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야구에는 없지만, 미국과 일본의 프로야구에는 있는 수많은 것 중 하나가 바로 ‘최고의 투수에게 주는 명예로운 상’이다. 미국과 일본은 각국의 전설적인 선수인 사이 영과 사와무라 에이지를 기리며 ‘사이영상’과 ‘사와무라상’을 제정해 시즌 최고의 투수에게 수여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시즌 최고의 투수에게 10개의 골든글러브 중 하나를 수여해왔다. 무려 10명에게 수여하는 상 중 하나가 시즌 최고의 투수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영예였다. (물론, 투수가 MVP를 수상할 수는 있지만, 매시즌 투수가 받을 수 있는 상은 골든글러브가 최고의 영예이다.)
최동원상의 탄생
그런데 2014 프로야구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단법인 최동원기념사업회>에서 ‘최동원상’을 제정해 올해부터 시상하기로 했다는 보도자료가 배포되었다. KBO의 공인을 받지는 못했지만, KBO가 수여하는 그 어떤 상보다 영예로운 상이 될 것이란 기대다.
그도 그럴 것이, KBO가 수여하는 ‘올해의 선수’와 ‘올해의 신인’, 그리고 ‘골든글러브’는 모두 기자단의 투표로 정해지며 후보의 기준조차 모호하다. 또한, 결과가 나오면 늘 공정성 논란이 있었고 그 논란의 중심에는 ‘기자단의 전문성’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최동원 상’은 기자단이 아닌 야구계 원로 6인으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에서 선정한다. 선정기준은 비공개이며 <최동원기념사업회>는 ‘최동원이라는 불세출 투수 이미지’를 첫 번째 덕목으로 꼽았다. 또한, 선정위원 중 한 명인 양상문(현 LG 트윈스 감독) 위원은 “최동원을 상징하는 출장경기 수, 이닝 수, 탈삼진 수 등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양상문 위원의 말은 ‘혹사를 당한 투수’를 꼽는다는 것이 아니라, 팀에 가장 공헌한 선수를 꼽는다고 보는 것이 옳다. 선발투수가 시즌 30경기와 200이닝을 소화하기는 쉽지 않다. 또한, 탈삼진은 투수의 능력을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다. 즉, 승이나 홀드, 세이브 등 환경이나 운에 따라 좌우되는 성적보다는 투수 본연의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잣대가 선정기준이 될 수 있다는 말로 해석할 수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투수 본연의 능력’이다. 현재 투수를 평가함에서 가장 먼저 대두되는 세 가지 기록은 승리(구원투수는 홀드와 세이브)와 ERA, 탈삼진이다. 잘 알려졌다시피 승리와 홀드, 세이브 등은 투수 본인의 능력과 크게 관계가 없다. 세 기록은 투수의 능력 이상으로 기회가 강한 영향을 미친다.
또한, 투수를 평가함에서 가장 중요한 잣대처럼 여겨지는 ERA도 마찬가지다. 투수의 ERA는 자책점에 비례하며 이닝 수에는 반비례한다. 만약 수치의 고저가 아니라 기록의 가치를 평가하면 자책점에는 반비례하며 이닝 수에는 비례한다. 즉, 많은 이닝을 소화하는 것이 ERA에는 유리하다. 하지만 더 강하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자책점이다.
ERA와 FIP
그런데 이 자책점이 과연 투수 본연의 능력인가? 그렇지 않다. 투수의 자책점에는 수비와 운의 영향이 강하게 미친다. 또한, 자신의 뒤에 나오는 계투들의 능력도 중요하다. 5이닝 무사만루에 교체된 투수의 뒤에 평범함에 미치지 못하는 투수가 등판하는 것과 오승환이 등판하는 것은 투수의 ERA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하지만 동료 중 뛰어난 릴리프의 유무는 자신의 능력과 전혀 관계가 없다. 또한, 좋은 릴리프를 많이 보유한 팀의 투수는 피로도에서도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류현진의 퍼펙트게임이 깨지고 릴리프 윌슨이 주자를 불러들였지만, 류현진은 7.1이닝 3자책 투수이며 윌슨은 0.1이닝 무실점 투수라는 점이 자책점의 맹점이 될 수 있다. 또한, 자책점과 실점의 차이는 결국 실책에 따라 갈라진다. 그런데 이 실책이란 것이 기록원의 주관이 강하게 투영되며 아웃 카운트와 실책의 상황에 따라 10실점을 해도 자책점은 0인 경우가 있기에 자책점이 투수의 ‘자책에 의한 점수’라고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세이버 매트리션들은 투수 본연의 능력을 평가하기 위해 하나의 기록을 고안했는데, 그것이 바로 FIP다. FIP는 투수의 영향력 안에만 있는 홈런과 삼진, 볼넷, 이닝만으로 ERA와 유사한 기록을 만들어낸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일단 타자가 때린 공이 필드 안에 들어가면 수비의 역량과 운이 작용하니까, 이와 무관한 홈런, 볼넷, 몸에 맞는 공, 삼진만 따지자는 것이다. 자세한 설명은 링크를 참조하도록.
