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를 시작한 후 늘 궁금했다. 사람들은 왜 내 브런치에 들어올까? 그 궁금증 때문에 브런치의 통계 탭을 눌렀을 때 내가 더 유심히 보는 부분은 조회 수나 유입경로가 아닌 유입 키워드다. 그 단어들만 훑어봐도 최근 사람들이 어떤 관심사에 꽂혀 있는지, 또 내 브런치의 어떤 글에 혹해 들어왔는지 알 수 있다.
매일 밤, 잠들기 전 습관처럼 유입 키워드를 살펴보지만 상위권은 거의 변동이 없다. ’10km 걷기’와 ‘다이어트’ 혹은 ’10km 걷기 다이어트’가 돌아가며 1위를 다툰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걷기와 다이어트에 발목 잡혀 있는 걸까? 매일 10km 걷기를 시작한 후 알게 된 ‘걷기의 기쁨과 행복’에 대한 글은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도 꾸준히 사람들을 끌어모은다.
그 키워드를 눌러 내 브런치에 들어온 사람들은 궁금할 것이다. 매일 10km를 걸으면 정말 살이 빠지는지? 목표치만큼 살을 빼려면 대체 얼마나 오래 10km를 걸어야 하는지? 10km 걷기 습관을 몸에 스며들게 하기 위한 요령이 있는지?
결론부터 말하면
하루에 10km씩 매일 걷는다고 해서 살이 확 빠지진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눈으로 보이는 다이어트 효과는 없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의 출연자나 아침, 저녁마다 어르신들이 꼬박꼬박 챙겨 보는 건강 프로그램의 사례자처럼 극적인 변화는 없었다. 대개 고도비만 혹은 과체중인 사람이 체중 감량 전 입던 바지통 한쪽에 몸이 들어갈 만큼 절반으로 줄어들기도 하던데… 정상 체중인 나에게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수년째 걸어 보니 매일 10km 걷기로 살이 빠지는지는 모르겠지만, 살이 더 찌지는 않는다는 건 확실하다. 살이 빠지지도 않고 더해지지도 않았다. 매일 10km 걷기는 군살이 자리 잡을 틈을 주지 않는다. 나이가 차면 덩달아 차오르는 나잇살이란 이름의 뱃살도, 하늘로 승천할 듯 넓게 퍼지는 날개살도 동년배 친구들에 비해 확실히 적긴 하다. 물론 힙업은 덤이다.
내가 경험한 매일 10km 걷기의 가장 드라마틱한 효과는 단연, ‘마음의 군살 제거’다. 천성이 개복치인 나는 걱정도 생각도 많은 편이다. 남들의 시선과 평가에 일희일비하는 인간이었다. 부족하고 모자란 내가 그들과 나란히 설 수 있는 원동력은 오직 ‘타인의 인정’뿐이었다.
그렇게 20대, 30대를 보내면서 남들에게 좋은 사람인 척하기 위해 나를 갉아먹었다. 내가 썩어가는지도 모른 채 살았다. 생각은 생각을 낳고, 불필요한 오해와 억울함이 내 안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내 가슴에는 몹쓸 마음의 군살들이 덕지덕지 붙었다. 주체할 수 없는 몸과 구멍 난 가슴을 감당할 수 없을 때, 누군가 걷기를 추천했다.
걷기의 여정, 그 시작점
목표는 3개월이었다. 딱 100일만 걸어 보자 하고 시작했다. 걷기는 튼튼한 다리와 운동화만 있으면 충분했다. 특별히 많은 돈을 투자할 필요도 없었다. 경험자들은 입이 마르도록 추천을 하니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군살 가득한 마음을 안고 처음 걷기를 시작했을 때, 30분 걷는 것도 지루해 몸서리를 쳤다. 고작 2km 내외를 걷는 게 해저 2만 리 걷는 것처럼 도무지 끝이 나지 않았다. 아무리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좋아하는 노래를 들어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잡생각으로 가득한 머리는 복잡하고, 걸어야 할 길은 영원처럼 길었다.
걷기 선배들은 말했다. 3개월의 시간 안에 드라마틱한 변화를 기대하지 말라고. 그저 내 몸과 일상에 ‘걷기’가 습관으로 스며들기 위해 투자해야 하는 최소한의 시간이라고 했다. 그러니 100일이 지난 후 원하는 몸을 가지지 못하더라도 포기하지 말라고 했다.
눈 딱 감고 걸었다. 처음에는 30분, 몇 주 지나고 1시간, 더 지나고 10km 순으로 서서히 길이와 시간을 늘려갔다. 복잡한 머릿속의 생각들을 비워내기 위해 시작한 걷기는 어느새 24시간 중 유일하게 멍 때림이 허락된 시간이 되었다.
머릿속을 헝클어뜨리는 마음의 군살들을 안고 집을 나선다. 날씨에 따라, 기분에 따라 내 맘대로 선곡한 노래를 흥얼거리며 걷는다. 닥치고 걷는다. 걷다 보면 주변의 것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온다. 멈춰 있는 것 같지만 분주하게 움직이는 구름, 그 어떤 명품 디자이너의 손끝으로도 결코 구현해내지 못할 자연의 색으로 계절마다 다른 옷을 입는 나무, 햇빛 샤워를 하며 나른한 표정으로 식빵을 굽는 길고양이를 보며 생각한다.
그 뭐시라꼬! 사는 거 별거 없다. 무심히 흘러가는 구름처럼, 때가 되면 잎이 피고 열매를 맺는 나무처럼, 귀여움 그 자체인 무심한 뚱냥이처럼 살자.
걸음걸음마다 미련, 불안, 실망, 근심 같은 마음의 군살들을 담아 그 길 위에 떨어냈다. 그렇게 한결 가벼워진 마음을 안고 걷다 보면 알게 된다. 걸으며 보는 풍경들은 TV 드라마보다 재밌고, 영화보다 신기하다는 사실을.
그 즐거움에 홀딱 빠져 걷다 보면 10km를 훌쩍 넘기도 한다. 더 오래 걷기의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관절 건강을 생각해야 하는 나이. 오버 페이스를 방지하기 위해 턴 지점이 가까워지면 놓았던 정신 줄을 다시 붙잡는다.
‘걷기’로 지옥에서 탈출했다
내향성 인간인 나는 마음이 한창 지옥에서 허우적거릴 때가 있었다. 그때 ‘걷기’는 나에게는 지옥 탈출의 열쇠였다. 누군가의 영혼 없는 조언보다, 역사가 기억하는 석학들의 위대한 책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오늘도 누군가는 검색창에 ’10km 걷기’와 ‘다이어트’를 쳐서 넣고 내 브런치로 들어올 것이다. 그들에게 말하고 싶다.
어떻게 걸을까? 살이 얼마나 빠질까? 머릿속으로 계산기 두드리는 일 따위 집어치우고 마스크 챙겨서 나가요. 그리고 걸읍시다!
원문: 호사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