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내가 일하고 있는 Bay Area도 여러 가지 변화를 겪고 있다. 아마도 몇 년 후쯤에는 지금 겪는 여러 변화들 중의 몇몇은 일상화되지 않을까 싶지만, 개인적인 기록의 차원에서라도 한 번 정리해본다.
재택근무의 일상화
Be Safe
내 기억이 맞다면, 지난 3월 초부터 재택근무를 하라는 회사의 공지가 있었다. 이는 Santa Clara County의 건강 관리 규정과 궤를 맞추는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코로나19의 감염자들이 하루 한두 명, 많게는 10명 안팎으로 보고되는 수준이었다. 일찍부터 재택근무를 시작했으니 상황도 금방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있었다. 그래서 재택근무를 하는 목적도 ‘현 상황에서 조금만 견디면서 건강을 지키고 업무에 차질이 없도록 집에서 일하자’였다. 말 그대로 ‘조금만 버티자’라는 생각이 강했다.
Be Equipped
지금이 7월 말이니까, 재택근무를 시작한 지 4개월이 지났다.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집에서 일하고 있다. 페이스북과 구글은 올해 말까지 재택근무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고 5월 말 정도부터 언론을 통해 알려 왔다. 내가 일하는 이베이의 경우에도 처음에는 6월까지만 재택근무를 진행한다고 했지만, 지금은 올해 말까지로 정책을 변경했다. 상황 변화에 따라서 기간이 더 연장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상황이 길어지자, 초반에 ‘조금만 버티자’라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지금 상황에 맞는 최적의 환경을 만들자’라고 생각을 바꿨다. 이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일하기 위한 제품들을 구비하기 시작했다. 웹캠, 스탠딩 데스크, 마이크, 모니터 등등 사무실에서 일할 때와 다름없는 환경을 구축하기 시작한 것이다.
회사에 따라서는 재택근무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도록 보조금을 지원해주는 곳도 있다. 나 또한 스탠딩 데스크를 구매 후 회사에 정산 처리를 했다.
Be Flexible
페이스북은 얼마 전 이렇게 발표했다.
모든 직원들이 꼭 사무실에서 일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트위터의 경우 직원이 원할 경우 평생 집에서 일을 진행할 수도 있다는 공격적인 회사 정책을 발표했다. 몇 달간 해보니 대면 업무가 사라진 불편함은 있지만, 업무 퍼포먼스와 전체적인 생산성이 떨어질 정도는 아니었다. 덕분에 좀 더 유연한 업무 환경이 조성된 듯하다.
이는 머지않아 고용 정책에 있어서도 큰 영향을 미칠 것 같다. 가령 이전에는 Bay Area에 있는 테크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서 다른 지역에서 이곳으로 이사를 와야 했는데, 앞으로는 그럴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매니저도 얼마 전에 1:1 미팅을 진행하면서 ‘너도 원한다면 올해 말까지 한국 가서 일해도 좋아’라고 했다. 물론 마음이야 정말 그러고 싶지만, 여러 가지 부수적인 문제들(비자 신분 문제, 세금 문제, 시차 문제, 연봉 조정 문제 등등)로 인해서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중에는 이런 문제들도 해결되리라 본다. 이곳에 있는 회사에서 소속되어 있지만, 실제 일하는 곳은 한국(혹은 그 이외의 국가)이 될 수도 있겠다. 연봉은 미국 기준, 세금은 한국 기준으로 했으면 좋겠다.ㅎㅎ
배송 서비스의 변화
미국 살면서 불편했던 서비스 중 하나는 단연 배송이었다. 필요한 물품을 주문하고 배송을 시키면 배송비가 물건값만큼 나가는 경우도 있었고, 배송 시간도 며칠이나 몇 주씩 걸리는 때도 많았다. 그래서 필요한 물건은 미리미리 주문하는 습관을 들이기도 했다. 약 $100 정도 되는 아마존 프라임 연간 멤버십에 가입하기도 했다. 1~2주씩 걸리는 유료 배송이 1주일 이내로 단축되고, 많은 경우 무료 배송도 해주기 때문이다. 나를 제외하고도 많은 유학생들이 가입했다. (학생은 50% 할인)
그래도 아마존은 엄청나게 큰 회사고 물류망도 넓고 촘촘해서 그나마 나은 편이다. 음식 배달이라든가 식료품 배달 같은 상대적 소규모 서비스들은 몇 년 전만 해도 많이 없었고, 그나마 있는 것도 굉장히 한정되어 있었다. 거기에 느리고 요금도 비쌌다. 최근 들어서 Uber Eat, Door dash, Grubhub 등 다양한 음식 배달 서비스가 생겨났고, Instacart, Amazon Prime Now 등 식료품 배달 서비스도 늘어났지만 역시 비용이 꽤 비싸다. 물건 또한 내가 직접 가서 고르는 편이 정확했기 때문에, 나 같은 경우는 굳이 사용할 일이 없었다.
