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남성의 반 페미니즘에 깔린 두 가지 전제
’20대 남성의 반 페미니즘’을 이야기할 때, 나는 두 가지 전제를 깔고 시작한다.
먼저 20대 남성이 ‘여성혐오 세대’가 아니라, 생애 주기상 그들은 한국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 정서를 가장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취약한’ 상황에 있다는 것. 군대와 취업을 앞두었으며, 사회 전반의 성차별이 어떠한 지경인지 경험하기 어려운 20대 남성들은 반 페미니즘의 논리에 유혹당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불안과 고통도 ‘페미니즘’을 원인으로 지적한다. 사회경제적 불만을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언어화할 사회적 자본이 없으니, ‘이게 다 페미니즘 때문입니다’로 자신들이 겪는 문제를 설명해버린다.
두 번째, 천관율 시사IN 기자와 정한울 한국리서치 전문위원의 『20대 남자』에서는 이 점을 분명히 하지 않았지만, 현 상황은 분명 ‘백래시‘다. 2015년 이후 10–20대 여성의 페미니즘 수행은 온라인 상으로 남성을, 정확히 말하면 남성문화를 비판하거나 조롱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잠재적 가해자’라는 말에 반발하듯 남성들은 자신들을 향한 직접적인 비판을 바로 수용하지 못했고, 놀라거나 분노했다.
하지만 이들의 반발과는 별개로 페미니즘 의제는 사회의 주요 화두가 되었고, 그들이 ‘극단적’이라고 주장하던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는 법이나 정책에 반영됐다. ‘남성(문화)을 비판하는’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을 보며 이들은 ‘위협’을 느꼈을지 모르는 일이다.
이렇듯 20대 남성의 강한 반 페미니즘 정서와 공격성은 일차적으로 그들이 10–20대 영영페미들의 미러링이나 비판을 직접적으로 마주하는 연령이었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나아가 그들의 반발이 무색해진 페미니즘 확산이 ‘페미니즘이 여성에게 유리한 권력 작용'(『20대 남자』)을 일으킬 수 있다고 판단한 게 이들의 위기감을 심화시키고 공격성을 키운 것으로 볼 수 있다.
20대 남성도 성차별과 성폭력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안다
20대 남성의 공격적인 반 페미니즘에 우려를 표하는 분들이 많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변화하는 남성성과 성차별」, 정책기획위원회 「2030세대 젠더 및 사회의식조사 결과」, 시사IN 「20대 남자」 등 다수의 자료에서 20대 남성의 반 페미니즘 성향은 매우 뚜렷하다. ‘반 페미니즘’을 경유해 정치적 주체로서의 자격을 획득하려 하며, ‘페미니스트’처럼 ‘반 페미니스트’가 하나의 정체성으로 자리 잡은 경향도 찾아볼 수 있다.
당장 남초 커뮤니티에서 한 시간 내에 올라온 페미니즘 관련 글 몇 개만 가져와도 황당하고 착잡하기 이를 데 없을 것이다. ‘남성 차별’이 존재한다고 믿으며 ‘피해자 남성’으로 자신을 위치시키고, 적극적으로 페미니스트들에게 테러에 가까운 공격을 가하는 것을 계속 보게 된다. ‘요즘 남자애들 어떡하냐’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나는 여성혐오가 ‘요즘 남자애들’만의 문제가 아닐뿐더러, 20대 남성은 ‘반 페미니즘 정서가 가장 강하지만 역설적으로 젠더 감수성도 가장 높은 세대’라고 주장하며, ‘변화의 가능성’을 여전히 말하고 다닌다.
20대 남성의 주된 정서는 ‘나는 아니야’다. 반 페미니스트들은 성차별로 인한 특혜는 윗세대만이 누려왔고, 성폭력은 내가 속한 남성문화가 아니라 ‘개인’의 문제라고 여긴다. 이것은 구조와 통계와는 동떨어진 명백한 ‘착시 현상’이라서 계속 비판해온 지점이다. 한편으로 이러한 태도는 이들이 성차별과 성폭력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다른 세대보다 잘 인지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페미니즘을 반대하는 ‘억울한 지위’를 갖기 위해선 남성의 가해 행위를 적극적으로 부정하면서, 기존의 남성문화와도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조금 더 긍정적으로 해석하자면, 이들이 5년간 페미니스트들과 불화했지만, 그들이 바꿔놓은 사회 분위기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그들이 만나는, 만나야 할 여성들은 대체로 페미니즘을 강력하게 지지한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들도 눈치를 봐야 했던 것이다.
