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는 작은 사회
퇴근길에 어린이집에 들러 하원 하면, 놀이터에서 놀다가 집에 들어가는 것이 요즘 일상이다. 얼마 전에 놀이터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빨간색을 좋아하는 내 딸은 그날 빨간 잠바를 입었다. 짧은 다리로 어설프게 걸음마 하며 열심히 노는데, 4살 정도 돼 보이는 남자아이가 딸에게 말했다.
빨간색은 대장 색이야, 남자가 입는 거야.
분홍색이 여자 색이라고 하는 것만 신경 쓰였는데, 빨간색이 대장 색이라는 소리를 들으니, 아차 싶었다. 맞다. 후레쉬맨, 바이오맨, 마스크맨 등의 전대물을 보면 센터에 위치한 빨간색 캐릭터는 남자고 리더(대장)다. 분홍색 여자 캐릭터의 문제점만 생각했지, 빨간색 대장 캐릭터는 간과했다. 아이들의 세계에서는 이미 각인이 되어 있나 보다. 빨간색은 대장이고 남자, 분홍색이나 노란색은 대장 옆에 있는 여자. 이건 아이들의 잘못이 아니다. 그렇게 각인한 어른의 잘못이다.
후레쉬맨에 빠져있던 초등학생 시절, 나는 동네에서 레드 후레쉬였다. 그때도 여자가 무슨 빨간색이냐며 반발한 친구가 있었으나, 그 친구를 가볍게 제압하고 나서 내가 이겼으니 대장 한다며 당당히 말했던 그때의 내가 생각났다. 그래서 우리 아가도 빨간색을 좋아하는 건가? 그런 것이라면, 너도 참 인생이 호락호락하진 않겠다.
성별로 구분된 장난감과 색깔
평소에 아가가 재미있게 가지고 노는 것을 눈여겨봤다가 그것 종류를 사러 가끔 마트에 간다. 직접 보고 아가한테 고르라고 하기 때문이다. 마트에 가면, 우리 아가가 원하는 장난감은 어김없이 “남자 완구” 쪽에 있다. 그냥 종류별로 “공, 자동차, 인형” 등으로 구분하면 될 것을 왜 성별로 구분하는지 모르겠다. “여자 완구” 쪽에 가보면 더 가관이다. 딸들을 모두 공주로 양성하려고 하는지 온통 핑크 공주 일색이라서 눈이 아플 정도다.
온라인 쇼핑몰의 카테고리를 보면, 성별로 구분해 놓은 경우를 본다. 카테고리로 구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상세 검색을 통해 성별로 고를 수 있다. 블록, 인형, 공 등 상품으로 구분하면 되는 것을 왜 성별로 구분하는지 정말 모르겠다. 성별로 구분된 장난감은 확연히 구분된다. 남자아이의 장난감은 무기, 블록, 로봇 등이고, 여자아이의 장난감은 인형, 주방놀이, 꾸밈놀이 등인 것이다.
우리 아가의 옷 중에 옅은 분홍색 옷은 모두 선물 받은 거다. 내가 산 것 중에서는 그 색이 없다. 대부분 한 색의 선물을 받으니, 굳이 나까지 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살 경우에는 다른 색을 산다.
선물해주신 감사한 마음 때문에 다른 디자인이나 색깔로 바꾸지도 않으며, 선물 받은 옷은 사이즈 교환만 해봤다. 아가에게 입혀서 잘 입는다고 감사의 표시를 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끔, 아가에게 선물 받은 옷을 입히면 꼭 한마디 하는 사람이 있다.
핑크색 입히네, 뭐.
입힌다. 내가 분홍색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분홍색을 여자 색이라고 규정하고 여자만 입고 써야 한다는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는 건데, 저렇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다. 뭔가 엄청 답답하다.
핑크색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데, 이런 색으로 입혀.
잘 어울린다. 아가는 너무 귀여운 존재라서 웬만하면 다 어울린다. 다양한 색의 옷을 입히는데 유난히 분홍색을 입힌 날 이런 말을 많이 듣는다.
다양함이 존중되는 사회가 되길
세상에는 다양한 놀잇감이 있고, 다양한 색깔이 있다. 아이들마다 성향도 다르다. 그런 다름을 존중하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파란색 옷을 입은 여자아이가 자동차를 타며 신나게 놀아도, 분홍색 옷을 입은 남자아이가 인형을 꼭 끌어안고 가만히 앉아서 놀아도, 빨간색을 입지 않은 어느 누가 대장을 하더라도, 쓸데없는 말 하지 않고 따뜻하게 바라봐주는 사람이 가득한 사회를 꿈꾼다. 그런 사회에서 아이들이 행복하게 뛰놀았으면 좋겠다.
원문: 고양이상자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