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코로나 사태로 인해 재택근무가 장기화되면서 팀원들과 재택근무 팁을 공유하기 위해 구글에 ‘재택근무 꿀팁’을 검색해보았다. 그리고 그 결과 검색 첫 페이지에 ‘마우스 지글러‘라는 프로그램을 발견했다. 바쁘신 분들을 위해 본문의 요약 내용을 그대로 캡처해봤다.
관심일정 구독 서비스 린더를 만드는 히든트랙은 현재 13명으로 구성되어 있고 나는 만 3년째 그 팀의 대표를 맡았다. 우리는 코로나가 다가오기 한참 전인 2019년 1월부터 11 to 2 기반의 탄력근무와 매주 수요일 전체 원격근무를 시행해왔다. 그러던 중 지난 2월 23일 정부의 코로나19 경보가 최고 단계인 ‘심각’ 단계로 격상되었고, 그 즉시 기한 없는 전사적 원격근무를 시행했다.
회사를 운영하며 재택/원격근무의 최종 의사 결정을 내리는 대표의 입장에서 위의 마우스 지글러 같은 검색 결과를 보면 혼란스러워질 때가 있다. 나는 대표로서 올바른 의사결정을 내리는 걸까. 당장 온 힘을 다해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에서 괜한 객기를 부리는 건 아닐까. 그냥 눈치 보여서, 다른 회사들이 다 하니까 이런 결정을 내리는 건 아닐까.
우리 린더팀이 재택/원격근무를 시작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뭘까.
1. 매니저의 역량
우리 팀은 대학생 창업팀으로 시작했다. 2017년 6월, 창업자 5명 모두 아직 대학을 졸업하기 전 회사를 창업했고, 다행히도 그 5명 모두 무사히 졸업 후 현재는 팀에서 각자의 역할을 도맡았다. 지금이야 큰 고민이 아니지만 당시에는 학교 수업 때문에 서로의 출근 시간을 통일시키기가 어려웠고, 이로 인해 같은 시간에 한 공간에서 협업하는 시간을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로 인해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여러 다툼이 있었고, 당시 운영뿐 아니라 제품 개발 매니징도 맡았던 나는 엔지니어 팀원에게 더 자주, 수시로 깃헙 커밋을 요구했다. 파일 및 폴더의 추가/변경 사항을 저장소에 기록하는 커밋이 자주 안 되면 일을 하는지 안 하는지 ‘내가’ 알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해당 팀원은 자신을 신뢰하지 않는다며 즉각적으로 불만을 표현해주었고, 며칠 후 나는 내 생각에 오류가 있음을 인정 후 사과했다. 며칠간 고민한 결과 매니저가 해당 업무와 구성원의 역량을 완벽하게 이해한다면 ‘보고를 위한 커밋’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었다.
당시 내가 더 잦은 커밋을 요구했던 이유는 내가 팀의 개발 현황을 완벽하게 이해할 만큼의 기술 지식이 부족한 동시에 해당 구성원의 성향과 역량을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기에 더욱 ‘시간의 투입’으로 구성원의 성과를 판단하려 했고, ‘주기적인 보고’는 결국 매니저인 나 본인을 위해 필요했었던 장치라는 걸 깨달았다.
이후 크게 두 가지 변화를 추구했는데, 내가 현황을 파악할 역량이 되지 않는다면 1) 대표로서의 나는 각 분야의 전문가인 구성원 전원에게 각자의 일을 믿고 위임한다는 것과, 2) 한눈에 현황을 파악할 수 있는 그런 역량이 있는 분들을 모셔서 굳이 매번 보고를 받지 않더라도 모두가 불안하지 않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었다.
다행히도 작년에 좋은 분들을 정말 많이 모시면서 나 자신과 팀 모두에게 보다 안정감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2. 상호 간의 신뢰
2019년 매주 수요일 원격근무를 시작하기 전 2018년 한 해 동안 우리는 2주에 한 번씩 원하는 카페로 출근할 수 있는 ‘카페데이’라는 제도를 만들어서 운영했다. 최초에 카페데이를 만들어서 운영했던 이유는 크게 3가지 정도가 있었다.
- 각종 미팅 없이 개인의 업무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 출퇴근 시간을 아끼면 업무 시간을 극대화할 수 있다.
- 카페의 화이트 노이즈를 활용해 집중력을 높일 수 있다.
등의 명분이 있기는 했지만 실제로는 대부분,
- 팀원과 격렬한 논쟁 후 하루 정도는 잠깐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 아침에 늦게 일어나서 준비하고 출근하기가 너무 귀찮다.
- 그냥 회사가 가기 싫다.
