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파바로티>(2019), <아이리시맨>(2019)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파바로티>의 질문과 대답
론 하워드 감독의 <파바로티>를 보았습니다. <파바로티>는 전설적인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일생을 담아낸 다큐멘터리입니다. 론 하워드 감독은 파바로티의 역사적인 무대를 완벽히 재현하여 관객에게 잊히지 않을 감동을 전달하는가 하면,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미공개 영상과 사적인 인터뷰, 가족과 친구들이 보관해둔 영상 등을 통해 파바로티의 삶을 입체적으로 조명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마도 <파바로티>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극의 구성일 것입니다. <파바로티>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답변으로 끝납니다.
영화가 막 시작하면, 파바로티의 마지막 연인이었던(파바로티가 세계적인 테너가 된 후, 그는 세 딸과 아내가 기다리는 집에 거의 들어가지 못하고 밖으로 돌면서 두 번이나 바람을 피웁니다) 만토바니가 캠코더로 파바로티를 촬영하고 있습니다. 파바로티에게 질문을 하죠.
100년 후에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
How would you like to be remembered in 100 years?
파바로티는 가장 먼저 무슨 대답을 할까요. 역시 오페라입니다. 사람들에게 오페라를 전달했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새로운 오페라를 추구해 오페라의 한계를 넓힌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항상 비평받았던 입장이었기 때문에 용감했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파바로티가 만족한 듯 웃자 만토바니는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테너 파바로티 말고, 인간 파바로티로서는 어떻게 기억되고 싶어?
What about Pavarotti, the man?
파바로티는 쉽게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립니다. 론 하워드 감독은 그 대답을 당장 보여주지 않습니다. 대신 파바로티의 일생을 보여줍니다. 마치 파바로티가 그 질문에 대해 대답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천천히 되돌아보듯이 영화는 진행됩니다. 이때 영화는 파바로티의 회상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마지막 장면에 도착합니다.
마지막 장면은 만토바니의 질문에 대한 파바로티의 대답입니다. 인간 파바로티로서는 어떻게 기억되고 싶어? 그는 담담히 대답합니다.
좋은 남편, 좋은 아빠, 그리고 내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친구였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 그런데 나를 힘들게 하는 건, 나는 아마 내가 되고 싶었던 아빠는 되지 못한 것 같아. 단지 그것뿐이야.
그러니까 <파바로티>는 세 토막으로 구성되어 있는 셈입니다. 파바로티에게의 질문, 파바로티의 삶, 파바로티의 대답. 론 하워드 감독은 왜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구성했을까요. 파바로티의 생애로 가득 채워진 중간 부분이 이미 충분한 완결성을 가지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앞뒤의 질문과 대답은 제거해도 괜찮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론 하워드 감독은 굳이 질문과 대답 장면을 넣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런 구성적 선택이 평범할 뻔한 <파바로티>를 한 차원 더 훌륭한 영화로 바꿔놓았다고 생각합니다.
<파바로티>가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유
대단히 성공한 삶을 살았던 어느 한 사람이, 성공했기 때문에 실패한 것에 대해 고백하는 순간 관객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크게 흔들립니다.
언젠가 이런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영화의 오프닝에 관한 글이었는데요. 영화의 좋은 오프닝이란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오프닝이라는 말로 맺어지는 글이었습니다. <파바로티>도 마찬가지입니다. 론 하워드 감독은 신의 재능을 타고나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던 파바로티 삶에서도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부분을 짚어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 부분이란, 많은 것을 성취한 그의 삶 속에서도 그가 성취할 수 없었던 어느 한 부분, 눈부신 성공 후 성공의 그림자 뒤에 그도 모르게 버려진 어떤 한 부분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순간이란 바로 이런 순간입니다. 요란한 파티가 끝나고 난 뒤 어질러진, 아무도 없는 방에서 허무함을 느끼는 순간 같은 것이죠. 소요 뒤의 고요, 성공 뒤의 실패, 비행 뒤의 추락 같은 순간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순간들은 왜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걸까요? 단순히 성공과 실패의 간극 때문일까요? 물론 어디에도 정답은 없을 테지만, 왜 어떤 이야기들은 사람들의 마음에 깊게 내려앉는지에 대한 해답을, 저는 최근 논란이 되었던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스콜세지 감독은 마블 영화가 시네마는 아니라고 말해 주목받았습니다. 마블 영화로 대표되는 대형 프랜차이즈 영화들은 단지 테마파크에 불과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시네마는 아니라는 겁니다.
스콜세지 감독이 말하는 시네마란, 스크린 위에서 예상하지 못한 것을 마주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네마는 우리 인간에 관한 것입니다. 복잡하고 모순적이며 때로 역설적이고, 상처 받고 사랑하며 그러다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는 우리 인간에 관한 것이죠.
<파바로티>가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유는 그의 직업적 성공과 관계적 실패가 우리 인간의 행동 양식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드러내기 때문이에요. 이 순간, 영화는 인간(Human)을 드러내면서 인문학(Humanities)의 영역으로 나아갑니다. 마틴 스콜세지가 말하는 예술의 영역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영화는 우리 인간에 관한 것
그래서일까요. 마틴 스콜세지의 최신작인 <아이리시맨>은 론 하워드의 <파바로티>와 거의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어요.
<아이리시맨>은 실제 장기 미제 사건인 지미 호파 실종 사건을 배경으로 1950년대에서 1970년대 사이의 미국사를 마피아의 관점에서 조명하는 영화입니다. 주인공인 프랭크(로버트 드 니로)는 아메리칸 마피아의 핵심 멤버이고, 수많은 폭력과 살인을 저지르면서 지미 호파 실종 사건에 깊게 개입합니다.
프랭크의 딸, 페기는 비정하고 폭력적인 아빠의 모습을 어릴 때부터 쭉 지켜봅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아빠와의 대화를 포기하죠. 프랭크는 늙고, 지미 호파 실종 사건은 점점 사람들에게서 잊힙니다. 성인이 된 페기는 프랭크를 피하지만 프랭크는 시간을 되돌릴 수 없습니다. 그리고 역사의 뒤안길에서, 노인이 된 프랭크는 고백합니다.
나는 좋은 아빠는 아니었어.
이 순간, 무시무시한 아메리칸 마피아였던 프랭크는 한낱 인간 프랭크로 추락합니다. 파바로티도 똑같이 말했죠. 내가 되고 싶었던 아빠는 되지 못한 것 같아. 이 순간 마찬가지로, 전설적인 테너 파바로티는 삶의 많은 부분에서 실수하고 또 그 실수를 반복하는, 인간 파바로티로 전락합니다.
다양한 영화들이 있습니다. 마블 영화를 좋아하든 예술영화를 좋아하든 그건 단순히 취향 차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 어떤 영화는 인간을 말합니다. 인간의 유약함을 포착하고 인간의 모순을 폭로하며 인간의 이중성을 드러냅니다.
론 하워드 감독은 파바로티의 인간성을 드러내기 위해 질문과 대답이라는 구성적 전략을 취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대답의 순간, 파바로티는 전설적인 테너가 아니라 한 명의 인간으로서 우리에게 기억됩니다. 영화 속 인간과 그 영화를 보는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같은 인간인 탓입니다.
론 하워드 감독은 단지 ‘한 가지 이야기’만이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이 말의 의미는 모든 이야기가 다 똑같다는 뜻이 아니라, 달라 보이는 많은 이야기들이 사실은 동일한 하나의 종착지로 향한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그것이 마피아 이야기든 테너 이야기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단지 이것만이 이야기의 이유이고, 영화의 이유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원문: Discus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