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폴 그레이엄 블로그의 「The Lesson To Unlearn」을 번역한 글입니다. 폴 그레이엄은 프로그래머이자 벤처 기업 투자가로, 미국의 최고 스타트업 인큐베이터이자 액셀러레이터인 와이 콤비네이터(Y Combinator)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1. 학교에서 ‘꼼수’를 배우고 졸업하는 학생들
학교에서 배우는 것 중 가장 해로운 것은 특정 과목이 아닙니다. 바로 좋은 학점을 받는 방법 그 자체입니다.
대학 시절 나는 한 철학과 대학원생에게서 ‘난 수업에서 어떤 학점을 받게 될지 한 번도 신경 쓴 적이 없으며, 내가 무엇을 배우는지에만 관심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내가 그의 말을 특별하게 생각한 이유는, 그때까지 누구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대부분의 학생들처럼 수업에서 주어진 성적을 내가 무엇을 배우는지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나는 성실한 학생이었고, 대부분의 과목을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열심히 공부한 건 바로 시험을 준비할 때였습니다.
이론적으로, 시험(test)은 말 그대로 수업에서 뭘 배웠는지 확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혈액 검사를 위해 따로 준비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시험을 위해서도 이론적으로는 따로 준비할 필요가 없어야 합니다. 수업을 듣고 참고자료를 읽고 과제를 하는 동안 이미 그 수업은 이루어졌으며, 따라서 시험은 그 과정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확인하는 단계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이 아는 것처럼, 수업과 시험은 원래 의미와 전혀 다른 것이 되었습니다. 현실에서 “시험을 위해 공부한다”는 말은 “공부한다”와 거의 같은 말입니다. 왜냐하면 거의 모든 사람들은 시험을 위해서만 공부하기 때문입니다. 성실한 학생과 게으른 학생의 차이는 성실한 학생은 시험을 앞두고 열심히 공부하는 반면, 게으른 학생은 그마저도 안 한다는 것입니다. 나도 성실한 학생이었지만, 학교에서 내가 한 거의 모든 공부는 성적을 잘 받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많은 이들이 내가 위 문장에서 “~었지만”이라고 말한 것을 이상하게 생각할 겁니다. 내가 너무 당연한 사실을 그렇지 않은 것처럼 말한다는 것이겠지요. 성실한 학생이 바로 ‘올A’를 받는 학생이 아니냐는 말일 겁니다. 그러나 이런 반응이야말로 성적의 의미가 우리 생각 속에 얼마나 깊게 파고 들어있는지를 말해줄 뿐입니다.
2. 성적과 공부, 뭔가 중요한 게 뒤바뀌었다
공부가 성적과 동일시되는 것이 문제냐고요? 물론입니다. 그건 매우 잘못된 생각입니다. 사실 나도 대학을 졸업하고 수십 년이 지나 와이 콤비네이터를 운영하기 전까지는 그게 잘못된 생각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물론 나도 학생 때 시험을 위해 공부하는 것이 실제 공부와는 크게 다른 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습니다. 적어도 시험 전날 밤에 외운 사실들이 머리 속에 오래 남지 않는다는 점에서 말이죠. 하지만 문제는 그보다 심각합니다. 진짜 문제는 대부분의 시험이 원래 시험이 측정하려고 하는 것을 제대로 측정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시험이 학생의 학습 정도를 제대로 판단할 수 있다면, 내가 말한 문제가 그렇게 심각하다고는 할 수는 없을 겁니다. 좋은 성적이 학습의 수준과 어느 정도라도 일치한다면 말이지요. 하지만 문제는 학생들이 치는 거의 모든 시험이 꼼수가(hackable)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성적이 좋은 대부분의 학생은 이 사실을 알고 있으며, 그러면서도 그 사실에 의문을 가지지 않을 정도로 여기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중세 역사 수업의 기말고사를 준비한다고 가정해봅시다. 기말고사는 당신의 중세 역사 지식을 측정할 겁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중세 역사에 관한 좋은 책을 읽는 것이 되겠지요. 당신은 중세 역사와 관련된 많은 지식을 쌓고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겁니다.
하지만 시험에 익숙한 학생들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말할 겁니다. 당신이 중세 역사에 관해 아주 훌륭한 책을 읽었다 해도, 그 내용 대부분은 시험에 나오지 않습니다. 당신이 읽어야 할 것은 좋은 책이 아니라 강의 노트와 수업 중 과제로 제시된 것들입니다. 그리고 강의노트와 과제 중에도 대부분은 시험 문제로 적당하지 않기 때문에 무시해도 된다고 말할 겁니다. 그러니까 당신이 알아야 할 것은 전체 내용의 극히 일부에 불과한 양이 됩니다. 과제 중 하나에 나오는 흥미로운 뒷이야기는 시험 문제로 적당하지 않기 때문에 무시해도 됩니다.
