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예방을 위해 기약 없는 셀프 자가 격리의 날들이 이어진다. 만남이나 여행은 꿈도 꾸지 못하고, 기껏해야 마스크로 중무장하고 집 근처 산책로를 걷는 게 유일한 외출이다.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어서일까? 원래 지극히 집순이적 성향을 가진 친구들도 이 숨 막히는 상황에 평소 하지 않던 운동을 위해 무거운 엉덩이를 털고 집을 나섰다고 했다. 0과 1, 그것은 천지 차이다. 평소 활동량이 0이었던 한 친구에게 1 정도의 움직임은 몸에 무리였나 보다. 분명 격한 운동이 아니었음에도 작은 변화에 몸이 쑤신다고 했다. 그녀의 하소연에 아흔이 훌쩍 넘은 할머니가 생각났다.
평생을 충청도 산골의 촌부로 살았던 친할머니. 그녀의 관심사는 집 안팎을 쓸고 닦는 것, 그리고 머리를 싸매고 누워 있는 것뿐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억 역시, 계절에 상관없이 커다란 냉면 그릇에 커피를 타 드시고, 머리를 질끈 묶은 후 동그랗게 몸을 말아 구부정하게 모로 누워 있던 모습이다.
정확한 수치는 모르겠지만 키는 140cm 중반, 몸무게는 30kg 후반 정도가 될까? 워낙 작고 연약하게 태어났고, 어른이 되어서도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몸을 아끼거나 챙길 만큼의 여력이 되지 않았다. 병원에 가는 대신 쑤신다, 아프다는 말을 습관처럼 달고 사는 그 시대의 흔한 할머니다.
30년 전. 그때만 해도 예순이면 상노인 대접을 받던 시절이었다. 그때 우리 남매는 방학과 동시에 무조건 시골 할머니 집에 가야 했다. 시골집에 도착하면 암모나이트 화석처럼 굽은 등을 더 동그랗게 말고 이부자리에 누워 있는 할머니가 겨우 몸을 일으켜 손녀, 손자를 맞아 주셨다. 그런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사람은 나이 들면 저렇게 늙다가 굳어서 결국 하늘나라에 가는 거구나.
그 시절 어른들은 말했다.
당장 할머니의 초상을 치러도 이상하지 않다고. 그만큼 그녀의 몸은 늘 병약했다. 10여 년 전, 나이답지 않게 체력도 좋고, 근육도 많았던 할아버지가 병석에 누운 지 6개월 만에 저세상으로 떠난 후, 당장이라도 따라갈 기세였던 할머니. 하지만 10여 년이 훌쩍 지난 지금, 여전히 할머니는 이부자리에 누워 계신다. 근 몇 년 사이 총기가 좀 떨어졌을 뿐, 거동이 불편한 건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할머니는 쑤신다는 이유로 걷는 걸 피하셨고, 그나마 지팡이나 활동보조기구도 귀찮아하시며 멀리하시더니 결국 아예 자리보전하고 계신다. 이해 못 할 티브이를 멍하니 바라보거나, 잠을 주무시는 걸로 하루의 대부분을 채운다. 할머니의 인생, 90여 년 중 활발하게 움직였던 시간은 얼마나 될까? 내가 기억하는 한 최소 내가 태어난 후로는 한 번도 없는 건 확실했다.
할머니의 노화를 보면서 생각하는 건 하나다. 사람은 움직이지 않으면 퇴화한다는 것. 근육을 쓰지 않으면 그대로 근육이 소멸하고, 근육을 이용해 움직이는 신체 부위는 못쓰게 된다는 것이다. 등과 허리를 구부정하게 쭈그리고 앉아 종일 방과 대청마루를 걸레질하던 할머니는 말 그대로 꼬부랑 할머니가 되었다.
쑤신다는 이유로 다리 쓰는 일을 힘들어하던 할머니는 결국, 구부러진 그대로 다리가 굽어 버렸다. 봄이 와도 새잎 하나 돋지 않는 생기 잃은 고목처럼 이부자리 위에서 하루하루 그대로 굳어간다. 움직임도, 말도, 총기도 잃은 할머니는 어쩌면 메마른 입 대신 온몸으로 말하는지 모르겠다.
손녀딸아. 내가 90년을 넘게 살아 보니, 굳어 못 쓰게 되는 것보다 닳아 못 쓰는 게 낫단다.
한때 닳아 없어질까 봐 뭐든 아끼던 시절이 있었다.
말도, 생각도, 마음도. 마음을 쓰는 건 귀찮고, 또 내 마음을 다 드러내는 건 내가 가진 밑천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애써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마음을 숨기곤 했다. 안에서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썩어가는 걸 모르고 밖으로 드러내면 다치고 상처 입을까 봐 꼭꼭 숨겼다. 웅크린 말, 생각, 마음은 혼자 일어설 힘이 없다. 정체된 그것들은 굳어 그대로 고집과 아집이 된다.
군살 없이 근육이 탄탄한 몸을 볼 때면 감탄이 터져 나온다. 단순히 그 몸 자체가 아름다워서 뿐만 아니라 그 상태를 만들기 위해 절제하고, 투자했을 시간이 감히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내면이 건강하고 탄탄한 사람을 볼 때 역시 감동이 밀려온다.
내면의 근육이 탄탄한 사람들을 알아볼 수 있는 지표가 있다. 바로 맑은 눈빛과 안색. 속이 시끄러우면 그 기운이 눈과 얼굴에 고스란히 나타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면의 근육이 탄탄한 사람을 부러워만 하지 말고, 거울부터 꺼내자. 그리고 천천히 내 얼굴을 들여다보자. 낯빛과 눈빛은 어떤 상태인가?
근육이 생기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필수 요소가 있다. 단백질 위주의 넉넉한 영양분, 꾸준한 운동, 충분한 휴식. 이 세 가지가 충족되면 근육은 잘 자란다. 몸의 근육뿐 아니라 마음이나 생각의 근육 역시 마찬가지다. 영양-운동-휴식 이 3박자가 적당히 밸런스를 이뤄야 마음과 머리에 탄탄한 근육이 생긴다.
가슴과 뇌가 굶지 않도록 끊임없이 먹을거리를 던져 줘야 한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사람들을 만나 신선한 자극을 차곡차곡 쌓아야 한다. 그리고 마음을 표현하고, 마음을 건네고, 그리고 종종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충분한 휴식 시간을 줘야 한다. 그렇게 성실한 시간을 보내면 분명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면의 근육이 차오를 것이다.
원문: 호사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