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여러 이유에서 코로나 대처에 대해선 영어 미디어를 더 많이 본다. 첫 번째 이유는 한국 미디어에 노이즈(팩트 오류, 정파적 프레이밍. 결론 이미 내고 몰아가기)가 ‘아직도’ 너무 많이 끼어 있어서, 그런 편견 없는 외신이 심지어 한국 상황에 대한 팩트 인지에 더 낫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이제 막 코로나의 전염병 위험과 경제위기를 느끼기 시작한 곳, 특히 미국처럼 정치적으로 극명하게 갈려 있으면서도 대선을 앞둔 곳에서는 어떤 방역과 경제 정책을 펼치는지 궁금해서이다.
외신에서는 한국 대응에 대해 비교적 호평하고 있다. 정부가 잘한 것도 있지만 그동안의 공공의료 인프라와 의료진의 희생에 상당 부분 빚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래는 2-3주간 외신을 보면서 느낀 점들이다.
1.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했다
- 인구당 병상수는 미국 이태리에 비해 많지만 중환자 병상수는 적은 한국
공공의료 평가 수치 중에 인구당 병상 수가 있는데 우리나라는 1천 명당 12개다. 이태리(3.2개)와 미국(2.8개)에 비해 높다. 그런데 우리나라 인구당 중환자 병상수는 일반 병상수에 비해 적은 편이다. 10만 명당 10.6개 수준으로 이태리(12.5개)와 미국(34.7개)보다 떨어진다. 의사 숫자도 이태리나 미국에 비해 적은 편이다.
그래서 아마 한 두 주만 강력한 액션을 취하지 않았더라도 중환자 병상수가 모자라서 기존 중환자와 섞이고, 중환자 일부를 포기하고 국가 전체를 걸어 잠그는 이태리 같은 상황에 처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2. 장기려 박사님에게 감사하자
- 코로나 진단시약의 빠른 승인과 건강보험 적용
장기려 박사가 닦아 놓은 한국 건강보험 인프라와 진단시약을 초스피디하게 승인한 보건행정 인프라 덕분에 검사 키트가 빨리 보급됐다. 진단비가 보험 적용하면 무료라 검사 속도를 높일 수 있었던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미국을 보자. 초기엔 코로나 진단 가이드라인이 너무 빡빡했고 (열나서 입원해야 코로나 검사 처방 가능) 진단키트가 ‘아직도’ 부족하다. 진단비도 문제다. 이미 지역 확산이 6주 이상 진행된 지난 3월 중순까지도 진단비를 보험에서 얼마나 커버할 지조차도 못 정한 상태였다.
미국 민주당 케이티 포터 하원의원이 지난 15일 질병예방통제센터(CDC) 장에게 진단비 관련해서 호통치는 청문회 영상이 화제가 됐다.
진단비가 1천 달러가 넘는다. 급전 400달러도 융통 못하는 미국인이 40%다. 진단비를 무료로 하라. 벌써 1달 전에 CDC에 질의를 보냈는데 답이 없었다.
3. 중국-이태리식 극단에서 벗어난 한국식 방역 모델, 제발 성공사례로 남았으면
WHO는 팬데믹을 선언하면서 콕 집어 ‘중국과 한국’이 지금까지의 성공 사례라고 언급했다(참고: NewYork Times). 많은 외신도 주목했듯, 한국은 빠른 검사속도 외에도 민주주의적 방역 모델을 갖추어 벤치마킹 대상이 되었다. 확진자 동선 공개가 민주적인지는 논란이 있지만, 뉴욕타임즈 전문기자가 지적한 대로 “일단 살아야 자유도 있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중국은? 우한 봉쇄를 비롯해 말 그대로 ‘드라코니언(가혹한)’ 봉쇄와 극단적인 검사 정책을 시행했다. 병상이 모자란 편이고 공산주의 체제인 중국에서나 시행할 수 있는 종류다. 중국은 극단적인 검사 정책을 펼쳤고, 자가격리 대신 코로나 양성 환자들을 모두 한 곳에 몰아넣어 격리시키는 방법으로 대응했다.
중국의 방법은 이렇다. 전국에 발열 클리닉을 세워서 체온을 측정하고 열이 나면 무조건 백혈구 검사를 시행한 후, 의심환자는 CT 스캔(이동식 CT머신을 보급했다고)한 후 코로나 양성이 나오면 집에 못 가게 하고 지역 격리센터로 보낸다. 격리센터는 남성, 여성, 아이가 따로따로 나뉘어 있어 가족끼리도 못 만났다. 최근 확진자가 급증한 이태리에서 시행한 전 국민 봉쇄 정책도 WHO를 통해 중국 방법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 양념: WHO 기자회견에서 어느 국가가 잘 못했냐는 질문이 나왔다. WHO는 “회원국 딱 집어서 그렇게 말할 순 없다”라면서도 “You know who you are(어디인지는 아마 스스로 알 것이다)”라고 말했다. 미국을 겨냥했을 가능성이 크다.
