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다 논란으로 말 많던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개정안이 발효되면 기사를 포함한 11–15인승 승합차 렌트는 6시간 이상 관광 목적으로만 이용이 가능하다. 타다가 앞으로 계속 영업하고 싶으면 다른 운수 스타트업과 동일하게 택시 면허를 구입해야만 한다는 의미다. 이에 타다는 며칠 전 영업을 포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일이 이렇게 되자 국내 모빌리티의 미래를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한국 사람들은 앞으로도 서비스 질이 낮은 택시를 어쩔 수 없이 이용하게 될 것이고, 경쟁으로 시장을 긴장시킬 후발주자는 나오지 않을 것이며, 자연스럽게 모빌리티 분야도 혁신에서 점점 뒤쳐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한국 택시 시장의 형성 과정
이 논의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 택시 시장의 형성 과정과 각 플레이어의 성격을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 택시가 본격적인 교통수단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1960년대 초 서울에서부터다. 이 시기 서울은 교통혼잡이 매우 심각한 데 비해 버스, 전차 등의 대중교통수단이 부족했다.
서울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62년 2,887대이던 택시를 1971년 1만 2,557대까지 대폭 확충했다. 그래도 모자랐다. 중앙일보 기사에 따르면 당시 출근 시간에 택시를 타려는 인구는 16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택시 숫자는 중간에 오일쇼크 시기를 거치며 잠깐 주춤하긴 했지만 계속 꾸준히 늘어났다.
개인택시제도는 1967년 처음 등장한다. 갑자기 차를 늘리다 보니 교통사고 문제가 대두됐던 탓이다. 당시 서울시는 교통사고를 줄이겠다는 명목으로 10년 이상 무사고 운전자에 한해 개인택시 면허를 발급해주기 시작한다. 국가적인 택시 증차정책에 따라 이 기준은 5년 무사고로 완화되고, 1970년에는 1년 이상 무사고면 택시 면허를 내주게 된다. 1년 무사고 정도만 되어도 운전 실력은 상당히 상위에 속했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정부는 교통사고 유발이 적었던 개인택시를 부지런히 도로로 밀어 넣었고, 급기야 1981년에는 당시 전체 택시의 28.5% 정도이던 개인택시 숫자를 70% 선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정책을 내놓기도 했다. 개인택시 면허를 상속할 수 있게 해준다는 조항이 자동차운수사업법에 포함되게 된 것도 이 시기의 일이다. 이 시기 이후 개인택시 면허는 양도와 상속이 가능한 일종의 무형재화가 되었다. 양질의 교통수단을 빠르게 확충하기 위해 국가가 정책적으로 제공한 당근이었던 셈이다.
한국 정부는 88올림픽 유치 후에는 올림픽을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개인택시를 늘렸으며 결국 서울 개인택시 숫자가 법인택시 숫자보다 많아지게 되었다. 1980년대 중반까지 서울의 교통에서 택시가 차지하는 비중은 18% 정도. 이후 지하철과 버스노선이 깔리기 시작하면서 택시의 비중은 급격히 쪼그라들었지만, 1990년대 이전까지 택시는 상당히 중요한 교통수단이었다.
택시요금 통제정책의 발발
사람들이 탈것이 없으니 급한 대로 택시를 도로에 풀어놓긴 했는데, 문제는 가격이었다. 사람들이 많이 쓰는 교통수단인 택시가 비싸서는 곤란했다. 그래서 정부는 강력한 택시요금 통제정책을 함께 사용했다.
서울연구원 자료를 보면 1988년 서울시 택시 기본요금은 800원이었다. 이는 2012년 기준으로 2,191원 정도의 가치를 가진다. 2012년의 택시 기본요금은 2,400원이다. 24년 동안 물가상승률 등을 제외하고 고작 10% 남짓 오른 셈이다. 심지어 택시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기 시작했던 1990년대에는 환산 기본요금이 1,000원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보면 국내 소비자가 얼마나 낮은 가격에 택시를 이용하는지 알 수 있다. 여행 정보 사이트인 ‘Price of Travel’이 만든 세계 택시요금 비교 자료를 보면 2017년 6월 기준 서울 택시비는 LA의 1/5, 도쿄의 1/4, 빈의 1/3 수준이다. 이 사이트의 조사에서는 전체 88개 도시 중 61위를 차지했다.
