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봄의 풍경이 지나간다
코로나19가 사람들의 생활을 바꾼다. 내가 미세먼지가 아니라 바이러스 때문에 마스크를 끼고 다닐 거라고 2019년의 나에게 말한다면 SF소설이라고 놀림을 당했겠지? 하지만 그것이 일어나고 말았고 충격은 일상이 되어간다.
코로나19의 영향력은 사람뿐 아니라 산업 전반에 빨간불을 일으켰다. 이동 동선이라고는 집과 사무실, 편의점밖에 없는 마시즘의 눈에도 보일 정도다. 오늘은 코로나19로 인해 변한 음료업계의 이야기를 전한다. 씁쓸한 이야기니까 웃음을 조금 첨가해보았다. 그래서 일단… 코로나 맥주는 어떻게 되었는데?
맥주 업계: 코로나 맥주는 어떡해
코로나19가 처음 알려지기 시작할 당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맥주 브랜드 ‘코로나(Corona)’다. 1925년에 만들어진 유서 깊은 멕시코 맥주가 상대적 뉴비(?)인 바이러스의 악명 때문에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이에 네티즌들은 ‘코로나 맥주 이름을 바꿔야 한다’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가짜 뉴스를 만들어 ‘돈을 줄 테니 코로나바이러스 이름을 버드와이저 바이러스로 바꿔달라’는 짤을 제작하기도 했다(두 맥주는 엄밀히 같은 식구다).
실제 코로나 맥주에서 보인 반응은 “고객들이 바이러스와 맥주 간 관련성이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리라 믿는다”라는 게 전부라고 한다. 하지만 인터넷에서는 이미 밈(Meme)화가 강해져서 ‘코로나 맥주 바이러스’의 이름으로 코로나 콘텐츠(주로 자가 격리를 하면서 지내는 사진, 영상 등)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지난 3월 미국 내에서는 판매량이 전년 대비 24% 성장, 국내의 한 대형마트에서도 23.6%나 늘었다고 한다. 이름 덕에(그리고 또 조용한 스텐스를 취한 덕에) 오래된 맥주 브랜드를 한층 트렌디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너무 설렌 나머지 코로나 맥주의 새로운 제품인 탄산수를 출시하면서 “코로나가 곧 상륙한다”라는 광고문구를 넣은 게 화근이었다. 광고가 나오고 바로 곧 진짜 코로나19가 미국에 상륙했거든.
설렜다가 깜짝 놀랐지만 어쨌든 이름은 알렸다… 라고 쓰려고 했으나 코로나 맥주 생산은 중지되었다. 멕시코 내의 코로나19 감염자가 늘어 멕시코 정부에서 ‘비 필수 사업’들을 중단시켰기 때문이다. 여하튼 코로나19가 코로나 맥주를 들었다 놨다 한 시즌이다.
국내 주류업계는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해외도 비슷하다). 2–3월 중순 외식업계 하루 평균 고객 감소율이 66%로 업체에서 파는 술들은 무너졌다. 대신 집에서 마시는 ‘홈술’이 늘어서 편의점과 마트의 주류 판매가 늘었다고 한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어렵지? 인기가 상승하던 테라와 진로이스백만 잘 팔렸다. 나머지는 따흑. 다만 와인이나 온라인 판매가 되는 전통주들은 기회를 노려봄 직하다.
커피 업계: 시작과 끝에는 스타벅스가 있다
세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있는 스타벅스는 코로나19의 시작과 끝을 같이 할 운명이다. 일단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가 발병하기 시작할 때부터 스타벅스는 타격을 받았다. 스타벅스 중국 매장들은 80% 가까이 휴업을 했고(현재는 다시 오픈한다), 공격적으로 점포를 늘리던 중국 시장에 제한이 생겨버렸다. 이러다가 급속히 따라오는 중국 루이싱(瑞幸·Luckin) 커피에게 1위를 빼앗기는 거라도 아닐까?
아니었다. 2017년 창업하여 스타벅스보다 많은 매장 수를 자랑한 초대형 커피 프랜차이즈 루이싱은 최근 허위 매출이 발각되었다. 지난해 매출을 가짜로 만든 것이다. 그 금액이 22억 위안(약 3,780억 원)으로 지난해 1–3분기 매출액 29억 위안과 비교하면 대부분 사기로 매출을 기록했다.
때문에 루이싱 커피의 주가는 코로나19보다 폭발적으로 사라졌다. 주가의 75% 이상 폭락하면서 약 6조 원이 날아가 버렸다. 중국의 인구만 믿고 공격적으로 멀티를 확장하던 업계의 한계. 그리고 지금 숨길 수 있었어도 코로나19 사태가 끝나고 바뀔 환경에 어울리지 않는 모델이었다는 평이 오간다.
스타벅스는 중국 내 영향력에서는 다소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코로나19가 전 세계적 현상으로 번지면서 매출 하락을 계속 견뎌낸다. 하지만 일반인도 가고, 확진자도 가고, 현대인의 이동 동선에는 언제나 스타벅스가 있기 때문에 더더욱 긴장되는 상황. 좌석을 1/3만 남기거나 아예 없애는 스타벅스도 있다고.
어디 스타벅스만의 이야기겠는가. 공간과 분위기를 선물하는 카페 산업 전체가 큰 시험에 들었다. 캡슐커피의 판매량이 많이 증가한 것 같지만 기존 산업을 대체할 정도는 아닌 듯하다. 주인공은 캡슐커피도, 커피믹스도 아닌 ‘달고나 커피’였다는 게 함정. 인싸들이 너무 해서 마시즘은 아직도 못했다는 게 함정.