하지만 수업 중 교수님이 이야기한 1378년 교회 대분열의 세 가지 숨은 원인이라든지, 흑사병이 만들어낸 세 가지 변화 같은 것은 외워야 합니다. 그 원인이나 변화가 진짜 원인이나 변화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수업에서 그렇게 나왔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웬만한 대학에는 수업마다 족보라는 것이 있고, 이는 시험 준비를 더 쉽게 만들어줍니다. 교수님이 어떤 문제를 좋아하는지 알 수 있으며 때로 똑같은 문제가 그대로 나오기도 합니다. 많은 교수들은 예전의 시험문제를 그대로 사용합니다. 사실 한 과목을 십 년 넘게 가르치다 보면 그러지 않기가 더 어려울 겁니다.
어떤 교수들은 나름의 특별한 방법을 사용하며, 학생들도 그 방법에 대처하는 방법을 찾아냅니다. 수학이나 과학, 공학의 경우 이런 요령이 불필요하지만, 그렇지 않은 과목의 경우 교수의 특성을 파악하지 못하면 좋은 성적을 받기 힘들기도 합니다.
어떤 과목에서 좋은 성적을 받는 것과 그 과목의 내용을 제대로 공부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며,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할 때 학생들이 좋은 성적을 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대학원, 취업, 장학금, 그리고 부모 조차도 학점으로 학생을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3. ‘꼼수’를 써서 통과하도록 학습시키는 사회
나는 공부를 좋아했고, 학창시절에 제출한 몇몇 과제나 프로그램을 만들 때는 무척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그 과제를 제출한 다음 그저 재미로 다른 보고서를 쓰거나 프로그램을 짠 적이 있을까요? 당연히 없지요. 항상 다른 과목의 과제를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공부와 학점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경우 학점을 선택했습니다. 그러지 않았다면 대학에 들어오지 못했겠지요.
좋은 성적을 원하는 모든 이는 이 선택에서 성적을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적을 선택한 다른 이에게 밀리고 말 겁니다. 그리고 좋은 대학에 들어온 이들이라면, 거의 모두가 성적을 선택해온 이들입니다. 그 결과, 모든 학생들은 성적과 공부 중에 가능한 한 성적을 선택하는 쪽으로 경쟁을 펼치게 됩니다.
그렇다면 시험에는 어떤 문제가 있을까요? 구체적으로, 왜 시험에는 꼼수가 가능할까요? 컴퓨터 개발자라면 그 답을 알 겁니다. 해킹을 피하기 위한 노력을 따로 하지 않은 프로그램이 얼마나 해킹되기 쉬운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 프로그램에는 채반처럼 많은 구멍이 존재합니다.
곧, 모든 시험은 기본적으로 꼼수가 가능합니다. 대부분의 시험에 꼼수가 가능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시험을 만든 사람이 이를 막기 위해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험에 꼼수가 가능하다고 선생님을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선생님의 본업은 가르치는 일이지 꼼수가 불가능한 시험을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짜 문제는 성적에 있습니다. 곧, 성적이 너무나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것에 있습니다. 선생님이 학생에게 시험 결과를 알려줄 때, 그저 코치가 운동 선수에게 운동을 더 잘하도록 하기 위해 주는 조언 정도로 받아들여진다면 학생들은 시험을 앞두고 꼼수를 쓰려 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시험 성적은 조언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입니다. 일정한 나이가 되면, 이제 무엇을 배우든 당신은 시험 결과를 바탕으로 평가받게 됩니다.
나는 대학의 시험을 예로 들었지만, 사실 대학의 시험은 꼼수가 가장 적은 시험 중 하나입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일생 동안 치르는 거의 모든 시험은 이보다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대학 입학시험은 특별히 심각합니다.
대학 입시가 마치 과학자가 물체의 질량을 측정하는 것처럼 입학사정관이 학생이 준비가 되었는지를 확인하는 일이라면, 우리는 그저 아이에게 대학 입학을 위해 “공부를 많이 하라”고만 말하면 됩니다. 하지만 대학 입시가 시험으로서 어떤 문제가 있는지는 고교 생활이 대학 입시 때문에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보면 됩니다.