이를테면 ‘n번방 성 착취’ 사건에서 남초 커뮤니티에 있던 대부분의 남성들은 철저하게 자신과 선을 그으려고 했다.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 범죄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반면 중년 남성들은 “호기심에 들어온 사람”(황교안 대표) 운운한다든가, “나는 2번방”(허용석 통합당 후보)이라는 말을 유머로 던지든가, 미래한국당 공천과 n번방 성 착취를 비교한 만평(민중의소리)을 그리는 등 사건 자체에 경각심이 전혀 없어 보였다.
물론 소위 안티페미니스트라는 이들도 피해자다움이나 ‘꽃뱀’ 서사라는 그릇된 남성문화를 공유한다. ‘남성들이 반성해야 한다’는 말에도 격분해 성찰하지 않으려는 한계도 보인다. 하지만 적어도 성폭력을 ‘그럴 수 있는 일’처럼 여기거나 두둔하는 기성세대 남성들의 관습과는 온도 차가 있다. 과거 남성들의 ‘여성혐오’와는 분명 구분해야 할 지점이고, 이를 토대로 생각해볼 문제가 많다.
‘성평등적 가치’를 수용하면서 자란 이들이 가진 ‘다른 점’
한겨레21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20대 여성과 남성 800여 명에게 성평등 연애 규범에 관해 설문한 결과를 보면 20대 남성의 75%가 ‘나는 페미니즘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그런데 모순적이게도 “스킨십이나 섹스를 하는 중에 언제든 파트너의 의사에 따라 행위를 중단하는 게 당연하다” 항목에는 20대 남성의 85.4%가 동의(매우 그렇다, 그렇다)했다. ‘섹스보다 피임이 더 중요하다’ ‘성적 대상화나 여성혐오적 표현을 조심해야 한다’ ‘맨스플레인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항목에도 70% 이상의 남성이 동의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페미니즘이 싫다고 말하지만, 정작 페미니즘적 가치를 수용하는 게 현재의 20대 남성인 것이다.
20대 남성은 기성세대 남성들이 공유하던 여성혐오 문화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성매매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한국리서치가 19–59세 남성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것을 바탕으로 제작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변화하는 남성성과 성차별」 발표에 따르면 20대의 성 구매 비율은 6.9%에 불과했다. (30대 23.7%, 40대 41.7%, 50대 44.4%)로 드러났다.
물론 이 조사에서는 전체 성 구매 비율이 29.9%로 나와, 성 구매 비율이 과반수에 육박하는 2016년 성매매 실태조사와 직접적으로 놓고 비교하긴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20대가 성 구매 문화에 동조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일 수밖에 없다. ‘성매매 반대 캠페인’에 참여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긍정 답변 비율도 역시 20대가 가장 높았다.
이러한 설문 조사 결과는 20대 남성을 ‘유례없는 여혐집단’으로 몰아가는 분석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20대 남성의 반 페미니즘엔 기존 남성문화와 연결되는 지점과 단절되는 지점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 단절되는 지점이 ‘변화된 남성성이 만들어질 가능성’과 ‘안티 페미니즘 양상의 고착화’라는 우려를 동시에 안았다는 점이다.
현재는 후자만이 너무 뚜렷하게 보이고 이야기되는 상황이다. 가부장 문화에서 자유롭고 (앞서 인용한 여성정책연구원 조사에서 20대는 유일하게 비전통적 남성성으로 분류된 남성의 비율이 과도기적 남성성이나 전통적 남성성을 분류된 남성의 비율을 앞질렀다) 페미니즘 리부트를 경험하고 일정 정도 ‘성평등적 가치’를 수용하면서 자란 이들이 가진 ‘다른 점’은 무시된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 문제를 한국 사회가 깊이 고민하지 않아서다.
그동안 20대 남성의 반 페미니즘에 정치권과 언론 등은 무작정 ‘현 정권이 20대 남성의 마음’을 달래줘야 한다는 식으로 다뤄왔다. 더불어 ‘전문가’들이라는 사람들조차 반 페미니즘적 행태를 취업난에 시달려서 발생하는 불만 수준으로 단순화시키기도 했다. 이 현상을 페미니즘에 대한 반발이나 남성성의 문제로 여겼던 게 아니라, ‘청년 세대 문제’ 정도로 치부했던 것이다. 오로지 ’20대’에게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면서, 이 문제가 ‘여성혐오’ 현상을 해결하거나 남성성의 변화를 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이 현상을 해결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하루아침에 바뀔 일도 아닐뿐더러, ’20대 남성’만 특정해 비난하거나 옹호한다면 상황은 더 악화할 수밖에 없다. 한국 사회 전반이 페미니즘을 수용하고, 여성혐오적 문화를 도태시키거나 퇴출하는 과정의 하나로 이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존 남성문화와 ‘단절된 지점’에서 새로운 남성성이 모색되길 간절히 바라고, 나 역시 이를 위해 말하고 쓰며 연대하고자 한다.
원문: 박정훈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