우유 업계: 선생님 개학은 언제 하나요
안 그래도 어렵다던 우유업계는 진짜배기 어려움을 만났다. 학교들이 개학을 미루니까. 우유 급식도 중단되었다. 급식 우유 시장의 50%를 차지하는 서울우유가 1달 동안 약 100억 원이 빠질 거라고 하니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다른 유가공업체들 역시 이제 더욱 좁은 시장에서 할인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3월 하루 원유 사용량이 전년 대비 123톤이 감소했다. ‘쉽게 분유나 치즈를 만들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으나 이미 잉여분으로 만든다고 한다(+멸균우유도). 하지만 분유와 치즈 등의 재고량도 2019년 말 대비 2배가 늘었다. 자칫 경쟁적으로 풀리면 유제품 시장 자체가 무너질 상황.
미국의 경우 최대 낙농협조합인 ‘데어리 파머스 오브 아메리카(DFA)’의 하루 우유 폐기량이 1,400만 리터, 영국 낙농업자협회(RABDF)의 초과 생산분이 일주일에 500만 리터이라고 한다. 유통기한이 짧기 때문에 더더욱 피해가 커진다.
가공유에서는 ‘바나나맛 우유가 안 팔리고 재고로 남는’ 시대가 되었다. 대학가의 매출이 89.2% 하락으로 크게 줄은 것이 원인이다. 난공불락의 판매량을 자랑하던 바유가 저런데. 다른 유제품의 상황은…
주스 업계: 그러나 오렌지주스는 승리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일하게 몸값이 올라가는 음료가 있다. 바로 ‘오렌지 주스’다. 오렌지 주스에 있는 비타민C가 면역력을 강화한다는 통념 때문에 수요가 급증한 것.
시장조사기관 닐슨에 따르면 미국 내 식료품점에서 오렌지주스 판매량이 지난해 대비 40%가 급증했고, BBC에 따르면 영국 내 오렌지주스 가격이 20% 이상 올랐다고 한다. 면역력에 대한 기대감과 오렌지 주스의 생산, 유통 등의 수송 길이 막혔기 때문에 가격이 올랐을 것이란 전망이 있다.
물론 한국에서는 통하지 않는 통념이었다. 국내 주스 매출도 크게 하락했다.
코로나19가 바꿀 음료의 세계는 어떻게 될까
너무 실망만 할 수는 없다. 많은 이가 노력 중이며, 극복할 것이라는 것은 우리가 안다. 코로나19와 음료업계를 돌아보며 느낀 것은. 음료가 단지 맛이나 가격 등이 아니라 학교나 회사 등 일상의 순간순간에 들어가는 것이라는 점을 알았다(커피를 마시고 싶어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만났기에 커피를 마셨다 같은).
이토록 오랫동안 달라진 환경에 노출되면, 사람들의 생활양식도 조금은 변하기 마련이다. 이제는 홈술이나 홈카페들이 가까워지고. 건강에 대한 관심도 또한 늘어났다. 혹은 비상용 식료품처럼 오래 두고 마실 수 있는 음료도 떠오를지 모른다. 과연 코로나19가 끝났을 때의 음료 산업은 어떻게 다시 바뀔까?
원문: 마시즘
참고문헌
- 폭발 성장 중국판 스타벅스, 루이싱커피의 몰락 이유는[광화문에서/윤완준], 윤완준, 동아일보, 2020.4.13
- “국내산 유제품 소비촉진…코로나 위기극복을”, 신정훈, 축산신문, 2020.4.14
- 학교우유급식 중단 장기화···낙농업계 ‘골머리’, 이현우, 한국농어민신문, 2020.4.10
- 우유·맥주 하수구로, 밀가루 판매급증…코로나가 바꾼 식품시장, 권혜진, 연합뉴스, 2020.4.14
- 멀쩡한 우유 수백만L 폐기…오렌지주스는 ‘코로나 특수’, 김정은, 한국경제, 2020.4.7
- 오렌지 주스 ‘코로나 특수’, 조재희, 조선일보, 2020.3.30
- 코로나 때문에 콜라가 안 팔린다는데, 왜?, 박용선, 조선비즈, 2020.4.1
- 코로나가 바꾼 편의점 스테디셀러…’뚱바’ 밀려난 자리, 소주·와인이 채웠다, 박민주, 서울경제, 2020.3.29
- “회식 대신 홈술”…’코로나 집콕’에 편의점 주류매출 쑥, 서정석, 영남일보, 2020.4.16
- 코로나 때문에 코로나가 웃는다, 곽창렬, 조선일보, 2020.2.15
- 코로나19에 유럽 맥주의 자존심 독일·체코 양조장 ‘비틀’, 이광빈, 연합뉴스, 2020.4.5
- Corona beer stops production, Jordan Valinsky, CNN BISNESS, 2020.4.3
- 결국 코로나 때문에… 멕시코 ‘코로나 맥주’ 생산 일시 중단, 석경민, 중앙일보, 2020.4.3
- 스타벅스, 코로나19에 중국 매출 ‘반토막’…“영업 정상화 시일 걸릴 것”, 김서영, 이투데이, 2020.3.6
- “코로나 곧 상륙합니다”…美분노 부른 코로나맥주의 자폭 광고, 전수진, 중앙일보, 2020.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