그리고 올해 런칭한 KBReport는 한국프로야구 상황에 맞는 FIP를 고안했는데, 그것이 바로 kFIP다. 선정위원들의 주관이 강하게 영향을 미치겠지만, 만약 그 선정위원들의 주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잣대가 있다면 바로 kFIP가 될 수 있다. 물론, 이 수치 자체가 선정위원들의 참조사항으로 활용되지는 않겠지만, 투수의 피홈런과 탈삼진, 볼넷, 이닝은 선정위원들도 고려할 사항들이고 이 네 가지 기록이 kFIP를 구하는 잣대이기 때문에 전혀 상관성이 없다고 할 수도 없다.
잡설이 길었다. 본문은 kFIP를 통해 첫 번째 ‘최동원 상’ 수상자를 예상하기 위한 글이다. 아직 시즌 초반이기는 하지만, 이제 시즌의 1/3 정도를 소화했기 때문에 전혀 무의미한 예상은 아닐 것이다. 진보적 기록의 결정체인 WAR이야말로 시즌을 더 많이 소화한 뒤에 평가해야 의미가 있기 때문에 kFIP를 통해 예상함을 먼저 언급한다.
양현종의 독주?
먼저, kFIP 순위를 보자.
ERA 순위와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RA 3위인 유희관은 kFIP에서는 14명 안에도 들지 못한다. 그 이유는 유희관이 맞춰 잡는 투수이기 때문이 아니다. 유희관은 볼넷이 적은데 삼진도 많지 않으며 올해 유난히 피홈런이 많기 때문이다.
양현종은 ERA와 마찬가지로 kFIP에서도 1위다. 이유는 간단하다. 피홈런이 하나도 없는 가운데 엄청난 탈삼진 기세를 이어가면서 늘 문제시되던 볼넷은 놀라울 정도로 줄었다. 그런데 이닝이터이기까지 하니 양현종의 기록은 좋을 수밖에 없다.
양현종의 지금의 기세를 이어간다면 첫 번째 ‘최동원 상’의 주인공은 양현종이 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그 일이 실현된다면 양현종이 비록 운이 따라주지 않아 많은 승을 거두지 못하거나 골든글러브를 수상하지 못해도 영예로운 일이 될 것이다. ‘최동원 상’만큼은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것이 말이다.
하지만 변수는 존재한다.
밴덴헐크의 추격!
위 표는 현재 규정이닝을 소화한 투수만을 집계한 것이다. 그런데 규정이닝 충족을 눈앞에 두고 있는 다른 한 선수의 기세가 양현종을 위협하고 있다. 주인공은 삼성 라이온즈의 밴덴헐크다. 보다시피 양현종의 kFIP와 0.2도 차이 나지 않는다.
밴덴헐크의 시작은 좋지 않았다. 시즌 첫 등판인 롯데전에서 5이닝 동안 6실점 하며 패전투수가 되었고 두 번째 등판인 두산전에서는 1이닝만 소화하고 어깨 통증으로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약 한 달간 1군에 등판하지 못했다.
하지만 복귀 후 밴덴헐크는 애초에 그에게 기대했던 것을 훨씬 웃돈다. 네 경기에 등판해 모두 6이닝 이상을 소화했고 한 차례 완투도 기록했다. 그러면서 28이닝을 소화하는 동안 피홈런은 단 한 개에 불과하며 36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면서 허용한 볼넷이 5개, 사구는 단 한 개도 없다. 복귀 후 페이스로는 양현종을 위협하고도 남는다. kFIP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기록이 ‘특급수치’다.
