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가 가진 의미는 광범위하다. 콘텐츠, 플랫폼, 저널리즘 등 미디어란 단어는 정말 많은 영역을 포괄한다. 언뜻 들으면 사기꾼인데 저렇게 보면 또 전문가다. 미디어 자체가 연결이라는 함의가 있기 때문에 어디다가 붙여도 말이 되는 한계 때문이다.
방송국, 미디어 스타트업(버티컬 미디어라고 부르겠음), 플랫폼 모두 미디어를 외치지만 사실 각 플레이어가 해석하고 중요시하는 미디어 사업은 다르다. 대략적으로 정리해보자. 숫자는 귀찮아서 가져온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 대략적인 흐름이 이정도구나, 생각하시면 될 것 같다.
방송국의 미디어 사업 : 우린 미디어 회사가 아니라 솔루션 회사다
기본적으로 방송국은 콘텐츠 판매가 아니라 광고 판매로 먹고 사는 곳이다. 유명한 콘텐츠로 시청자를 TV채널 앞에 묶고, 그 중간중간에 광고를 끼워넣어 돈을 번다. 카카오 페이지, 넷플릭스 등 유명 사업자가 콘텐츠를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해 매출을 일으키는 소위 D2C 방식이 요즘 대세지만, 근본적으로 방송국은 광고 사업에 기대기 때문에 B2B 사업자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시청률이 중요하다. 시청률이라는 지표를 통해 광고주를 설득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깐, 스튜디오 드래곤이나 더스토리웍스는 각각 tvN과 SBS에서 분사한 회사이지 방송국이 아니다. 방송국은 채널이 있는 사업자이며, 콘텐츠 제작능력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외주를 맡겨도 되고, 내부 제작을 해도 된다. 중요한 건 채널이다. 시장 전체에 한정된 자산이기 때문에.
방송국에서 디지털 콘텐츠의 매출은 미미하다. 흔히들 디지털 광고 시장이 떡상한다고 하지만, 이 디지털 광고 시장은 페이스북과 구글이 듀오폴리 형태로 지배하고 있다. 한국은 네이버, 카카오, 구글, 페이스북이 나누어 먹는 시장이다. 그렇기에 디지털 광고 시장이 성장하는 건 맞지만, 방송국의 디지털 콘텐츠 사업부가 큰 돈이 된다는 문장은 옳은 명제가 아니다. 규모 차이가 어마어마하다. 반토막 난 MBC TV광고 매출이 1,174억인데, 디지털 콘텐츠만으로 이 광고 매출을 메우기는 지금까지는 어렵다. 워크맨과 나영석 예능이 100억 매출을 만들고, 이 예능이 1년에 10개 정도 터지면 가능하겠다.
그래서 최근 방송국은 기존 방송 프로그램을 잘게 잘라서 올리는 매시업 전략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는 팽창하는 유튜브 생태계의 흐름에 맞춘 전략이다. 유튜브는 상상 못하는 속도로 팽창하고 진화하고 있고, 광고 수익도 빨아들이고 있다. 모두가 넷플릭스가 망하는 시나리오는 써도, 유튜브 패망 시나리오는 안 쓴다.
이 플랫폼에 자사 콘텐츠를 3~5분 내외로 잘라서 오지게 쏟는 방식이다. 5분 순삭, 동물 농장 등 이름은 다르지만 방식은 같다. 이게 돈이 되냐고? 된다. 평균 콘텐츠 조회수 얼마 안되는 유튜버 애들도 노딱만 아니면 먹고 살 수 있지 않나. 방송국 콘텐츠 중에 50만 넘는 조회수 찍는 콘텐츠 오지게 많다. 뚜껑과 야마만 다르게 해서 올리면, 펑펑 터진다. 90년대생한텐 너무나 익숙한 무한도전이 2000년대생에겐 새롭고 재밌는 콘텐츠라는 걸 고려하면, 문자 그대로 콘텐츠계 무안단물이다.
이 방식에 중요한 건 생산공정이다. 앞서 말했듯 이 전략은 방송국만 가능하다. 아래 요건 때문이다.
- 기존 IP가 있고
- 정리가 잘 되고
- 생산 인프라가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인공지능이 만들든, 사람이 만들든 생산 비용을 더더욱 낮추고 최대한 다양한 형태의 매시업을 올리면 된다. 매쉬업의 본질은 유통업. SMR에 오지게 유통했듯, 유튜브에 오지게 유통하는 게 지금까지의 매시업이고 앞으로의 매시업은 이를 어떻게 광고상품으로 만들 것이냐의 여부다.
앞으로 관건은 이 매시업을 묶어서 광고 상품으로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5분 순삭에 인서트 광고 이미지를 끼워넣는다든지 드라마 속 비 오는 장면만 묶어서 ASMR로 넣고 중간중간에 제품을 노출한다면? TV시청률이 떨어지는 만큼 부족해지는 노출수를 매쉬업으로 메우고 이를 광고 상품으로 묶는 건 충분히 상상 가능한 시나리오다. 아니면 하다못해 유튜브 설명란을 팔아도 되겠지. TV에선 상품을 봐도 넘어가는 게 졸라게 귀찮았는데, 유튜브에선 되잖아?