실제 고등학교의 능력 있는 학생이 하는 모든 기괴한 활동들은 정확히 대학 입시를 위한 꼼수와 관련이 있습니다. 관심도 없는 수업을 신청해서 듣고, 자신이 ‘다방면’에 재능이 있음을 보이기 위해 특이한 ‘비교과 활동(Extracurricular Activities)’을 하며, 체스처럼 인위적인 수능시험(SAT)을 준비하고, 누구일지 모르지만 아주 구체적인 대상에게 먹힐 ‘에세이’를 써야 합니다.
대학 입시는 그 자체로 아이들에게 해롭지만, 아주 쉽게 꼼수를 쓸 수 있다는 점에서 더 나쁩니다. 대학 입시에 꼼수를 쓰기 위해 거대한 산업이 존재할 정도입니다. 대입 준비 학원과 입시 상담관들, 그리고 사립학교가 하는 일의 상당 부분이 여기에 속합니다.
대학 입시는 왜 이렇게 만들어졌을까요? 나는 그 이유가 이들이 측정하려는 대상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아주 똑똑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상위권 대학의 입학 사정관들은 그 점만을 보지도 않으며 이를 부정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어떤 학생을 찾을까요? 바로 단순히 영리할 뿐 아니라 총체적으로 모범적인(admirable) 학생을 찾습니다. 그럼 이 총체적으로 모범적인 학생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 답은 입학사정관이 이를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그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학생을 받아들입니다.
즉, 대학 입시는 특정한 집단의 취향에 당신이 맞아떨어지는가의 문제입니다. 그러니 이런 시험에는 꼼수가 통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 시험의 당락에 걸린 것이 매우 많기 때문에(적어도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매우 많은 꼼수가 횡행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이 꼼수의 영향을 아주 오랫동안, 아주 많이 받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고등학교 학생들이 소외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들의 삶은 완전히 인공적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교육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가장 큰 문제는 사람들의 시간을 낭비하게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사람들로 하여금 시험이 주어졌을 때 꼼수를 써서 통과하도록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이는 매우 미묘한 문제이며, 나는 사람들이 실제로 이렇게 훈련되었다는 것을 보기 전까지는 이 문제를 알지 못했습니다.
4. 정답을 앞에 두고도, 여전히 꼼수를 찾아다니는 스타트업 창립자들
내가 와이 컴비네이터에서 스타트업 창업자들에게 조언을 주기 시작한 이후, 나는 특히 젊은 창업자들이 문제를 과도하게 복잡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묻습니다.
어떻게 투자를 받나요? 벤처 투자자들이 투자를 하게 하려면 어떤 비법(trick)을 써야 할까요?
나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벤처 투자자들이 당신에게 투자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당신에게 하는 투자가 실제로 좋은 투자가 되게 만드는 겁니다. 당신이 나쁜 스타트업을 가지고 있음에도 어떤 비법을 써서 투자자로 하여금 투자하게 만든다면, 당신은 당신 자신 또한 속이는 것입니다.
당신은 투자를 요청한 그 회사에 당신의 시간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 투자가 좋은 투자가 아니라면, 당신은 왜 그 회사에 있는 건가요?
그들은 아, 하고 내 말을 곱씹은 다음 다시 이렇게 묻습니다.
어떻게 해야 좋은 투자가 되게 만들 수 있나요?
나는 실제 스타트업의 가능성을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성장이라고 말합니다. 이상적으로는 매출에서, 그렇지 않으면 사용량에서 성장을 해야 합니다. 그러니 사용자가 늘어나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사용자가 늘 수 있을까요?
그들은 이를 위해 여러가지를 말합니다. 많은 이들에게 ‘노출’될 수 있는 행사를 이야기하고,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서비스를 언급해야 된다고 말하며, 심지어 서비스를 화요일에 출시해야 사람들의 관심을 가장 많이 받을 수 있다고도 말합니다. 나는 설명합니다.
아닙니다. 그건 사용자를 늘리는 방법이 아니에요. 사용자를 늘리는 유일한 방법은 정말로 훌륭한 제품을 만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제품을 사용할 뿐 아니라 자신의 친구들에게 추천할 것이며, 당신은 기하급수적인 성장을 할 수 있을겁니다.
내가 창업자들에게 한 이야기, 곧 좋은 제품을 만들어서 좋은 회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조언으로 보일 겁니다. 그러나 이 말에 대해 그들은 마치 상대성 이론을 처음 들었을때 많은 물리학자들이 보였을 법한, 그 조언이 가진 명백한 천재성에 대한 놀라움과 그러면서도 그렇게 이상한 말이 답일 리 없다는 의심이 섞인 반응을 보입니다. 그들은 의무적으로 내게 알았다고 답하면서도, 다시 묻습니다.
