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도 사람이다’라는 말을 구태여 설명해야 하는 사회. 과학하는 사람을 뜻하는 접미어 者자가 붙어 있음에도 사람임을 다시 한 번 지칭하는 동어반복. 그리고 동격을 지칭하는 ‘는’이 아닌, 이들 또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듯한 ‘도’로 서술되는 저 짧은 문장에서 우리 사회의 과학자에 대한 인식이 묻어 있으리라.
과학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언제나 이렇게 서술되어 지는데, 문득 이런 궁금증이 들었다. 그렇다면 정말 사람들은 과학자란 단지 연구실에 앉아 연구만 하는 사람이나, 기술 개발의 도구로써의 기능인으로만 인식하고 있는 것일까?
과학을 전공하는 일부 대학생이나 연구원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일반인은 중등교과과정 범위 내에서의 과학 지식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또 그것을 바탕으로 인식하고 사고할 것이다. 그래서 현재 맡고 있는 수업의 신입생들과 주변 학과와 학부의 도움을 받아 이공계열 신입생 527명을 대상으로 과학과 과학자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 조사를 간단하게 진행해 보았다.
설문은 총 6문항으로 만들었고, 객관형 질문 세 문항과 주관형 질문 세 문항으로 구성하였다. 주관형 답의 분석은 공통된 경향성을 파악하여 3~6 가지 정도로 분류하여 정리하였다.
설문 결과
사회에 대한 기여도가 가장 높다고 생각하는 직업군 중 하나를 고르라는 질문에서 ‘엔지니어’가 27%로 가장 많은 응답율을 보였고, 두 번째로 ‘기업인’을 꼽았다. 엔지니어와 기업인이 상위를 차지한 것으로 보아 삼성과 현대 등의 소수 대기업 위주의 한국 경제상황에 대한 인식이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되어진다.
과학자는 세 번째로 많은 응답율을 보였으나, 이어지는 질문의 답볍의 경향으로 보아, 과학자가 하는 일에 대한 인식이 순수 과학의 발전과 순수 학문의 연구 성과하는 측면에서가 아닌 기술개발과 경제성장, 국위선양의 측면에만 집중되어 보는 경향이 보였다.
현재 한국의 과학적 성취도나 성과를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하였을 때 어느정도 수준에 왔다고 생각하는지를 물은 질문에 대등하거나 높은 편이라는 응답이 72%로 다수를 차지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한국의 과학 성취의 평가에 대한 세부적인 평가였다. 한국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과학적 수준이 대등하거나 높다고 대답한 학생들은 그 원인으로 ‘과학자들의 역량’이나 ‘과학교육’의 성과라고 꼽은데 비해, 낮은 편이나 낮다고 응답한 학생들은 ‘연구자금지원’이나 ‘과학정책’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었다.
한국의 과학적 성취가 대등하거나 높은 것은 국가가 지원하는 과학정책이나 연구자금지원이 아니라 순전히 과학자 개인의 역량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히려 현재 한국의 과학정책 때문에 과학적 성과가 낮아지고, 연구자금지원이 상당히 부족한 실정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과학자들의 정치적 관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44%가 ‘관여해야한다’, 41%가 ‘관여 해서는 안된다’, 15%가 ‘잘 모르겠다’라고 응답했다. 잘 모르겠다는 응답을 제외하면 49%와 51%의 비율로 ‘관여 해야한다’라는 의견이 다소 높게 나왔다.
과학자가 왜 정치에 관여 해야 하는지에 대한 세부적인 질문에 가장 많은 경우가, 과학자의 발언권 확대를 꼽았다. 구체적으로는 현장의 전문가를 도외시한 과학정책의 결정과,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되는 과학 지원에 대해 이제는 과학자가 스스로 나서야 한다는 등의 의견이 37%를 차지하고 있었다.
과학정책 결정 과정에 과학자가 참여해야 한다는 의견이 13%, 그리고 원자력 발전소 문제 등과 같이 과학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졌기 때문에 해댱분야의 전문가인 과학자가 참여해야 한다는 의견이 12%를 차지했다.
과학자가 왜 정치에 관여해서는 안되는지에 대한 세부적인 질문에 가장 많은 의견은 ‘과학과 정치는 독립된 분야’이기 때문에 관여해서는 안된다는 의견이 40%를 차지했다.
