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열병(Yellow Fever)는 모기를 숙주로 옮겨지는 바이러스성 질병으로써 2013년에는 약 12만 7천 건이 발생하여 45,000명의 사망자를 내고 있는 질병이다. 주로 아프리카 등 열대 지방을 중심으로 발생하는 질병인 관계로 한국에서는 큰 관심이 없는 편이나 한국도 이제는 열대지방 아닌가 의심스럽지만 이전 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아프리카 뿐만 아니라 중남미, 미국에서도 많이 일어나서 많은 사망자를 낸 질병으로 질병의 원인에 대해서 많은 연구가 되어 온 질병이다. 가장 처음 바이러스에 의해서 일어난다고 확인된 질병이 바로 황열병이다.
황열병은 유명한 과학자들이 많이 연관된 질병이다. 특히, 이를 연구하던 많은 과학자들이 희생자가 된 것으로도 유명하다. 바이오스펙테이터에서 바이러스 관련 연재를 하던 도중, 특히 황열병에 대해서 몇 가지 에피소드를 접하게 되어서 이를 한번 정리해 보도록 한다.
황열병이라는 질병은 원래 아프리카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례가 보고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이후 신대륙에서였다. 즉 노예무역에 의한 아프리카 노예의 신대륙 이동 중 황열병 모기와 바이러스도 함께 이동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처음에는 남미와 브라질 등 더운 동네에서 창궐했다. Yellow Fever라는 이름 역시 그때부터 사용된 것으로 보고된다.
미 대륙 본토에서도 황열병은 종종 보고되고 있었다. 1793년은 필라델피아에서, 1833년과 1853년에는 뉴 올리언즈에서 일어났고, 총 10만 명에서 15만 명의 사망자를 냈다고 한다. 특히 1793년 당시 미국의 수도이던 필라델피아에서의 황열병 창궐은 주민 9%의 사망을 가져왔으며, 대통령 조지 워싱턴을 포함한 미국 정부가 황열병을 피해 도주(…)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1878년 미시시피강 근처에서 창궐한 황열병 유행은 약 2만 명의 사망자를 기록하는 데 이른다. 이렇게 미국에서 1905년까지 유행하게 된다.
미-스페인 전쟁과 황열병
질병의 역사를 살펴보면 전쟁이 질병 퇴치의 기원이 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보건 위생 개념이 미흡하던 시대에 대량의 닝겐이 왔다 갔다 하다가 병원체를 옮겨오는 경우가 많이 있었고, 그 덕에 전장에서의 손실보다도 높은 병으로의 손실을 보는 것이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허다했기 때문이다. 1898년의 미 – 스페인 전쟁도 마찬가지이다.
1898년 미국은 스페인과 전쟁을 시작하여 당시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쿠바와 필리핀에서도 전투를 했다. 아직 천조국(…) 단계까지는 아니었지만 19세기에도 남다른 전투 종족(…)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던 신생국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오브 어뭬리카는 스페인을 3개월 만에 전투에서 압살하고 gg 선언을 받았는데… 이 과정에서 한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쿠바에 침공한 미군은 약 3,000명의 희생자를 냈는데, 그중 실제 전투에서 사망한 사람은 고작 400명밖에 되지 않았다. 나머지 2,600명은 병사하였는데, 2,000명은 다름 아닌 황열병 희생자였다.
어마어마한 황열병 사망자에 움찔한 미군은 군의관 월터 리드 소령을 단장으로 하는 조사단을 보냈다. 이들의 목적은 황열병의 원인을 찾는 것이었다.