물론, 디지털 브랜디드도 있다. 여러 방송국의 브랜디드 콘텐츠는 버즈피드류 버티컬 미디어와 달리 단건이 많다. 이는 디지털 브랜디드가 제작사 형태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자사 미디어에 브랜디드를 올리는 게 아니라, 광고 대행사+프로덕션 시스템으로 진행되어 단건 브랜디드를 많이 만드는 방식이다. 콘텐츠 제작보다는 광고 사업에 가깝다. 이 방식의 핵심은 얼마나 많은 프로젝트를 동시에 돌리냐다.
콘텐츠 판매는 아주 극소수의 사례다. 무한도전은 광고로 먹고 살았지, 콘텐츠 판매로 먹고 살진 않았다 (물론 IPTV VOD 판매 챠트에 부동의 1위였다).
요약하면, 방송국의 미디어 사업은 광고 사업이 메인이고 콘텐츠는 광고 사업을 위한 것. 콘텐츠 판매가 이야기 나오지만, 실상 이는 큰 매출을 차지할 수가 없음. 왜? 광고 사업이 너무나 크고 콘텐츠 판매로 다 먹여살리기엔 너무나 큼. 그렇기에 방송사의 미디어 사업의 본질은 유통업에 가까움. IP를 무지하게 잘라내서 유튜브와 SMR에 올려 광고 수익을 먹든, 플랫폼에 올려 자잘하게 먹든 무엇이든.
반면, 미디어 스타트업의 미디어 사업은 버티컬 미디어 그 자체다
TV 채널과 달리 버티컬 미디어의 경우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 고정비가 덜하고
- 콘텐츠를 존나게 만들어브랜드 자산을 만들어야 한다.
초대에에에에에에박 콘텐츠를 만들어야 했던 TV방송국과 달리 버티컬 미디어는 그 브랜드 자산에 어울리는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 Tasty가 Tasty가 될 수 있던 이유는 1) 조회수도 중요하지만 2) 음식 전문 버티컬 미디어라는 브랜드 자산에 맞는 콘텐츠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버티컬 미디어로 가야만 하는 이유는, 유튜브와 페이스북 등 플랫폼을 활용한 버티컬 미디어가 TV채널처럼 브로드하고 엄청난 조회수를 만들어내느 초거대 방송국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상 유튜브와 페이스북 채널로 찍어낼 수 있는 부가가치(조회수 포함)에 한계가 있다는 게 결론이 아닌가 싶다.
테이스티가 후라이팬이나 아이스크림을 팔고, 복스가 넷플릭스에 오리지널을 판매하고, 바이스가 HBO에 뉴스쇼를 공급하고, 닷페이스가 닷페피플 1000명을 묶어낼 수 있던 것은 근본적으로 브랜드 자산이 있기 때문이다. 버티컬 미디어(그 찬양받던 MIC마저!) 가 실패하는 이유는 이 브랜드 자산을 쌓을 떄까지 ‘존버’가 안되거나 쌓고 보니 그 브랜드 자산이 돈이 안 되거나다.
방송국에 비해 버티컬 미디어의 미디어 사업은 요약이 간단하다. 팬 비즈니스, 브랜드 비즈니스, 충성도 비즈니스 등이다. 결국 해당 브랜드가 코어 팬덤을 얼마나 모으느냐다. 이는 방송국과 명백히 다른데, 방송국은 ‘채널’의 팬이나 시청자를 신경쓰지 않는다. 왜냐고? 프로그램별 시청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린 무한도전에 환호하지 MBC에 환호하지 않는다. 반대로 보면 광고주는 무한도전을 보고 돈을 쓰지, MBC에 돈을 쓰는 게 아니다.
다만, 버티컬 미디어도 저 브랜드 자산을 쌓아서 브랜디드 콘텐츠를 만들거나 플랫폼 광고 수익을 받는 게 주 수익이었는데, 요즘엔 커머스 연결을 많이 노린다. 자기네가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퍼포먼스 마케팅 대행을 하거나, 대형 브랜드와 턴키 계약을 맺어서 모든 콘텐츠에 구매 링크를 삽입해서 수익을 나눈다. 기술 발전 찬양해라.
TV시장에 비해 성장세는 높으나, 이게 돈이 되는지는 미지수다. 버즈피드와 복스도 매해가 고난의 연속이고 투자금을 고민하기 때문이다. 물론 덩치를 가볍게 하고, 버티컬 미디어 하나로만 가면 먹고 살 수야 있을 것 같은데, 이런 버티컬 미디어를 여러 개 돌리면 더 돈이 되기에 하나만 하는 건 아쉽기 마련이다. 결국 성장세를 바탕으로 투자금을 받고, 이 투자금으로 다양한 BM에 도전해보는 게 이곳의 국룰이자 학계의 정설.