혹시 이러이러한 유명인을 소개시켜줄 수 있나요? 그리고 우리는 화요일에 제품을 출시하고 싶어요.
창업자들이 이 단순한 교훈을 받아들이기까지는 때로 몇 년의 시간이 걸립니다. 이는 그들이 게으르거나 어리석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저 자신의 눈 앞에 있는 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왜 그들은 모든 것을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할까? 그리고 어느날, 나는 이 질문이 그저 수사적인 질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왜 창업자들은 자신들의 눈 앞에 있는 답을 두고 엉뚱한 곳에 신경을 쓰는 걸까요? 이는 그들이 그렇게 하도록 훈련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학교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꼼수를 써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사실 그런 말을 구체적으로 들을 필요도 없이, 그들은 시스템을 통해 이를 배웠습니다. 젊은 이들일수록, 최근에 학교를 졸업한 이들일수록 이들은 인위적이지 않은 시험을 경험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세상이 이렇게 돌아간다고 생각합니다. 곧, 어떤 종류의 문제가 발생하든 문제를 해결하는 꼼수를 찾는 것이 세상을 사는 요령이라는 생각하는 것입니다. 모든 대화는 어떻게 투자를 받느냐로 시작합니다. 그 문제를 하나의 시험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와이 콤비네이터의 마지막 단계에서 각 팀은 투자금을 받게 되며, 그 숫자가 높을수록 더 성공한 팀으로 여겨집니다. 이는 그들에게 시험으로 보여질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꼼수를 써서 시험을 통과하는 방식으로 돌아가는 세상도 있습니다. 이는 학교에만 존재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심지어, 자신이 가진 사상 때문에 혹은 무지 때문에, 스타트업 세상 또한 이렇게 돌아간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스타트업에 관한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이 세상에서는 그저 일을 잘 하기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영역에서 그렇듯, 특별한 예외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사용자들은 그 제품이 자신의 요구를 만족할 때 그 제품을 사용하게 됩니다.
창업자들이 스타트업을 과도하게 복잡하게 생각하는 이유를 이해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나 또한 학교가 학생들로 하여금 꼼수를 써서 시험을 통과하도록 훈련시킨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나 역시 그런 훈련을 받았고 수십 년이 지날 때까지 이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내가 꼼수에 익숙해져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이유는 알지 못했습니다. 예를 들어, 나는 대기업과 일하는 것을 피해 왔습니다. 누군가가 그 이유를 물으면 나는 그들은 진짜 일을 하지 않는다든지, 아니면 너무 관료주의적이라고 답했습니다. 아니면 그저 그들을 싫어한다고 말했지요.
나는 내가 대기업을 싫어했던 이유가, 그들과 일할 때 꼼수를 써서 시험을 통과하듯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스타트업을 좋아했던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스타트업은 꼼수가 불가능한 시험입니다. 하지만 이 점 역시 지금까지 나는 구체적으로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5.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 아마 당신도 그걸 원할 테고
지금의 나는 어쩌면 반복적으로 조금씩 정답에 접근하는 방식으로 답을 찾아온 것 같습니다. 곧,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문제에 꼼수로 접근하는 습관을 서서히 버려 왔습니다. 학교를 막 졸업한 이가, 이러한 문제점을 그저 내 말을 이해하는 것만으로 버릴 수 있을까요? 적어도 시도해 볼 가치는 있습니다.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어느 정도는 해결이 가능합니다. 우리가 이를 당연하게 여긴다는 사실에서 그 시스템이 가진 힘의 상당 부분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일단 이 문제를 이해하기만 한다면, 당신은 마치 방안에 감쪽같이 위장된 코끼리가 예전부터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처럼 어디에서나 이 문제를 보게 될 겁니다. 이 문제는 너무나 오래된 것이고, 그래서 세상 어느 곳에나 존재합니다.
한편으로, 이 문제는 이를 그저 무시해온 결과이기도 합니다. 누구도 세상이 이렇게 되기를 바라지는 않았을 겁니다. 이는 공부와 성적, 경쟁을 결합한 다음 여기에 어떤 꼼수는 없을 것이라는 천진난만한 생각이 결합하면서 발생한 문제일 뿐입니다.
내가 가장 의문을 가졌던 두 가지 현상(인위적인 고등학교 생활과 창업자들이 명백한 진리를 보지 못하는 것)이 사실 같은 이유 때문임을 알게 되는 것은 매우 충격적인 경험이었습니다. 이렇게 커다란 문제를 이렇게 뒤늦게 깨닫게 되는 일은 매우 드물게 일어납니다.
