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나 앱솔루트와 함께한다. 그게 분유이거나, 보드카이거나”
인싸와는 거리가 멀어 ‘달고나 커피’도 안 만드는 마시즘에게 ‘앱솔루트(ABSOLUT)’는 꺼내기 무서운 힙한 음료였다. 강한 도수도 그렇지만 이 멋진 디자인을 만지기엔 나는 너무 아싸였으니까. 생겨도 너무 멋지게 생겼단 말이지.
병의 디자인만 봐도 맛이 느껴지는 녀석들이 있다. 코카-콜라의 컨투어 보틀(Contour bottle)이나 바나나맛 우유의 단지 디자인. 그리고 앱솔루트의 병이 대표적이다.
단순히 멋으로만 치부하기에는, 이 디자인에는 나름의 이야기가 있다. 오늘 마시즘에서 다뤄본다.
스웨덴 보드카 왕의 나이가 14살?
앱솔루트 병을 보면 호그와트 마법사처럼 박혀있는 얼굴이 있다. 이 사람이 바로 앱솔루트를 만든 ‘라스 올슨 스미스(Lars Olsson Smith)’다.
1836년 태어난 라스 올슨 스미스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고아가 되었다. 8살부터 잡화점에서 일하며 장사를 배웠다. 하지만 사업수완이 좋아 대도시의 큰 잡화점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 14살이 된 무렵에는 ‘보드카’를 판매하는 거상이 되었다. 스웨덴에서 소비되는 보드카의 1/3이 라스 올슨 스미스를 거친다고 할 정도였다.
그런 그가 불만족스러웠던 것은 ‘보드카의 질’이었다. 당시 판매되는 보드카들은 불순물들이 많이 섞여있어 맛이 만족스럽지 못하거나, 마시고 나면 숙취가 심했다. 완벽하게 순수한 보드카를 만들기 위해서 라스 올슨 스미스는 고향인 아후스(Ahus)로 향한다.
당시 다른 보드카들은 감자나 고구마, 옥수수 등을 통해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라스 올슨 스미스는 오직 하나의 재료로만 순수한 보드카를 만들고자 했다. 아후스에는 얼음 속에 묻혀있다가 봄에 싹을 틔우는 ‘겨울 밀’이 있었고, 빙하 속에 갇혀있다가 흘러나오는 샘물도 있었다.
1879년, 연속 증류법을 통해 그가 원하던 순수한 보드카가 만들어졌다. 라스 올슨 스미스는 이 보드카는 ‘완벽하게 순수한 보드카(Absolute Pure Vodka)’라고 불리었고 앱솔루트 브뢴빈(Absolute Branvin)’이라는 이름으로 출시되었다.
앱솔루트의 디자인은 의약품 병에서 따왔다?
앱솔루트가 태어난 지 100년이 되었다. 1979년 앱솔루트는 스웨덴과 유럽을 넘어 세계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준비를 한다. 미국에서 보드카를 엄청 마셔댄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당시는 ‘스톨리치나야(Stolichnaya)’나 ‘스미노프(Smirnoff)’같은 소련(러시아) 보드카들이 세계시장의 주도권을 잡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는 냉전 시대였다. 소련이 떠오르는 보드카를 미국인이 마시기에는 좀 떨떠름한 상황이었다. 그러니 앱솔루트에게는 승산이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앱솔루트가 스웨덴 출신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려주지?
그래서 병의 모양을 바꾸게 되었다. 앱솔루트는 디자인 에이전시 ‘카를손&브로맨’에 새로운 병의 디자인을 맡겼다. 라르스 뵈르예 카를손은 우연히 스톡홀름의 골동품 가게에 갔다가 구식 의약용 병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 기존의 목이 길쭉한 병 디자인이 아닌, 짧은 목을 가지고 있으며 금속 스크루 마개를 덮어 현대적인 느낌이 나는 패키지를 만든 것이다.
이 ‘단순한 디자인’은 오직 한 가지 재료로만 만드는 앱솔루트의 순수함과도 잘 어울렸다. 그래서 극단적인 단순함을 위한 ‘덜어내기’를 시작했다. 병에 레이블을 붙이지 않는 대신 유리병에 직접 인쇄했다. 제품명도 ‘앱솔루트(Absolute)’로 줄였다가 e까지 빼서 지금의 ‘앱솔루트(Absolut)’가 된다.