4. 미국의 정치적 분열은 필연적으로 전 세계 경기침체와 한국에도 후유증을 남길 것이다
3월 14일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민주당표 경기대책을 따로 발표하고 스티브 므누신 재무장관과 협상 중이다. 트럼프(와 어쩔 수 없이 트럼프에 끌려가는 공화당)은 주로 중상위 소득자 겨냥한 급여세 감면을 주장하는 중이고, 민주당은 자가격리나 돌봄 공백을 대비한 유급휴가를 비롯해 일시적 실업자 위한 실업보험 강화, 급여생활자가 아닌 긱 노동자나 저소득층을 위한 각종 현금성 지원을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게 참 난감한 게… 트럼프가 코로나 사태 초기에 우려하는 야당을 정치공세라며 몰아붙인 후 코로나 확산으로 주식시장이 폭락한 데다 탄핵 이후 트럼프와 펠로시 하원의장은 서로 말도 안 섞고 있다. 펠로시 안이 합리적이라고 해도 재선을 생각하여 트럼프가 원안대로 사인을 안 해줄 가능성이 크다. 사실 이런 경우에는 대통령이 굽혀야 한다. 특히 트럼프처럼 즉흥적이어서 말하는 족족 불안을 가중시키는 리더인 경우엔 더 그렇다.
이런 불확실성은 아무리 빨리 회복하는 시나리오에서라도 최소한 2,3분기 미국 경제 침체로 이어질 것이고, 이는 한국에 당연히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치인들조차 분열된다고 생각하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5. 코로나는 기존 경제체제의 사각지대를 조명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기본소득 논의가 활발해질 것이다.
전주에서 재난기본소득을 도입한 데 이어 다양한 재난기본소득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윤형중 연구원님의 문제제기 역할이 크다) 당장 일거리가 없는 파트타이머, 일하러 나갈 수밖에 없는 급여 노동자가 코로나에 감염될 경우 소득 보전, 영세자영업자 비율이 높은 한국 상황에서 자영업자의 소득 보전 등이 이슈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기본소득 논의가 한창이다(출처: CNBC) . 기본소득은 미 대선후보였다가 사퇴한 앤드루 양의 주요 공약이기도 했다. 앤드루 양은 유세 중에 종종 말하곤 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미국인 비율이 70%이고 갑자기 400불을 써야 할 일이 생기면 돈을 융통 못하는 미국인 비율도 40%다. 이들에게 월 1000달러씩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면 지역 경제에 돈이 도는 분수 효과를 내게 된다.
이 수치는 코로나 사태를 통해 모두 섬뜩하게 맞아떨어지게 된다. 평소 양의 기본소득 정책을 비판했던 민주당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 의원조차도 재난기본소득을 주장하고 나섰다. 최근에는 트럼프가 즐겨 보는 극우 보수 TV채널 폭스뉴스의 헤랄도 리베라 기자조차도 이렇게 언급했다.
트럼프의 급여세 감면은 중산층 이상에게는 좋으나 그 이하의 계층에게는 도움이 안 된다. 기본소득을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할 것이다.
6. ‘록 허드슨’ 모멘트
마지막으로 뉴욕타임즈에서 20년 이상 보건전문 기자로 일한 도널드 맥닐 기자의 인상 깊은 발언을 소개한다. 미국에서는 트럼프 때문인지 아직도 코로나를 가짜 뉴스로 폄하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denial’ 단계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록 허드슨’ 모멘트가 필요하다는 요지다.
80년대 AIDS는 ‘게이들이나 걸리는 병’이란 식으로 인식되어 있었다. 그런데 미남 영화배우 (이성애자) 록 허드슨이 AIDS에 걸리고, 그와 친했던 레이건 대통령이 사적으로 에이즈란 말을 처음으로 내뱉은 게 알려진 후에야 비로소 HIV의 심각성을 대중이 인식했다. 실제로 록 허드슨이 죽은 지 몇 달 되지 않아 미 의회가 HIV 관련 법안을 통과시켰다. 대중이 잘 아는 누군가가 희생양이 되어야 심각성을 대중이 인지한다는 것이다.
맥닐 기자가 이 이야기를 한 직후 뉴욕타임즈 마이클 바바로 기자가 톰 행크스가 호주에서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됐다는 뉴스를 전한다. (소름….) 톰 행크스 모멘트 따위는 없었으면 좋겠다. 심지어 톰 행크스는 민주당 지지자란 말이다.
원문: 홍윤희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