이런 종류의 깨달음은 여러 영역에 또 다른 시사점을 줍니다. 이 경우에도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이를 바탕으로 교육이 어떻게 더 나아질 수 있는지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또, 대기업들이 왜 스타트업처럼 일하지 못하는지에 대한 답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나는 지금 이 모든 이야기를 쓸 생각은 없습니다. 지금 내가 말하려 하는 것은, 이 사실이 각 개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선 이 사실은 갓 대학을 졸업하는 뛰어난 이들이 아마 버리고 싶어할 습관을 가지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또한, 세상과 일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는 사실도 알려줍니다. 온갖 다양한 종류의 직업에 대해 그들이 하는 일이 얼마나 흥미로울까 하는 모호한 질문을 던지는 대신, 그 직업을 분류할 수 있는 흥미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바로, 그 직업에서 얼마나 꼼수를 써서 시험을 통과하듯 일을 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만약 그런 수준 낮은 시험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는 기준이 있다면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런 방법이 있을까요? 있습니다. 시험은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권위를 가진 세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인위적인 시험과 그렇지 않은 시험입니다. 후자는 그 시험이 판단하는 것 자체가 그 시험의 결과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꼼수가 불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축구 경기는 누가 이번에 이길 것인지를 보는 시험일 뿐, 어떤 팀이 더 좋은 팀인지를 보는 시험이 아닙니다. 때문에 해설자들은 종종 이번에는 더 잘하는 팀이 이겼다고 말합니다.
반면,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는 시험은 실제로 확인하고자 하는 것의 대용품(proxy)인 경우가 많습니다. 학교에서 치르는 시험의 결과는 그 시험을 얼마나 잘 쳤는지를 확인하는 것을 넘어, 그 과목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배웠는지를 확인하는 데 쓰입니다. 자연적인 시험은 본질적으로 꼼수가 불가능한 반면, 이런 인위적인 시험에서 꼼수가 불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큰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대체로 그렇지 않으며, 따라서 수준 낮은 시험이란 바로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는 시험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시험에 꼼수를 써서 이기는 것을 좋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도 분명 존재합니다. 하지만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저 세상이 원래 그런 것이라 생각했기에, 학교를 그만두고 자유로운 예술가의 길을 가기 어려웠기에 받아들였을 뿐입니다.
6. 습관을 버려야 하는 이유: ‘일을 잘 하는 것’만으로 부자가 될 수 있는 세상의 도래
어쩌면 사람들은 이런 수준 낮은 시험에서 꼼수를 써서 이기는 것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비결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20세기 중반까지, 소수의 부유층이 경제를 독점하고 있을 때에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는 그들이 하는 게임에 참여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는 그저 일을 잘 하는 것만으로 부자가 될 수 있으며, 바로 이 점이 예전보다 사람들이 부자가 되는 것에 더 거리낌이 없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내가 어렸을 때, 사람들은 엔지니어가 되거나 신기한 것을 만들거나, 아니면 기업의 ‘임원’이 되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신기한 것을 만드는 것으로도 많은 돈을 벌 수 있습니다.
권위를 가진 사람들과 실제 일의 관계가 약해질수록, 수준 낮은 시험에 꼼수를 써서 이기는 능력은 점점 덜 중요해질 것입니다. 지금 바로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으며, 이는 오늘날 일어나는 가장 중요한 변화 중 하나입니다. 스타트업이 가장 좋은 예이며, 글쓰기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제 작가들은 출판사나 편집자에게 글을 보내는 대신 바로 독자들에게 자신의 글을 읽힐 수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할수록, 나는 점점 더 세상을 낙관적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사라지고 나서야 그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큰 손해를 보고 있었는지 알게 되는 문제처럼 보입니다. 나는 지금 이 엉터리 제국이 무너지는 것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수준 낮은 시험에 꼼수를 써서 통과하기를 원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으며 트랙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질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생각해봅시다. 꼼수를 써야 하는 분야에는 재능 있는 사람들이 점점 메마르는 반면, 일을 제대로 해야 하는 분야에는 뛰어난 사람들이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꼼수가 덜 중요해질수록, 교육 시스템 또한 학생들을 그렇게 훈련하기를 멈추게 될 것입니다. 그런 세상을 상상해 봅시다.
이것은 그저 한 개인이 버려야 하는 습관이 아니라 이 사회가 버려야 하는 습관입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세상에 넘쳐날 에너지에 우리는 놀라게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