이런 낮은 가격이 가능한 이유는 택시 요금이 시장 논리가 아니라 일종의 민주주의 시스템으로 확정되기 때문이다. 서울시의 경우 택시요금은 ‘노사민전정 협의체’라는 곳을 통해 결정된다. 이 협의체에는 택시업계 관계자, 시민단체 측, 교통 전문가, 서울시청 관계자, 시의회 의원 등 40여 명이 참석한다. 가격 결정에 시장원리보다 소비자 입김이 강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국 시민들은 정부가 야기하는 상당한 시장 왜곡의 효과 덕분에 택시를 싸게 이용한다는 얘기다.
정부는 요금을 싸게 유지하는 대신 유류 보조금 지원 등 보조책들을 강하게 만들어 택시 기사들의 밥그릇을 보호한다. 물론 유류 보조금 혜택은 택시뿐 아니라 물류 기반이 되는 화물차량 등에도 함께 제공된다. 종합해보면 한국의 택시 시장은 형성 초기부터 현재까지 시장 논리로 돌아가는 시장이라고 보기가 어렵다. 국가가 필요에 의해 만든 시장이고, 국가의 지배력이 강하게 작용하는, 예외적인 시장이다.
한국 택시 서비스 얘기하면서 시장 경쟁 운운하는 의견들이 쉽게 설득력을 잃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단순히 시장 경쟁이 작동해서 당신이 기본료 3,800원 내고 택시 탈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주변을 둘러보길 바란다. 서울 같은 규모의 메갈로폴리스에서 그 정도 이동에 필요한 요금은 적어도 2배 이상이다.
한국 택시 시장 통제의 부작용
통제가 너무 심한 시장에는 부작용이 생기기 마련이다. 한국 택시 시장도 그렇다. 현재 택시를 둘러싸고 제기되는 문제는 대략 다음의 세 가지다. 택시 숫자가 너무 많아서 기본적으로는 남아도는데, 수요가 폭증하는 출퇴근 시간에는 부족하고, 택시 운전사들이 요즘 소비자들의 서비스 기준을 맞추지 못한다. 이 문제들은 앞서 설명한 시장의 특성과 맞물리며 생산성 하락을 유발하는 순환 고리를 만든다. 이를 해결 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면허, 요금규제 같은 규제의 빗장을 풀고 시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그냥 맡기는 것이다. 여러 가지가 달라질 텐데, 일단 택시 요금이 글로벌 표준 정도로 올라갈 것이다. 유휴 차량을 이용해 택시 사업을 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도로로 나올 테니 지금보다 도로 위 차량과 교통 체증은 증가할 것이다. 노약자 탑승객을 대상으로 한 강도나 성범죄의 증가도 쉽게 예상해볼 수 있다. 정책에 대한 공동체 구성원들의 저항이 매우 크겠지만 아무튼 이런 우여곡절을 거쳐 사회에 새로운 택시 질서가 자리 잡게 될 것이다.
다른 하나, ICT 기술을 적극 활용해서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다. 시 단위의 택시 이용객은 사실 언제 어디에서 탑승하고 내린다는 패턴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대다수가 아침에는 집 근처에서 타고, 도심의 직장에서 내린다. 산업단지 인근에 있는 지하철역 부근에서는 매일 아침 역과 건물 사이를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이 많다. 같은 도심이어도 위치에 따라 사람들의 귀가 시간이 다르다. 이런 모든 것들에 패턴이 있다. 그래서 빅데이터 기술과 스마트폰 앱을 이용한 예약 기능을 적절히 활용하면 적은 수의 차량으로도 효율적인 운송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다.
문제 해결의 칼자루를 잡은 정부가 선호하는 방안은 당연히 후자다. 그쪽이 사회적 혼란이 훨씬 더 적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가 ICT 기술 활용의 주체가 될 수는 없다. 다만 한국 택시 시장의 경우에는 카카오라는 대형 IT 회사를 비롯한 스타트업들이 해당 역량을 어느 정도 갖추고 기존 택시 면허를 구입하는 온건한 방식으로 시장에 접근하는 상황이다. 국토교통부가 깊게 개입한 이번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 역시 내용을 뜯어보면 이런 시장 현실을 반영한다.