극한의 컨셉술(?) 앱솔루트의 광고
앱솔루트의 병 디자인만큼 유명한 것은 광고다. 1980년 앱솔루트의 광고를 맡은 TBWA에서는 앱솔루트의 광고를 만들었다. 초기에 가장 큰 충격을 준 광고는 검은 배경에 앱솔루트 술병, 그리고 뒤에 천사링 하나만 있는 그림이었다. 지면 어디에도 제품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유일하게 눈에 띄는 ‘ABSOLUT PERFECTION’이라는 카피 한 줄은 많은 반응을 일으켰다.
이후 앱솔루트의 광고는 앱솔루트 병 이미지에 ‘ABSOLUT OOO”으로 카피를 배치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짧은 문구였지만 크리에이티브한 효과가 강했다. 소비자는 물론 유명한 사람도 반응을 했다. 바로 앤디 워홀이었다.
1985년, 앤디 워홀은 특유의 스크린 판화 기법으로 앱솔루트 보드카의 모양을 표현했다. 그 작품이 바로 ‘ABSOLUT WARHOL)’이다. 감각적인 이 그림은 사람들이 앱솔루트 보드카를 제대로 인식하게 만든 계기 중 하나가 되었다.
앤디 워홀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앱솔루트에 다른 작가를 소개해준다. 낙서화가로 유명한 ‘키스 해링’이다. 그리고 이 작업은 케니 샤프(Kenny Scharf), 로버트 인디아나(Robert Indiana)로 이어졌다. 백남준까지도 앱솔루트와 협업을 하였다.
덕분에 앱솔루트는 고가 브랜드가 아니어도 ‘프리미엄’의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 앱솔루트는 더 나아가 유명 예술가와 협업하는 것을 넘어 장래가 촉망되는 예술가들을 지원하면서 앱솔루트(Absolut)가 곧 예술(Art)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광화문 촛불시위를 앱솔루트 광고로 만들어?
또 하나의 재미있는 시리즈는 1994년에 시작한 ‘앱솔루트 시티(Absolut Cities)’였다. 아트디렉터들의 잡담에서 시작된 프로젝트였다.
앱솔루트가 캘리포니아에서 불티나게 팔리는데, 로스 엔젤레스를 위한 광고 하나쯤 만들어 봐야하지 않겠어?
이 말은 곧 ‘Absolut L.A’ 광고로 이어진다. 한 장의 광고로 도시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감성을 표현했고, 그러면서도 앱솔루트 보드카 병 모양을 은유적으로 집어넣었다. 이 광고가 대히트를 기록하면서 이 광고 시리즈는 미국의 각 도시, 세계의 도시들로 확장된다. 앱솔루트가 세계 시장을 개척하기 시작한 것이다.
역사적인 사건을 테마로 만든 광고도 있었다. 미국 독립을 이끌어 냈던 ‘보스턴 차 사건’을 형상화한 ‘앱솔루트 보스턴’. 911 테러 사건을 추모한 ‘앱솔루트 9/11’ 그리고 지난 한국의 광화문 시위 현장을 담은 ‘앱솔루트 코리아’였다. 촛불집회 현장을 앱솔루트 보드카병 모양으로 만든 이 광고에 대해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라고 비아냥거리는 이들도 있었지만, 수십 년간 이어진 앱솔루트의 광고 시리즈를 봤을 때는 광고와 예술 그리고 도시를 담는 일 중 하나였다고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순수함에서 오는 맛, 단순함에서 오는 크리에이티브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도 사랑하는 술. 앱솔루트는 굉장히 시각적인 술이다. 크리에이티브 넘치는 광고가 그렇고, 도화지 같은 단순함을 가진 병이 그렇다. 하지만 그 안을 살펴본다면 ‘한 가지 재료로 만드는 순수한 보드카’라는 처음의 마음가짐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순수함을 표현하기 위한 디자인이 곧 예술이 되고, 예술이 쌓여서 기록이, 기록이 쌓여 아우라가 된다. 앱솔루트 덕분에 오늘도 한 가지를 깨닫고 간다. 역시 멋짐은 앱솔루트처럼 오래 쌓여서 자연스럽게 나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그러니 나는 틀렸을 거야 아마.
원문: 마시즘
참고문헌
- 세계 브랜드 백과, 박정선 외 3인, 인터브랜드
- [브랜드 이거 아니?] 의외의 친환경 브랜드, ‘앱솔루트 보드카’, 이지원, 데일리팝, 2019.12.11
- [미술과 명품] 앱솔루트 보드카, 조혜덕, 주간조선, 2010.6.28
- [김태욱의 ‘브랜드 썸 타다’] 역사를 담은 링거병, 앱솔루트 보드카, 김태욱, 이코노믹리뷰, 2017.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