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대 총선 감상」에서 비례대표제에 대한 보충 설명이다.
한국에서 대통령제가 바뀌기 어렵다고 얘기하면 많은 분들이 그냥 여론 때문에 그렇게 얘기하는 줄 아는데, 그렇지 않다. 예전에 사회과학자들에게 사회과학의 최대 난제가 무엇이냐고 물어본 적 있는데, 그 난제들 중의 하나가 제도의 생성과 유지였다. 사회과학자들은 한 사회에서 제도가 어떻게 유입/생성되고 정착되고 유지되는지 그 메커니즘을 알지 못한다.
왜 제도의 생성과 유지가 사회과학의 난제인가? 그 의미는 무엇인가? 한국의 대통령제를 예로 들어서 설명하고자 한다.
제도에는 ‘사회 전반적 합의’가 수반되어야 한다, 근데 그게 보통 일이 아니다
현대 신생 국가에서 제일 먼저 하는 것은 국가 리더쉽의 규칙을 정하고 선거를 실시하는 일이다. 한국의 제헌의회를 예로 들 수 있다.
문제는 선거가 곧 결과 승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 규칙에 따라서 선거를 하고, 선거 결과 받아들이고, 정부 세우고 정책 실천하면 나라를 이끌 수 있을 것 같은데 대부분 그렇게 안 된다. 거의 대부분의 신생 국가에서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총질해서 내전으로 돌입한다.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쉽다. 총칼로 저항할 수 있는데 뭐 때문에 투표 결과를 받아들이고,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지도자를 받아들여야 하는가?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2차 대전 이후 연합국에서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일본의 일부로 받아들여 총선거를 실시했다고 상상해 보자. 한국인들이 독립군의 총칼을 내려놓고 그 선거 결과를 받아들였을 것 같은가?
이번 총선만 해도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사전투표 음모론을 야당의 일부 의원들이 개진하는 판이다. 야당만 그런 것도 아니다. 예전에 보수가 이겼을 때 김어준도 이상한 투개표 음모론을 편 적이 있다. 이게 다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하는 소리다.
한국처럼 민주주의가 완전히 정착된 국가에서도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는 게 이렇게 쉽지 않다. 그러니 선거로 지도자를 뽑는 전통이 없었던 신생 국가에서 총칼을 내려놓고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즉, 선거라는 형식만이 아니라 선거를 통해 선출된 지도부를 지도부로 인정하고 따르겠다는 글로 쓰여있지 않은 사회 전반적 합의가 있어야만 제도가 정착되는 것이다. 제도의 생성과 유지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은 곧 이 합의가 어떻게 생성되고 유지되는지 그 규칙을 모른다는 것이다. 심지어 제대로 정착되었다고 하는 제도도 원래 의도했던 것과는 달리 뒤틀린 형태로 정착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국은 해방 후 대통령제로 국가를 이끌어 나갈 권력을 부여하고 그 권력에 복종하여 행정력을 발휘하는 사회적 체계를 70년 넘게 구축한 사회다. 국가의 리더쉽이 대통령제로 굴러가게끔 짜여져 있다. 대통령제에서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로 바꾸면 단지 선거 제도를 바꾸는 것뿐만이 아니라 행정 권력이 작동하는 전체 메커니즘을 바꿔야 한다.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제도를 착근시키는 어려운 예를 하나 들어 보자. 현재 선거법 위반으로 100만 원 이상 벌금을 받으면 국회의원직을 상실한다. 내각제로 바뀌면 정당은 상대 정당의 차기 수상 후보가 저지른 선거법 위반 내용을 잡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일거수일투족을 뒤질 것이고, 온갖 소송이 걸릴 것이다. 이 때 생길 수 있는 정당성의 위기를 어떤 식으로 넘어가야 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보통 내각제에서 집권 여당이 국민적 신뢰를 상실했다고 판단되면 조기 총선을 하는데, 이건 또 어떻게 합의해서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한 정당이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면 연정을 해야 하는데, 연정의 전통도 우리에게는 없다.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비례대표 꼼수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특별히 법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실제 권력의 향방이 달리니까 온갖 꼼수가 작동하는 것이다. 위성정당을 안 만든다는 비법률적 합의가 없으니까 이렇게 되고야 마는 것이다. 제도가 제도로써 안착이 안 된 것이다.
상대방은 위성정당 안 만들고 나만 만들면 선거에서 이기는데 왜 안 만들겠는가? 그런 거 안 만든다는 전통이 없는 제도이기 때문에 당연히 만들게끔 되어 있다. 새로운 제도를 만들면 어딘가 헛점이 있고, 그 헛점을 파고들어 이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번 연동형 비례제의 꼼수 향연이 특별한 게 아니다.
제도를 바꿔 정착시키는 험난한 길을 그 누가 걸어갈 것인가
글로 써진 법률을 제대로 작동시키기 위한 암묵적 합의도 어렵지만, 어떤 때는 글로 써진 법률이 작동하지 않게끔 제도가 발전하기도 한다. 법이 법조문에 쓰인 그대로 작동하지 않고, 헌법도 헌법에 쓰여있는 그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한국의 국가원로자문회의 같은 것이다. 한국에서 국가원로자문회의가 뭐 했다는 소리 들어본 분 있는지? 국가원로자문회의는 헌법 90조에 규정된 국가 조직이지만, 유명무실하다.
국가원로자문회의 의장은 직전 대통령이 맡게끔 헌법으로 규정되어 있다. 권한은 법률로 정한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헌법에 근거해서 국가원로자문회의법 새로 만들어서 퇴임 후에 의장 맡겠다고 하면, 영구집권 독재 음모라고 난리날 것이다. 한국에서 전두환, 노태우를 감방으로 보내면서 헌법에 쓰여있는 국가원로자문회의는 문항으로만 존재하고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그런 국가조직이 되었다. 87년 새로운 헌법 도입 후 30여 년간의 역사 속에 그렇게 정립된 것이다.
그래서 개헌은 정말 큰 이슈다. 문재인 정권에서 개헌 이슈가 잠깐 있었는데, 이때 문재인 정부가 실제로 개헌을 원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대선 때의 공약을 털어서 부담을 덜어내려고 했던 것으로 이해 중이다.
현재의 대통령제에서 다른 권력체제로 넘어가면 생길 수 있는 각종 문제점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모르고, 굳이 권력체제를 바꿔서 이걸 새로 배워야 할 이유도 없다. 지금 대통령제하에서도 선거 결과에 승복을 못 하고 온갖 음모론이 난무하는 마당에, 총선 후 소송으로 상대 지도자를 거꾸러뜨릴 수 있을 때 어떤 정치적 기동이 난무할지 닥치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다. 왜 대통령제에서 이탈해서 이런 국가적 혼란을 스스로 초래하겠나?
선거제도를 고민할 때는 그래서 대통령제와의 연관성을 항상 같이 고민해야 한다. 절대 법칙으로 대통령제가 지속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에서 대통령제를 벗어나 다른 제도가 도입되는 것은 매우×3 어렵다.
제가 비례대표제를 논의할 때 대통령제와의 친화성을 말하고, 대통령제의 지속성에 대한 의견을 묻는 것은 이러한 제도의 생성과 유지의 어려움을 이해하는지 물어보는 것이다. 비례대표제만 뚝딱 따로 떼어서 논의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원문: SOVID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