사실 황열병의 발생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썰이 있었다. 세균에 의해서 발병한다, 혹은 황열병 환자에서 나오는 무생물인 독성물질에 의해서 발생한다 등 잡설이었다. 그런데 이미 1881년 쿠바의 의사 카를로스 핀레이는 모기가 황열병의 유래라고 제대로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의학계의 주류가 아닌 쿠바의 의사가 주장한 이 학설은 개무시당했다. 사실 그럴만도 한 게, 실험으로 입증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월터 리드는 황열병이 모기에서 발생한다는 핀레이의 썰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 중의 하나로 이전에 월터 리드는 미국에서 발생한 황열병 관련 연구를 했었고, 그전에 많이 제시되던 병사들이 오염된 강물을 먹어서 걸렸다라는 썰이 근거없다는 것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황열병에 걸린 병사들은 늪지에 자주 돌아다녔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했다. 게다가 1898년 모기에 의해서 말라리아가 전파된다는 것이 입증된 이후, 황열병도 모기에 의해서 전파될 것이라는 심증은 짙어졌다.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입증할 것인가? 리드와 함께 파견된 조사단의 일원 중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리드의 부하인 제시 라자는 모기가 원인이라고 생각했지만 제임스 캐롤은 모기가 황열병의 원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리드가 본국에 출장으로 돌아간 사이에 그것을 입증하려고 했다.
방법? 핀레이로부터 얻은 ‘황열병 모기’에 직접 물려보는 것이다(…) 특히 제임스 캐롤은 모기가 원인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므로 모기에 물려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캐롤과 라자는 황열병 모기에 직접 물렸다 (…) 그리고 이들은 바로 황열병에 걸려 버렸다. 캐롤은 거의 죽다 살아났지만 라자는 한 달 후 사망했다.
미국에 있던 월터 리드는 부하들이 지시 없이 자신을 위험에 처하게 하면서 실험하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빡쳐서 쿠바에 돌아왔다. 부하들이 자신의 의견을 무시하고 자신의 의견을 반박하려고 스스로 모기에 물렸다가 죽은 것도 빡치는 일이고, 대조군 실험도 없이 엉성한 실험을 한 것도 빡치는 일인 셈이다.
그는 제대로 실험을 하기로 했다. 실험 대상으로 선정된 인원들은 모두 이전에 황열병에 걸린 적이 없어서 면역력이 없는 사람들이었고, 리드는 이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해서 잘 설명했다. 그리고 위험을 감수하는데에 대해서 충분히 금전적인 보상을 해 주기로 하였다. 그냥 까라고 해서 깐 거 아니냐 ㅠㅠ
그는 5명의 지원자들에게 모기를 물리게 했다. 모기 물린 5명의 지원자들은 모두 황열병에 걸렸다. 그는 이 참에 새로운 실험을 하기로 했다. 기존에 황열병 원인으로 지목되던 황열병 환자가 배출한 무생물 독소가 원인인지 아닌지를 입증하기로 한 것이다.
리드는 두 개의 오두막을 지었는데, 하나는 환기가 잘 안 되어 외부에서 모기가 들어오지 못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황열병 환자가 사용하던 침구나 옷을 비치해 두었다. 하나는 환기가 잘 되는 오두막이었고, 철저히 소독해 두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황열병 모기를 15마리 넣어 두었다. 전자에서 20일 동안 생활한 자원자는 황열병에 걸리지 않았지만, 잘 소독되었지만 황열병 모기가 있는 오두막에서 생활한 자원자는 바로 황열병에 걸렸다.
마지막으로, 그는 황열병에 걸린 사람에게서 바로 채취한 혈액 2cc를 정상인에게 주입하면 바로 황열병에 걸린다는 것을 입증하여, 모기가 어떤 병원체를 옮긴다는 것을 입증했다. 그는 그의 황열병 연구 결과를 1901년에 논문으로 발표했다. 이후 그는 장구벌레가 살 만한 물웅덩이란 물웅덩이는 모두 석유를 부어버리는 실로 단순무식한 방법으로 방제했다(…) 그런데 이게 효과를 봐서 모기가 매개체라는 사실이 더 확고해졌다.
월터 리드는 황열병의 원인을 밝혀서 유명해졌다. 그러나 1902년 만성 충수염이 악화되어 사망하였다. 천신만고 끝에 황열병의 원인을 밝혔는데 정작 맹장염으로 죽었다는 것이다 (…) 그러나 그의 이름은 워싱턴 근교의 육군 병원에 남았다. 이 병원은 2011년 해군병원과 통합되어 현재까지 미군 군 병원에 남아 있다.
그러나 황열병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