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일들이 발생하는 것은, 끔찍한 사람들도 급격하게 돈과 권력을 얻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돈이 있으면, 또 기회가 있으면 선한 사람은 더 선한 영향력을, 사악한 사람은 더 사악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이번 n번방 사건이 그런 경우 같습니다. 저는 남성들이 모두 일부 공범이었다는 책임감을 느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살다 보면 남성들이 얼마나 거리낌 없고 끔찍한 농담을 쉽게 던지는지 소름 끼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을 문화라고 방관하는 절대다수의 ‘착한’ 남성들, 바로 우리의 방관이 그들에게 자신감을 줍니다. 더러운 성추행성 발언을 하다가 멱살이라도 잡혀 봐야 ‘아 이런 이야기 하면 안 되는구나’하고 긴장감을 느꼈을 텐데, 그런 놈을 하도 많이 만나고 살아서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는 심정으로 방관하고 맙니다.
그런 놈이 상사일 수도 있고, 만난 지 몇 시간 안 되는 비즈니스 파트너일 수도 있고, 나름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일 수도 있습니다. 웃어주고 넘어가 주면, 그들은 적극적으로 자신감을 갖습니다. 용인되었다는 기분을 얻습니다. 누구의 잘못일까요. 그런 것을 용인하는 문화를 어른들이 함께 만들어갔다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30대 후반, 40대라면 이 나라의 사회 문화적인 현상에 모두 간접적인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는 10–20대보다 우리 목소리를 내고 오랜 시간 문화를 바꿔 갈 수 있는 기회를 받아왔잖아요. 그럴 힘이 없잖아 있었습니다. 일개 개인이 사사건건 화를 내면서 불편러처럼 까칠하게 굴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적극적으로, ‘그런 말 하면 큰일 난다’고 나름 돌려서라도 견제해주지 않으면 결국 이런 사태를 맞이하게 됩니다.
30대 후반—40대 중 n번방 비슷한 상황을 간접적으로라도 접해본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문화적 충격일 정도로 엽기적이고, 비상식적입니다. 기억을 되돌려봐도 그런 일이 자행된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나마 알았던 제 또래는 거의 없지 싶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또래의 책임이 없다곤 생각지 않습니다. 한국 남자로서 창피하고, 또 한국인으로서도 창피하고, 또 국내에서 여성으로서 산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도 새삼 느끼며 죄스럽습니다.
젊은이들이라지만 이런 문화가 존재하게 내버려 둔 것 자체에 일말의 간접적 역할이 있었을까 두렵습니다. 이런 범죄가 설령 공론화되지 않더라도 사석에서라도 남성 사이에서 얼마나 맹렬한 비난을 당할지 모든 남성이 이해한다면 어찌 감히 이런 일이 생길까요. 비난의 목소리를 올리고, 주위에서도 이런 찢어 죽일 놈들에 대한 욕을 많이 해줘야, 잠재된 범죄적 욕망마저도 일체 억제될 것입니다.
자정하지 않으면 타정당해야 마땅합니다. 대한민국 남성 문화, 우리가 앞장서서 자정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게 우리들의 도리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엽기적인 문화가 활개를 치지 못하게 억압해주는 것이 시민들의 도리입니다. 결국엔 남성들도 피눈물로 죗값을 치르게 될 일입니다.
원문: 불릴레오 천영록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