김현미 장관은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의원들이 개정안 취지에 대해 묻자 “다른 나라 모빌리티 선진국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여객 운송의 데이터를 축적해서 플랫폼을 통해서 AI를 기반으로 하는 서비스를 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지금처럼 택시가 역 앞에 멈춰서 손님을 기다리거나 배회 영업하는 형태로는 서비스가 개선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우리 택시도 (ICT) 플랫폼을 장착하고 손님 이동 동선에 맞게 택시를 배차하고 거기에 맞춰 안정적으로 서비스가 이뤄지면 실제 수익도 좋아진다”고 강조했다.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이다. 업체별로 차이가 있지만 서울 지역의 250개 택시 회사의 차량 가동률은 평균 60%를 밑도는 수준이다. 보유 차량의 60%만 일을 나간다는 것이다. 업체 입장에서는 나머지 40% 차량들은 아무 수입 없는 순수한 비용으로 남는다. 이런 기존 택시들은 ICT 기술과 수요 예측에 기반해 수익성을 높인 택시 집단이 들어오면 자연스럽게 경쟁 과정에서 도태될 것이다.
정부는 정부 나름대로 해야 할 일을 계속 진행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역할은 도태되는 택시들이 사회에 큰 충격을 주지 않고 시장을 빠져나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현재 전국 택시 대수는 25만대(개인 16만, 법인 8만8천) 정도로 이 중 1/3가량이 서울 택시다. 서울시는 지난 2016년 공급과잉 택시 1만 8,000여 대를 2034년까지 감차하겠다고 결정했다.
감차란 세금으로 택시 면허를 사서 없애는 작업을 말한다. 차량이 줄어들면 운행하는 택시 숫자 당 기대 이익은 높아진다. 택시 시장이 재편되면 기사들에 대한 처우도 지금보다 좋아질 것이다. 모범택시 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돈 많이 주면 서비스 수준은 어느 정도 알아서 올라간다.
타다 영업 포기 이후의 논의
개인적으로 신기한 것은 타다의 영업 포기를 계기로 택시 산업, 나아가 국내 모빌리티업의 미래까지 포괄하는 폭넓은 논의가 이어진다는 점이다. 아마도 타다가 그동안 기존 택시와 확실히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해왔고, 그런 타다를 앞으로는 이용할 수 없게 된다는 점 때문에 실의에 빠진 소비자가 많아서 그런 것 같다. 그런데 그런 거라면 굳이 걱정할 필요가 없다.
타다는 1,500대의 카니발을 운행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카카오가 지난해 말까지 확보한 택시 면허가 890개다. 이 속도라면 타다가 영업을 하지 않아도 카카오가 연내에 그 자리를 아무 차이 없이 대체할 수 있는 상황이다. 타다가 언론 등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십분 피력하는 과정에서 다수의 소비자 팬덤이 확인되었기에 카카오는 이들을 확보하기 위해 사업 속도를 더 높일 걸로 예상한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것은 이번 일로 일부 혁신 애호가들과 소비자들이 택시기사 집단을 쳐부숴야 할 사회악 비슷하게 바라본다는 점이다. 그것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 그들은 정부 정책의 유도를 따라 한국 사회의 발전에 기여한 집단 중 하나다. 이미 온건한 해결책이 존재하는 마당에 굳이 그런 식으로 편을 가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개인택시 면허가 억대의 가격에 거래된다는 뉴스를 보면서 분노하는 사람들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우선 그거 돈만 있으면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다. 부모로부터 면허를 상속받은 경우에도 상속자가 개인택시 소지 자격을 갖추지 못하면 그냥 말소된다. 그리고 그 면허 가격은 시가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수요 공급의 논리에 따라 가격이 0이 될 수 있다. 정부가 나서서 그 가치를 0으로 만드는 것은 좀 다른 문제겠지만.
사실 예전부터 좀 기다려보자는 얘기를 꼭 좀 하고 싶었다. 당장 뭐라도 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사람들이 서로의 삶을 건드릴 때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말하면 좋겠다. 즉답이 떠오르지 않을 때는 침착한 마음을 가지고 그동안 얘기가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 찬찬히 살펴보는 것이 공익에는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원문: 김동환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