수 없다. 이해하려고 노력하거나, 그들이 요구하는 과정과 결과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방법밖에 없다.
당연히 절망적이다. 하지만, 통제할 수 없는 타인의 자극에 주어진 범위를 벗어나서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그 반대로 둔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망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계로부터 오는 불합리한 경험을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대화’를 통해 말이다. 조직이 가진 대부분의 문제는 ‘불충분한 커뮤니케이션’으로부터 온다. 우리 또는 서로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것의 결과뿐 아니라, 진행하는 과정까지도 공유하는 것이다. 이는 회사의 명운이 달린 일에 조직 속 누구나 관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민감하게 반응해야 할 것과, 그렇지 않아야 할 것을 ‘자신의 위치와 상황에서 현명하게 구분’하라고 조언한다. 일명 [선택적 대인민감도]이다. 모든 변화에 미어캣처럼 고개를 들고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없으니, ‘그러려니’ 해야 할 것에는 반응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가진 지켜야 할 최소한의 항상성과 회복탄력성을 지키는 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택적 대인민감도의 적절한 활용이 필요하다.
의지의 충돌보다는 생각의 충돌이 멘탈을 지킬 수 있게 한다.
많고도 다양한 경험이 정신력을 강화하여 우리를 어른으로 만든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의 직장생활은 늘 반복 속 크지 않은 차이에 익숙해진다. 변화에 점차 무뎌지면서 오히려 ‘견디려고’ 한다. 그런데, 오래 잘 견디면, ‘성숙한 어른’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어른이 되면(나이를 먹으면), 저절로 어른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느 보통 사람들처럼 스무 살이 넘고, 대학을 지나, 취업을 하고, 열심히 돈을 벌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열심히 그 아이를 키우고… 이런 과정에서 겪는 여러 가지 경험이 어른이 되는 성숙의 과정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이를 먹으며 위와 같은 경험을 한다고 ‘어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 많은 경험이 스스로를 단단하게 만들 것이라고 했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어른의 나이’가 되어 깨달았다. 원하는 모든 부분을 강화할 수 없다는 것, 생각보다 다채로운 경험이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 직장생활이 그렇다. 매일 같이 반복되는 생활 속에 계속 무료함을 느끼다가, 예상치 못한 큰 한방에 나가떨어지곤 한다. 그리고, 다시 원상태로 되돌리고 싶지만,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뒤따른다. 이를 성숙한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그게 어른이라면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
어떻게 하면 자유로울 수 있을까? 나는 ‘의지(Volition)’부터 담지 말라고 조언한다. 어른이 되어도 ‘의지대로 되는 것’은 거의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내 한 몸 일으켜 세우는 것도 평일은 비교적 쉽지만 휴일에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데, 어떻게 타인과 함께 하는 조직에서 뭐든지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내 의지대로 역할, 책임, 권한 밖의 일을 하기 위해 애쓰지 말아야 한다. 이를 통해 자칫 나 또는 타인에게 거는 기대 수준을 높일 수 있다. 그저 ‘일이기 때문에’ ‘일(Business)’로 바라봐야 한다. 의지보다는 냉철한 생각(논리)을 실어, 함께 일하는 이들과 최적의 합리적 과정과 결과를 기획하는데 더 많은 애를 쓰는 것이다. 또한, 대화의 범위는 가급적 일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한다.
내가 해야 할 일(Job)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갈고닦는 것이 우선이다. 누구에게나 결과와 과정을 합리적으로 전달하고, 이를 통해 비즈니스에 필요한 관계를 헤치지 않는 수준에 도달하도록 말이다. 또한, 그 피해가 나에게 돌아오지 않도록 예의 주시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중에 나의 멘탈도 해당된다.
눈치도 실력의 일부가 될 수 있다. 나는 어떤 것이든 견딜 수 있다고 착각하면 안 된다. 우리 모두는 그냥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원문: 이직스쿨 김영학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