다양한 BM에 도전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자 리스크 헷징이 되는 거고 반대로 하나의 BM만으로 먹고 살기 어렵단 뜻. 브랜드 자산 형성까지 존버의 싸움.
플랫폼의 미디어 사업은 한 줄로 요약하면 ‘빨대’다
‘미디어’ 이름을 달고 조 단위 매출을 올리는 곳은 (네이버와 카카오)를 제외하면 IPTV 사업자가 전부일텐데, 여기 매출은 주로 1) 채널 시청권이나 2) VOD판매다. 매출 성장세는 2)번에 달려있다.
웹툰을 비롯한 무료 콘텐츠 플랫폼은 광고 매출이 기반이다. 웨이브나 과거 옥수수는 무료 시청이 가능했는데, 이건 중간 광고가 매우 많았기 때문이다. 최근 글로벌하게 다시 각광받고 있는 광고 기반 무료 플랫폼 이용이다.
한국의 웹툰 사업자는 기존 플랫폼 사업자들에게 이용자 체류 증대 목적이었고, 처음에는 광고를 붙이다가 이젠 1) 플랫폼을 포함한 미디어 산업 전체가 성장하면서 2) 제작사를 붙여 OSMU화하고 3) 플랫폼에 판매하며 수익률을 높이고자 한다. 결국 모든 서비스가 수익화를 고민해야 하기에 플랫폼 미끼상품이던 친구들이 수익화를 고민하다가 미친 디즈니와 넷플릭스의 성공과 시장 침투 덕분에 ip에 대한 관심 +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및 판매로 괜찮은 수익성을 노릴 수 있게 되었다.
이 ip 보유사업자가 콘텐츠 판매로 돈을 벌 수 있게 된 이유는 이 콘텐츠 제작에 자기네 돈이 안 들어가기 때문이다. 제작사의 투자+외부 사업자의 투자+플랫폼의 투자로 자기네 비용을 최소화하되 매출은 높일 수 있고, 무엇보다 이 제작 인력을 외부에 두기 때문에 고정비도 덜하다.
마무리하며
아 손 아프다. 하여튼 요약하면, 여튼 요약하면 방송국 미디어 사업은 1) 개별 프로그램(요즘 말로 치면 콘텐츠이자 IP)으로 쌓은 채널 영향력으로 받는 광고 사업이 전통 국룰이었는데, 최근 TV시청률이 하락하고 플랫폼(구글, 페이스북, 네이버, 카카오 등) 대비 광고 효과가 떨어지고 기능도 구리기 때문에 위기였다. KMS·CJ·종편은 이를 기존 TV프로그램 매시업 (유튜브, ASMR)으로 제작해 유통하는 전략으로 헷징하고자 한다. 플랫폼 광고 수익이라는 무안단물이 있지만 성장을 위해 이를 묶어서 하나의 광고 상품으로 판매하는 것을 고민하는 듯하다. 요지는 1) 프로그램을 2) 어디에 유통해서 3) 숫자를 만들어서 4) 광고 상품으로 파느냐다. 아님 말고.
버티컬 미디어 사업은 브랜드 자산을 축적할 때까지의 싸움이다. 기존까지 수익성이 증명된 버티컬 미디어는 1) 버티컬 미디어로서 정체성을 겨냥하고 2) 브랜드 자산을 쌓기 위한 3) 콘텐츠를 싸게 많이 만든다. 이렇게 축적된 브랜드 자산(브랜드, 평판, 팬, 충성팬 블라블라)을 활용해 브랜디드 콘텐츠를 제작하거나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용역을 하거나 커머스를 한다. 요즘엔 이 커머스가 국내외 전세계 우주를 포함해서 가장 화두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이 이유는 D2C 비즈니스의 성행 때문인데, 브랜드 입장에서 굳이 수수료 떼먹는 타 플랫폼이랑 놀지 않고 미디어랑 직접 놀면서 수익성을 높이면 되니까. 아님 말고.
플랫폼의 미디어 사업은 기존에 1) 미끼 상품이었다가 2) 판매 수익 빨대였다가 3) 이젠 콘텐츠 제작 및 판매까지 진화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유는 정말 다양한 플랫폼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또한 플랫폼 안에서 시작한 사업자가 외부로 나가면서 수익성이 중요화됐는데 글로벌 사업자의 훌륭한 선례 및 시장 성장으로 인해 이 수익성 실현이 가능하게 된 것으로 보이며, 이것의 핵심은 IP는 보유하되 제작 인력은 바깥에 두고 수익은 냠냠인 것으로 보임. 아님 말고.
방송국 미디어 사업은 유통 채널이 중요하고, 버티컬 미디어 사업은 브랜드 자산이 중요하고, 플랫폼 미디어 사업은 사실 그 플랫폼 구축 기술력이 중요하다 (콘텐츠는 2단계라고 보임). 아님 말고.
원문: 구현모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