등의 이유로 사용이 된 듯하다. 당시 카페데이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특정 시간 내에 카페에 도착해서 인증샷을 올려야 했는데,
카페데이 시행 1년 만에 전체회의에서 ‘왜 꼭 카페여야 하는가’와 ‘왜 굳이 인증샷을 남겨야 하는가’하는 질문이 나왔다. (사실 이미 집에서 하는 분도 많긴 했는데 이름은 한동안 계속 유지했다.)
2017년과는 달리 2018년에 나온 이 질문에는 조금 더 많은 시간을 들여 고민했던 것 같다. 정말 길게 검토해본 결과, 우리가 서로를 신뢰한다면 인증샷을 올릴 필요도 없었고 굳이 카페여야 할 필요도 없었다. 생각보다 당연한데 그것을 회사 대표로서 인정하기는 쉽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사내 메신저 슬랙(slack)에 어텐던스봇(attendancebot)이라는 챗봇 인터그레이션(integration)을 추가해서 출퇴근을 공유하기로 했다. 인증사진을 남길 필요도 없고, 언제 어디에 위치했는지 공유할 필요 없이 채팅창에 in과 out을 입력하면 체크인/아웃이 표시된다. 다행히도 도입한 지 1년이 넘은 시점에서 현재까지는 큰 문제 없이 잘 작동하는 듯하다.
3. 제품을 향한 오너십과 성과의 정당한 보상
사실 위 2가지 내용에 전제되어야 하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팀으로서 우리 모두가 옳은 제품, 세상에 도움이 되는 제품을 만들고, 그것을 통해 응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다.
우리 회사는 1년에 두 번 연봉 협상, 즉 반기 협상을 시행하는데, 이는 단순히 ‘좋은 복지’의 개념이 아니라 실력 있는 개인을 놓치지 않기 위해 회사가 꾸준히 최선을 다할 것이며, 개개인 또한 근무 기간 동안 회사 내에서 본인의 능력을 극대화해 시장에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대다수의 회사가 1년에 1회라는 연봉협상 기준을 적용하는데 반해 다수의 스타트업이 2배나 더 자주 이 과정을 거치는 이유는 그만큼 회사의 상황과 대내외적 변화가 업계의 평균보다 빠르기 때문이며, 한걸음 더 나아가서는 개인의 성장 또한 업계 평균보다 더 빠르게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대표, 창업자는 몇 배는 더 빨라야 하는 것 같다).
린더팀에서는 이외에도 구성원 전원의 스톡옵션 부여와 함께 여러 환경과 장치들을 마련해 제품을 향한 오너십과 업을 향한 소명감을 증진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구성원 각각이 주인의 관점에서 생각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실제로 주인이 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톡옵션이라는 장치가 모두를 위한 해결책이 될 수는 없지만, 그것이 최소한 우리 팀에게는 작은 시작이었으면 한다.
구성원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그것을 유지시킬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책임은 전적으로 대표인 나에게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인정하는데 시간이 조금 오래 걸린 것 같다.
마치며
결국 지난 1년간 느낀 점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이렇다.
회사(매니저)가 자신을 신뢰한다는 사실을 소명감 있는 구성원들이 믿을 때, 원격근무의 효과는 극대화된다.
물론 이번 사태가 어느 정도 소강되는 대로 우리 팀도 다시 사무실에서 협업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개인의 업무효율보다 팀 전체의 업무효율을 우선시하는 이상 24/7의 온전한 원격근무 체제는 정말 많은 준비가 된 조직에서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개인으로서, 회사 대표로서 장기적으로는 시의적절한 원격근무가 사회적으로 더 활성화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기사를 통해 이번 코로나 사태로 국내 회사 중 약 40% 정도가 재택근무를 시행 중이거나 시행 예정이라는 내용을 접했다. 갑작스런 전사적 재택근무로 인해 회사가 성과를 내지 못하고 무너질 상황이라면 재택근무를 보류하는 판단을 비난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코로나가 잘 끝나더라도 많은 직장이 없어진다면, 우리는 이전과 같은 삶을 영위 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는 어쩌면 아직도 많은 준비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육아&가사를 분담해야 하는 부부의 재택근무와 혼자 사는 싱글족의 재택근무는 다를 수밖에 없고, 30분 거리에서 출근하는 사람과 2시간 거리에서 환승하며 출근하는 사람의 재택근무는 다를 수밖에 없다.
각자의 상황을 온전히 공감받고 이해받을 수 있는 사회가 구성되기 위해서는 아직도 많은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최전선에서 코로나에 맞서 싸우는 의료진과 더불어 오늘도 개인의 상황과 환경에 맞게 대처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많은 회사와 그 구성원들을 응원한다.
원문: 역삼동까만콩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