이 양측 의견 모두에서 느꼈던 흥미로웠던 점은 과학자는 시민이 아닌 하나의 부품으로써 기능해야한다는 인식보다는, 정치에 대한 불신이 만여해있다는 점이었다. 과학자의 발언권 확대나 정책결정에의 관여는 과학자의 당연한 권리나 시민으로써의 권리의 행사로 보기 보다는, 정부와 정치권이 과학연구를 방해하고 있다는 불신 때문에 직접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같은 맥락에서 과학은 객관적이며 신뢰할 수 있는 영역이지만 정치가 관여할 경우 변질되거나 악용될 우려가 있어 이들 서로는 독립되어야 한다거나, 때문에 과학자는 정치권이 발을 들이면 안된다는 의견이 많았다.
기타 의견으론 정치권과 정치인에 대한 불신이 아닌 과학자에 대한 불신 때문에 정치적 관여를 반대하기도 했다. 그 중 인상 깊었던 부분이 ‘황우석’과 ‘안철수’를 예로들며 과학자의 정치적 관여에 대한 매우 부정적인 의견을 보이기도 하였다.
다음은 과학자의 정치적 관여가 아닌, 배우줄기세포나, 동물사용연구, 원자력 발전소, 천안함 사고, 광우병, 4대강 사업 등의 사회적, 정치적 논란이 있는 과학적 이슈에 과학자가 적극적으로 참여하여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이에 대해 76%가 ‘적극적으로 참여 해야한다’, 10%가 ‘연구에만 매진해야 한다’라는 의견을 보였고, ‘잘 모르겠다’라는 의견이 14%였다. 잘 모르겠다라는 의견을 제외하면 약 90%가 과학자의 사회적 참여에 긍정적인 답변을 보였다.
같은 사안과 주제에 관해 ‘정치’와 ‘사회’의 단어 변경으로 이처럼 상반된 결과가 도출 된다는 점에서 다시 한번 정치에 대한 강한 불신이 저변에 깔려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과학자가 사회적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 해야하는가’에 대한 긍정적인 답변의 대부분은 전문가와 지식인으로써의 대중과의 소통과 정보 전달 및 공유였다. 사회적 문제를 유발시키는 많은 과학적 이슈들의 경우, 특히 원전 문제의 경우 그 위험성은 알고있지만 정확한 이유와 지식은 미비하고, 과학자들의 해명이나 설명이 미진하다는 부분에 강한 불만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10%의 반대 의견은 리센코이즘이나 황우석 등과 같은 사례로부터 과학이 정치적으로 오용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정치적 참여와 함께 사회적 참여도 반대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또 기타 의견 중 울진군이 고향인 학생의 원전 문제에 대한 절박함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본인이 과학자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되었을 때 가장 고민되는 사항이 무엇인지 질문해 보았다. 그 중 절반에 가까운 45%가 경제적인 문제가 가장 걱정된다고 응답했고, 22%가 일자리 문제를 꼽았다. 과학은 국가와 사회에 있어 중요하고 꼭 필요하다는 것은 인식하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과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지원과 환경이 열악하다는 것 또한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공계 위기의 원인을 너무 멀리서 찾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중, 고등학교 시절받은 과학교육에 본인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을 해보았다.
그 중 상당수가 보통이거나 도움이 된 편이다라고 응답했고, 그 이유로 현재의 대학교육에 도움이 된다거나 TV를 보았을 때 기본적인 과학 이야기는 알 수 있다는 의견이 상당 부분은 차지했다. 그리고 도움이 안된 편이거나 전혀 도움이 안됬다는 의견을 포함하여 보통이다라고 응답한 학생들 중에서도 입시위주의 교육과 주입식 교육 때문에 흥미을 느끼지 못하였고, 지식 함양에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일부 의견 중에 흥미로웠던 부분은, 중, 고등학교 과학교육에서 실험과 실습 위주로 과학 수업이 진행된 몇몇 학교의 학생들의 경우 매우 도움이 되었다거나 도움이 된 편이었다는 긍정적인 답편을 보였다는 점이다. 입시위주의 교육과 주입식 교육 위주의 과학교육을 진지하게 재고해 보아야 할 부분이다.
끝으로, 이 설문으로부터 알고자 했던 과학자에 대한 인식은 예상 했던 것에 비해 심각하지는 않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정치에 대한 심대한 불신 때문만이 아닌, 과학자는 연구만해서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가만히 연구만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의견을 결코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사람들은 ‘과학자가 말하기’를 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학자는 한 사람의 전문가이자 지식인으로써 대중 앞에 서서 설명하고, 설득하며, 사회를 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나아가 주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과학의 정치적 오용을 우려하는 이유처럼, 그만큼 대중은 과학자를 신뢰하고 또 믿고 있기 때문이다.
원문 : scliavink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