하지만 코로나19으로 인해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집에 머물게 되고, 외식과 쇼핑을 못 하게 되자 배달 서비스들은 경쟁적으로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가격을 낮추기 시작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배송 비용과 팁을 따로 지불해야 했지만, 요즘에는 일정 금액 이상을 주문하면 무료로 배달해주는 것이 흔해졌다. 예전에는 배송의 관점이 ‘내가 너 대신 물건을 배달을 해주니까, 네가 그 비용을 지불해야지’라는 식이었다면, 이제는 ‘우리 제품/서비스를 이용해 주시니 배송비는 받지 않겠습니다.’라는 마인드로 바뀐 듯하다.
아마도 이러한 배달 서비스 문화는 코로나19 상황이 나아지더라도 쉽게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지는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무료배송 및 빠른 서비스를 경험한 사용자들에게 다시 일정 수준의 비용을 내라고 하기에는 리스크가 크기 때문이다.
가족끼리 집안에서
4개월 넘게 하루의 시간 대부분을 집에서 보내기 때문에, 집에서 일하는 공간을 꾸리는 것 말고도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기 위한 여러 준비가 필요하다. 가령 집에서 빵이나 케이크를 만들 수 있는 재료나 기계, 도구를 준비한다든가 맛 좋은 커피를 마시기 위해 가정용 에스프레소 기기를 구입한다거나, 아이들의 교육 자료를 출력하기 위한 프린터기, 집에서 직접 여러 가지 채소나 과일을 심고 가꾸기 위한 도구들(미국은 마당 있는 집이 흔하다), 가족들끼리 즐길 수 있는 여러 가지 게임기, 보드게임 등등. 예전에는 집 밖에서 하던 많은 일들을 집에서 가족과 함께하려니까 여러 가지 필요한 것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인기 있는 제품들은 쉽게 품절되어서 구매하기 힘든 경우도 있고, 평소에는 할인해서 팔던 것들도 요즘에는 정가 주고도 구입하기 어려운 일들도 많다.
요즘 들어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받는 또 다른 분야는 캠핑이다. 예전 같으면 비행기 타고 가서 호텔에 머물며 맛있는 음식들을 먹으러 다니겠지만, 더 이상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니 가족들이 여행 내내 위생과 관련된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는 캠핑이 큰 관심을 받고 있다. 나처럼 캠핑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도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니, ‘한번 해볼까?’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래도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작년 가을 11월에 포틀랜드에 4일간 출장을 간 적이 있었다. 지금 살고 있는 Bay Area와는 다른, 코가 시릴 정도로 바스락거리는 아침 공기와 스웨터 사이로 스며드는 늦가을의 기운을 내가 온몸으로 느낄 수 있어서 출장 기간 내내 기꺼이 30여분씩 걸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생각했다.
내년에는 꼭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와야지.
스스로 약속했던 그 ‘내년’은 올해가 되었지만, 아무래도 그 약속을 올해 내에는 지키기 힘들 것 같다. 지금의 상황을 좋게 이야기해서 뉴 노멀이라 말한들, 내게는 절대 노멀이 되지 못할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보통의 삶이란 아내, 아이와 함께 마스크 따위를 쓰지 않고도 늦가을의 거리를 이리저리 걸어보는 것이니까.
원문: seh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