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덕분에 딴에는 귀한 통찰을 얻은 바가 있어서 글로 정리해본다.
2월말 교사들은 자신이 맡은 반 아이들의 명단을 건네받는다. 이 단계에서 교사는 아이들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다. 그런데 교사는 아이들 하나하나를 어떻게 인식해가는 것일까? 처음에는 강을 사이에 두고 저 멀리 있었던 아이들의 면모가 3월 첫째 주와 둘째 주를 지나면서 점점 잘 인식되어가는 원리가 무엇일까?
둘 사이에 놓인 강을 건널 수 있는 다리가 있다. 인식론적 용어로 ‘매개(mediation)’라는 것이다. 처음 보는 사람을 점점 더 잘 인식하게 해주는 가장 원초적인 매개는 생김새 혹은 이미지다. 동물은 이미지 외에 냄새로 상대방을 인식해간다. 인간에겐 이런 능력이 없다. 28명 반 아이를 냄새로 식별해내는 교사는 없다. 하지만, 생물학적으로는 동물보다 훨씬 무능한 인간에겐 수많은 이웃들을 정확히 인식해내는 강력한 매개체가 있으니 ‘이름’이다.
이미지와 이름이라는 두 매개체는 서로 조응할 때 시너지 효과가 생겨난다. 둘이 합성되지 않으면 대상에 대한 인식의 진전도 더디다. 그러므로 ‘코로나 시국’에 교사는 반 아이들의 이름을 빨리 익히기 위해 개별 학생의 사진을 확보해야만 한다. 사진을 보내준 아이들의 이름은 며칠 새 다 익혔다. 그런데 이미지 없이 이름뿐인 아이는 외나무다리여서 강을 건너기가 쉽지 않다.
이미지 없이 이름뿐인 학생의 이름은 잘 기억되지 않는다는 통찰을 통해 비고츠키를 떠올렸다. 나아가 사물의 인식에서 이미지와 기호(이름)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 생각해보았다.
만일 내가 건네받은 정보가 28명 아이들의 이름 대신 28장의 사진뿐이었다면 어떻게 될까? 이 경우 이를테면 어제 ‘마이 보니’를 멋지게 부른 아이는 “분홍색 단발머리” 따위로 기억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분홍색+단발머리’는 여럿이 있을 수 있는 점이다. 이런 식으로 28명의 아이들을 변별해내기는 매우 어렵다. 즉 인식 작용에서 이미지보다 기호가 훨씬 중요하다.
이미지와 기호의 매치가 이루어져 개별 학생의 이름이 잘 기억되는 것은 교사의 교육활동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이름을 매개로 학생 활동의 이모저모에 대한 인식이 쉽게 정리되고 그에 따른 적절한 처방 전략을 강구하거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의 후각은 사람보다 1만 배 더 발달해 있다고 한다. 생물학적으로 동물보다 1만 배 무능한 인간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것은 비고츠키 식으로 말하면, “문화적으로” 1만 배 이상 우월하기 때문이다. 그 우월성은 무엇보다 도구사용을 통해 가능했다. 도구에는 기술적 도구(technological tools)와 정신적 도구(psychological tools)가 있는데 후자가 훨씬 중요하다. 정신도구(기호 따위)는 오직 인간에게서만 볼 수 있는 역량이다.
이미지와 이름이 상호보완적이듯, 기술도구와 정신도구 사이에도 시너지가 발생한다. 지성의 발달이 문명을 창조하듯 이런저런 문물에 힘입어 인간의 정신도 진화한다. 때문에 인간의 인지능력은 다분히 “역사적”이다. 이를테면, 컴퓨터를 알기 전과 이후의 인간지성은 큰 차이를 보인다.
스마트폰 덕분에 학생의 사진을 쉽게 전송 받아 이름과 이미지의 시너지를 꾀할 수 있고 또 화상교육도 생각할 수 있다. 만약, 이 모든 여건이 구비되지 않은 내 초임 시절에 코로나가 닥쳤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면 흥미롭다.
사족
비고츠키에서 두 키워드는 문화와 역사다. 그래서 비고츠키이론을 문화-역사심리학(cultural-historical psychology)이라 한다. 이 두 키워드를 무시하고서 비고츠키를 “사회적 구성주의”로 규정짓는 것은 심각한 오류다.
원문: 필인의 꼼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