사실, 밴덴헐크의 이런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줄어든 볼넷이다. 구속과 구위는 활약상이 좋지 않았던 시절에도 리그 정상급이었다. 다만, 제구에 문제가 있어 스스로 무너지는 경우가 잦았다. 그런데 돌아온 밴덴헐크는 과감하게 S-존으로 자신의 공을 던진다. S-존을 잘 활용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저 워낙 구위가 뛰어나기 때문에 피하지 않고 정면승부하는 것이다.
그래도 양현종의 우세
kFIP는 누적기록을 통해 산출되기는 하지만, kFIP가 더 뛰어나다고 해서 ‘최동원 상’ 수상 조건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 밴덴헐크가 한 달 정도 쉬는 동안 양현종은 거르지 않고 마운드에 올라 최고의 활약을 했다.
그 결과, 양현종과 밴덴헐크는 약 30이닝의 차이를 보이며 탈삼진의 차이도 26개다. 두 선수가 지금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시즌 막판에 가서 밴덴헐크가 이닝과 탈삼진 부분에서는 양현종과 치열한 경쟁을 하거나 앞설 수 있다.
하지만 줄어들지 않는 수치가 바로 출장경기 수다. 양현종에게 한 달 이상의 공백이 생기지 않는 이상 출장경기 수의 차이를 줄일 수는 없다. 물론, 그 차이가 겨우 3~4경기 차이이기는 하다. 그런데 3~4경기 차이를 중요하지 않게 여긴다고 해도 양현종이 더 우세하다. 그 이유는 한 달가량 쉬면서 약 4회의 등판을 거른 밴덴헐크보다 선발 등판을 단 한 차례도 거르지 않은 양현종이 ‘최동원의 이미지’에 더 부합하는 투수이기 때문이다.
차별이 없는 상이 되기를!
그간 KBO가 주관하는 모든 상은 외국인 차별이 분명 존재했다. MVP는 우즈인데 골든글러브는 이승엽인 경우가 있었으며 누가 봐도 시즌 최고의 투수는 특정 외국인 투수인데 한국 국적의 선수가 골든글러브를 탄 것이 최근 2년간의 일이다.
또한, 투수 골든글러브는 구원보다 선발에 더 관대했던 것이 사실이다. 2013년에 손승락이 골든글러브를 탈 수 있었던 것은, 구원에 대한 차별보다 외국인에 대한 차별이 더 컸기 때문이지 그가 정말 시즌 최고의 투수였기 때문은 아니다. 구원투수들로만 한정 지어도 손승락을 최고의 구원투수로 보기엔 쉽게 동의하지 못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최동원 상’은 ‘사와무라상’보다는 ‘사이영상’에 더 가까울 전망이다. ‘사와무라상’은 25경기 이상 등판, 15승 이상, 10완투 이상 등의 자격기준이 있어 수상자가 선발투수로 제한한다. 하지만 ‘최동원 상’은 투수의 보직을 제한하지 않을 예정이다.
사실, 전혀 걱정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원로라면 그만큼 보수적일 수 있으며 첫 수상이니만큼 한국 선수들에게 심리적 추가 기울기 마련이지 않겠는가? 하지만 첫 번째 수상의 공정성이 앞으로 ‘최동원 상’의 권위를 결정짓는다는 것을 선정위원들 또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걱정이 기우로 끝나기를 바랄 뿐이다.
마치며…
비슷한 주제로 시즌의 반이 지나고 약 2/3 지점쯤에 다시 쓸 예정이다. 그때는 kFIP와 WAR를 동시에 살펴보지 않을까 싶다. 과연 양현종의 독주가 계속될 것인지, 아니면 밴덴헐크의 매서운 추격이 역전을 일궈낼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새로운 강자가 나타날 것인지 궁금하다.
‘최동원상’이 공명정대한 수상을 해 한국프로야구 최고 권위를 가진 투수상이 되기를 기원한다. 굳이 KBO 공인을 받을 필요는 없다. 상이라는 것은 시상하는 주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수상하는 주인공이 중요한 것이니까. 상을 받는 사람이 대다수 사람이 동의할만한 투수라면 유명무실한 KBO의 공인을 받지 않더라도 ‘최고상’의 영예는 따라올 것이다.
원문: Colorful YAG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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