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0월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에 따라 시작된 ‘자활사업’이 올해로 제도화 20주년을 맞이했다.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자 등 취약계층이 근로를 통해 빈곤에서 벗어나 자립 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 돕는다.
앞서 자활사업단에 참여했다가 실력과 기술을 쌓아 어려운 경제적 환경을 극복해 자립에 성공한 것은 물론, 자활기업을 설립해 또 다른 어려운 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들이 있다. 보건복지부는 2009년부터 매년 자활에 성공한 주인공을 ‘명장(明匠)’으로 뽑아 시상한다.
<이로운넷>은 자활이 낳은 명장들을 만나 이들의 스토리와 자활사업의 사회적 가치를 조명해본다.
직원을 뽑을 때 이력서가 화려한 지원자는 제일 먼저 제쳐놓아요. 저희처럼 못 먹고 못사는 사람들에게 더 마음이 가더라고요.
자활기업 ‘일과나눔’을 운영하는 정승화 대표는 채용할 때 남다른 기준이 있다. 가방끈 길고 경력이 화려한 지원자는 우선순위에서 가장 뒤로 밀린다. 대신 가난하고 약하지만 일을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사람이라면 두 팔 벌려 환영한다. “없는 형편의 사람들끼리 똘똘 뭉쳐 우리 사회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일과나눔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사장님→수급자→다시 사장님으로…자활사업 참여하며 재도약
한때 기초수급자였다가 자활사업을 통해 제2의 인생을 살게 된 정 대표는 “손이 안으로 굽는다고, 나와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움직인다”고 말했다. 1990년대 버너 등을 만드는 작은 공장을 운영했던 그는 국제통화기금(IMF) 경제 위기를 이기지 못해 결국 1999년 문을 닫았다. 이후 일용직 노동을 하며 생계를 꾸렸지만, 아내가 암 투병을 하게 되면서 가세는 더 기울었다.
당시 큰딸이 동사무소에 갔다가 우연히 ‘자활공동체 사업단’을 알아 와 소개를 했고, 2003년 11월 지역자활센터에서 청소 일을 시작하면서 정부 지원금을 받는 조건부 수급자가 됐다. 처음 일을 하고 받은 월급은 60만 원 남짓. 차비와 밥값, 담뱃값을 빼면 남는 돈이 없었다. 한때 공장 사장이었던 그는 “돈도 안 되는 일, 딱 3개월만 하고 그만두자”라고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특유의 성실함을 가진 정 대표는 일을 하면서 능력을 인정받았고, 2004년 9월 사업단 현장 책임자로 승진했다. 그리고 2005년 6월 자활공동체를 돕는 ‘함께일하는세상’이 남양주 지점을 내면서 청소사업단에서 일하던 6명이 다 같이 나왔고, 동료들의 투표를 통해 대표직을 맡기에 이른다.
“대표가 되니 어깨가 무거워지고 책임감이 생겼어요. 내가 잘 못 하면 우리 회사가 망하는데, 물불 가릴 때가 아니더라고요. 청소 일을 하기 전엔 집에서 설거지 한 번을 제대로 안 해본 사람이 무슨 기술이 있을까요. 부족함을 채우려고 일요일마다 다른 기업에 가서 밥만 얻어먹고 일을 하면서 기술을 배워서 직원들에게 알려줬어요.
계약을 따려고 온갖 기관, 기업을 온종일 찾아다니고, 따내면 하루 2시간도 안 자고 일하면서 그렇게 열심히 회사를 키웠습니다.
자활기업‧사회적기업‧사회적협동조합 인증…제1대 명장 선정
이후 함께일하는세상 남양주 지점은 청소를 비롯해 주거복지‧돌봄 분야의 자활공동체 통합 운영하는 조직으로 성장했다. 현재 남양주시를 기반으로 학교, 공공시설, 기업 등의 화장실을 청소하고, 저소득층의 주거 환경을 개선하며, 장애인‧노인을 위한 돌봄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그동안 사회적기업, 사회적협동조합 인증을 차례로 받았고, 2009년에는 남양주 자활공동체 통합법인 주식회사 ‘일과나눔’으로 기업명을 새로 붙였다. 정 대표는 같은 해 보건복지부가 선정하는 제1대 ‘자활명장’으로 뽑혀 장관상을 받으면서 국가에서도 공로를 인정받았다.
설립 당시 6명으로 시작한 일과나눔은 현재 120여 명이 일하는 기업이 됐다. 직원 대다수는 기초수급자이거나 자활사업단에서 일하다가 나온 취약계층이다. 지난 15년간 일과나눔에서 일하다가 자립해 다른 길을 찾아 나선 이들도 100명이 넘는다. 정 대표는 “우리 식구들을 보기만 해도 참 좋다”면서 “다들 조금씩 부족해서 여기에 모였지만, 비슷한 사람들이기에 서로를 더 감싸주고 이해해주려 한다”며 고마운 마음을 드러냈다.
부족한 사람들 모였지만 사회에 환원…“후배들에게 물려주고파”
물론 수급자나 차상위자들의 업무 능력이 부족한 면이 있고, 몸이 아픈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어려운 점도 많다. 정 대표는 “우리끼리는 우스갯소리로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라 말할 만큼, 구성원들의 체력이나 건강이 좋지 않다”며 “일반기업에서 두 사람이 할 일을 자활기업에서는 서너 사람이 해야 하기 때문에 시장경제에서 살아남기가 힘든 게 사실이다. 공공 영역에서 사회적경제 기업에 사업을 우선 배정해주는 등 지원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그럼에도 일과나눔은 지역과 사회에서 받은 도움을 다시 나누며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경기도 내 청소 전문 자활기업 20여 곳을 모아 ‘클린쿱협동조합’을 설립해 큰 규모의 사업에 공동 참여하고, 지역사회 봉사활동에도 참여한다. 최근에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남양주 사회적경제 기업을 비롯해 도서관, 어린이집, 경로당 등 주요 시설 100여 곳을 무료 소독하는 사회공헌 활동을 진행했다.
지난 3월에는 경기도가 선정하는 사회적경제 조직 공공수탁·이용지원사업 수행기관인 ‘경기쿱’으로 신규 발탁되기도 했다. 도 전역의 청소 분야 사회적경제 조직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컨설팅‧맞춤형 교육‧공동 마케팅‧정책 제안 등을 수행하게 된다. 정 대표는 “후배 기업들이 잘 커나갈 수 있도록 우리의 노하우를 전수하고, 기술도 공유해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지난 15년간 자활기업을 해보니, 설립도 힘들지만 제대로 운영하기가 참 쉽지 않았습니다. 구성원들이 계속 투표해주는 덕분에 대표직을 연임하고 있는데 앞으로 저보다 기업을 더 잘 이끌어줄 후배를 키워 자리를 넘겨주고, 한 발 옆에서 일과나눔을 응원하는 게 제 꿈입니다.(웃음)
원문: 이로운넷 / 글: 양승희 이로운넷 기자 / 사진: 노산들 이로운넷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