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페미니스트 사이
결혼에 관한 책을 쓰면서 삶의 복잡성을 느꼈다.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며 페미니스트로 살고 싶은데, 결혼 또한 하고 싶었던 것이다.
오랜 고민 끝 내가 알게 된 것은 페미니스트로 사는 것과 결혼하는 것 모두 잘못되지 않았으며, 배치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현실의 결혼은 물론 고칠 곳이 많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제도 안에서 안정적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욕망이 잘못일 순 없었다.
오히려 문제라면 제도를 통한 안정적인 결합이 이성애자 연인들에게만 허용되는 현실 같았다. 제도 안의 삶이 모두 억압으로 가득 차 있는 것도 아니다. 삶은 그보다 복잡해서 ‘결혼=가부장제=억압’ 같은 수식으로 다 설명할 수도 없다. 아무튼 결혼을 통과하며 알게 됐다. 세상은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고, 상충되는 진실로 가득하다.
탈코 논쟁은 절대 답이 있는 게 아니다
『100가지 물건으로 다시 쓰는 여성 세계사』는 그런 페미니즘의 복잡성을 보여준다. 피임약과 요리책, 재봉틀과 타자기 등 여성의 삶을 형성해왔거나 변화시킨 100가지 물건을 통해, 방대한 여성의 역사에 접근한다는 기획으로 나온 책이다.
이 책의 4장 제목인 ‘패션과 의상’은 여성에게 언제나 단순하지 않은 주제였다. 39번째 물건으로 꼽힌 히잡을 보자. 히잡은 전형적인 여성 억압의 상징이다. 그러나 특정한 맥락 속에 놓이면 그보다 훨씬 다채로운 의미를 띈다.
서구 사회에서 이슬람교에 대한 혐오가 히잡으로 집중될 때면 무슬림 여성들은 다양성을 지지하기 위해 히잡을 쓴다. “히잡을 강요하는 것만큼이나 히잡을 금지하는 것도 불쾌한 일”이라 말하며 “여성의 머리 싸개에 대한 사회의 집착을 흥미로운 정치적 방법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나는 이 대목에서 화장을 둘러싼 ‘탈코’ 논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는데, 여성에게 화장을 강요하는 사회만큼이나 여성의 꾸밈이 가지는 다양한 맥락을 도려내고 가부장제에 대한 순응으로 단일하게 규정하는 강경한 탈코 지지자들 역시 불편했기 때문이다.
그들 역시 4장의 다채로운 물건과 그 역사를 들여다본다면 조금 더 섬세해질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코르셋마저도 어떤 의미에서는 여성 해방에 기여했다.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여성해방을 위해 싸울 때 코르셋을 착용함으로써 부여되는 품위를 이용하고 옹호했다. 꼿꼿하게 침착한 자세가 전투적인 서프레제트들에게 적절하게 어울렸으며 보수적인 사고를 가진 대중들에게 그들이 품위 있다는 사실을 암시했기 때문이다.
모든 페미니즘 관련 사건과 도구에는 복잡한 맥락이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은 마치 ‘페미니스트여, 단선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다. 37번째 물건인 경구피임약은 수많은 여성들을 임신 걱정과 비과학적인 피임법의 위험으로부터 해방했다. 덕분에 여성들 역시 섹스를 즐길 수 있게 됐다. 그러나 한편으로 피임약은 피임의 책임을 남성이 아닌 여성에게 지우는 측면이 있다.
29번째 물건인 산과겸자는 정상적인 출산이 어려운 산모를 돕기 위해 탄생했다. 그러나 오랜 시간 출산을 책임지며 여성들의 암묵지를 축적해온 존재인 산파를 출산에서 밀어냈다. 겸자 사용은 대다수가 남성이었던 의사들만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절대적으로 여성의 경험인 출산의 관리가 그렇게 남성의 손으로 넘어갔다.
냉장고와 세탁기 등 책에 등장하는 다채로운 가전들은 노동력을 절약해 여성이 여분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도왔지만, 그에 따라 높아진 청결 기준이나 음식에 대한 기대가 다시 여성의 시간을 앗아갔다.
