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충격적인 통계를 보았습니다. 요즘 20~30대에 연애하는 사람의 비율이 상당히 낮다는 통계였죠. 아무리 높게 쳐봐도 20~30대 전체의 30% 정도만 연애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저만 연애를 못하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연애를 안 하거나 못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연애를 안 하는 청년들이 결혼만 긍정적으로 볼 리는 없으므로, 다른 통계에서는 결혼할 의향 역시 없다는 비율이 꽤 높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현상을 한번 정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왜 연애와 결혼을 안(못) 하는 걸까요?
1. 부모 세대의 영향
우리들의 이성관, 결혼관은 어쩔 수 없이 선행학습을 통해 형성됩니다. 선생님은 바로 우리의 부모님이지요. 부모님의 사이가 좋고 가족이 화목하다면, 우리도 가정을 이루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꽤 많은 젊은이들이 봐온 가정의 상황은 대략 이랬죠.
- 부모님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
- 부모님 중 한쪽이 바람을 피웠다.
- 부모님 중 한쪽이 심각하게 희생했다.
- 부모님이 나에게 언어적, 신체적 폭력을 가했다.
- 심각한 경제적 문제에 빠진 적이 있다.
- 부모님이 이혼했다.
이외에도 수많은 문제를 보고 자랍니다. 그러면서 몇 가지 슬픈 부산물을 얻게 됩니다.
- 결혼은 매우 위험할 수 있으니 아주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는 생각
: 누굴 만난다면 부모가 주지 못한 부분을 채워줄 만한 사람이거나, 아예 합당한 조건을 갖춘 사람이어야 할 것. - 나 역시 순탄치 않은 성격을 갖게 되어 결혼생활이 쉽지 않으리라는 생각
2. SNS, 커뮤니티
인터넷 시대가 부상하면서 SNS와 커뮤니티를 하게 됩니다. 이는 많은 사람을 이어주는 장점이 있지만, 크나큰 불행을 가져다주기도 했습니다.
1) 비교의 강제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다양한 SNS는 우리에게 비교를 강제하는 데 일조했습니다. 나의 상황을 끊임없이 부족하게 바라보게 만들었죠. 세상엔 너무나 예쁘고 괜찮은 사람들이 넘쳐나고, 자신은 그에 비하면 상당히 부족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는 자존감을 지속적으로 하락시킵니다.
세상엔 너무나 괜찮은 사람들이 많아 ‘보이니‘, 나 역시 눈이 조금씩 올라가게 됩니다. 차은우나 아이린을 바라는 건 아니지만, 나도 어느 정도는 예쁘고 잘생긴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욕구를 갖게 됩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이 친구의 남자 친구·여자 친구보다 못나면 만족도가 조금씩 감소합니다.
어쩔 수가 없어요. 저 친구는 괜찮은 사람과, 꽤 비싼 식당에서, 좋은 여행지에서 밥 먹은 사진을 올리고 있거든요. 싱글이라면 모를까, 누군가를 사귄다면 정말 괜찮은 사람을 사귀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2) 지나친 사례들로 인한 불안감 조성
커뮤니티엔 다양한 커플의 사례, 결혼한 부부의 사례가 올라옵니다. 그런데 편안하고 행복한 사례들은 별로 올라오지 않지요. (올라와도 재미없거나 부럽기만 하니 별로 주목받지 못합니다) 드라마 <부부의 세계> 같은 이야기는 현실에서도 꽤 자주 일어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 마 결혼!’이라는 댓글은 장난처럼 느껴지지만, 나도 겪을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뇌리에 박히게 됩니다. 이혼한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듣다 보면, 차라리 결혼을 안 하는 게 낫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3) 그냥 돈이 없어
네, 우리들은 돈이 별로 없습니다. 청년들은 미래를 보며 지금의 가난을 감내하고 있지만, 모두가 그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알바로 연명하는 사람들도 있고, 계약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고, 고된 노동에도 큰돈을 벌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에게 연애는 사치이고, 결혼은 선택지에 없습니다.
전쟁통에도 사랑을 했다지요. 전쟁통엔 모두가 돈이 없으니 비교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잘 버는 사람만 계속 잘 벌고, 다다르지 못한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되기 어려운 세상입니다.
빈부격차는 전 세대에서 걸쳐 벌어지고 있으며, 이중 ‘빈’에 해당하는 사람은 연애를 못 하게 됩니다. 연애를 한다면 지금보다 돈을 더 써야 할 텐데, 거기다 쓸 돈이 어디 있겠어요. 무리해서 써버리거나, 아예 쓰지 못하면 상대에게 계속 부끄러운 느낌을 갖게 될 겁니다. 그렇게까지 자존심이 상하면서까지 연애를 할 필요는 없겠지요.
집값이 몇억, 몇십억 하는데 내 집 마련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만나야 한다면 집을 마련해올 누군가를 만나고 싶습니다. 단칸방에서 시작하자니, 누가 이 시대에 그런 마음으로 날 만나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임대아파트 제도가 있어 그나마 다행이지만, 누구나 거기에서 시작하길 바라지는 않을 겁니다. 설상가상 작게 시작하자는 뜻을 나눌 만큼 친밀한 상대가 있지도 않습니다.
4. 외로움을 잊게 할 콘텐츠 세상
세상엔 재미있는 것들이 넘쳐납니다. 다소간의 외로움 정도는 잊어버리게 할 만큼 강력한 콘텐츠들이 존재하지요. 게임이 될 수도 있고, 넷플릭스나 유튜브일 수도 있습니다. 때론 강아지 같은 생물체일 수도 있겠네요.
대체제가 없었다면 우리는 이성 친구에게서 삶의 재미를 느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개인 맞춤화된 여러 콘텐츠들은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를 다 사용하고, 불안을 잊게 할 만큼 강력합니다.
마무리하며
꼰대처럼 청년들이 연애나 결혼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그저 우리가 처한 상황이, 더더욱 연애와 결혼이라는 선택지를 점점 지워나가고 있음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이 상황에서도 우리가 상대를 골라야 한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충족되어야 할 것니다.
- 내가 살아온 가정에서 겪은 경험을 반복하지 않을 대상
- 나의 모난 부분을 받아줄 만한 멘탈을 소유한 대상
: 그렇게 안정적인 사람은 소수이지만 - 내가 설렐 수 있을 만한 외모의 소유자
: 외모에 대한 기대는 이전에 비해 상향 평준화된 측면에 있음 - 남들 하는 데이트를 다 하고, 결혼 전에 집을 얻어 독립할 수 있는 대상
: 청년들의 소득은 높지 않으나 갖추어야 할 것들은 늘어난 세상
이러한 요소들이 충족되지 못할 바에야 선택하지 않기로 한 사람들도 많을 겁니다. 한두 가지 정도는 만족해도 나머지 한두 가지가 만족스럽지 못해 결국 선택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겠지요. 이 희박한 확률을 찾아 연애와 결혼을 하기에는, 참 어려운 세상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