이상적인 주부의 이미지를 주조하며 일반 여성들에게 좌절감을 안겨주는 마사 스튜어트나 줄리아 차일드 같은 셀럽 가사 전문가들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그럼에도 그들의 책과 텔레비전 방송은 대중의 환상으로 남고 있다. 그것은 어쩌면 반복되는 가정생활의 현실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보다: 이전에는 여성을 물리적으로 괴롭혔지만, 지금은 인터넷으로
이런 건 어떨까. 2장 ‘아내와 가정주부’에서 두 번째로 다루는 물건은 쇠틀로 만든 ‘잔소리꾼의 굴레’라는 장치다. 16–18세기 사이 영국과 미국에서 사용이 확인되는데, 말 그대로 남성-사회의 기대치에 벗어난 말을 하는 여성들에게 씌우는 처벌 도구였다. 머리에 뒤집어쓰고 입 부분에 닿는 돌출부를 물도록 한 형태라 말을 못 하는 건 물론 물도 마실 수 없었다.
이 벌을 받는 여성은 잔소리꾼의 굴레를 쓰고 마을을 돌아야 했다. 공개적으로 모욕을 주어 여성을 침묵시키고 남성에게 함부로 대들지 않도록 하는 목적으로 쓰였으며, 궁극적으로 여성으로 하여금 주어진 위치에서 벗어나려는 생각 자체를 못 하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저자들은 단순히 과거의 장치를 소개하는 데서 나아간다. 우선 첫째, 현재 인터넷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나는 여성에 대한 트롤링이 이 장치와 역할이 같다는 것. 현대의 남성들은 다소 야만스러운 고전적 장치 대신 모욕적인 언사, 폭력과 살해 협박 등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여성의 목소리를 잠재운다. 형태가 바뀌었을 뿐, 억압의 역사는 유구하고 지금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둘째, 이는 역설적으로 남성-사회의 권위란 예나 지금이나 얼마나 취약한지, 여성의 작은 목소리에도 쉽게 위협을 느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것. 180 이하는 루저라는 말에 진심으로 깊이 분노해 트롤링에 나섰던 수많은 이들을 보라. 어쩌면 여성에 대한 끈질긴 억압을 보여주는 물건일수록 뜻밖의 전복적인 해석이 가능하다.
페미니즘은 끝없는 과정과 사유이다
단면적인 이해를 허하지 않는 풍성한 해석으로 가득한 물건들의 역사를 따라 읽다 보면 알게 된다. 히잡, 피임약, 겸자, 가전, 요리책, 굴레 모두 그 자체로 고정된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물건만 덩그러니 있다면 그건 억압도, 해방도 아니다. 의미는 주어진 맥락 속에서 발생하고, 우리의 해석으로 실체를 가진다.
그러므로 잘 해석해 어서 해방으로 나아가자는 결론은 아니다. 그런 명쾌함은 삶의 복잡성을 전면으로 드러내는 다층적인 역사서 서평의 마무리로 영 어울리지 않는다. 어떤 사안을 대하든 이 복잡성에 대한 이해를 견지하자고만 해두고 싶다.
세계가 이토록 복잡하다는 건 안타깝게도 해방이 그렇게 쉽게 오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여성 억압을 상징하는 물건들이 동시에 그 억압을 견딜 만한 것으로 비틀고 이용하고 내파해온 여성들의 기지를 보여주듯, 억압의 역사는 언제나 저항과 내파의 역사이기도 하다.
책을 덮고 나면 나 역시 이 긴 역사의 일부라는 사실을 불쑥 깨닫는다. 나의 결혼 생활이 역설적으로 내가 평등한 관계를 실험하는 치열한 장이듯. 페미니즘을 두고 논쟁이 많다. 진정한 페미니즘이 무엇이고, 한국의 페미니스트는 어때야 하고, 이런 이야기에 앞서 한 번쯤 이 책을 읽어보는 건 어떨까.
※ 해당 기사는 웅진지식하우스의 후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