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빠 본가에서 오랜만의 딸로 태어났다. 그래서인지 어린 시절에 아빠를 포함한 친척 남자 어른들은 나를 종종 ‘공주’라고 불렀다. 어릴 때는 별생각 없었지만 갈수록 저 호칭이 찜찜했다. 아마도 ‘공주’라는 호칭 속에, 그저 ‘여자는 예쁘고 참하게 자라서 시집만 잘 가면 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딸 키우는 재미(꾸미는 것, 애교가 있는 것)’가 있다는 말과 이어지는 ‘공주’라는 단어. 난 딸로 인해 그런 재미를 느끼고 싶지도, 딸을 공주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다. 꾸미는 걸 좋아하는 것이 잘못됐다는 것도 아니고, 자신을 공주라고 칭하는 아이들은 귀엽다. 단지 타고난 성향과 상관없이 여성은 공주처럼 ‘예쁘고 참하게’ 자라야 한다고 학습되는 것이 우려될 뿐이다.
내가 너무 예민하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우리 사회에 만연한 ‘꾸밈’이, 둔한 나를 자꾸 예민하게 만든다. 안 꾸며도 아이는 그 자체로 충분히 예쁜걸.
동화책에 가득한 어여쁜 공주들
딸이 선물 받은 동화책 중에는 공주 이야기가 많다. 주신 분의 마음은 감사하게 받았다. 그러나 아가에게 도저히 읽어줄 수는 없었다. 유난히 우리나라에서 만든 동화책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공주들을 표현한 말은 ‘어여쁘다’, ‘아름답다’, ‘예쁘다’, ‘착하다’, ‘잘 웃는다’, ‘밝다’ 등이며, 하나 같이 수동적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하는 일은 없이, 환경에 따라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다가 왕자를 만나 행복하게 살았다는 공주. “왕자와 공주는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동화책의 마지막 문구가 어찌나 똑같은지 소름 돋을 지경이다. 게다가 공주를 괴롭히는 건 나이가 많거나 못생기거나 뚱뚱한 여성이고, 검은색으로 표현되며, 대부분 계모다.
이런 동화책을 보면서 세상의 아들딸들(아들은 공주 동화책을 읽을까?)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자라게 될까. ‘여자의 적은 여자다’ ‘어리고 예쁜 여자를 질투한다’ ‘검은색은 악이다’ ‘아동을 학대하는 것은 계부/계모다’ 등의 편견이 형성되는 것에 동화책도 한몫을 담당하는 것이 아닐까.
백설 공주와 잠자는 숲속의 공주
왕비가 뭐가 아쉬워서 공주의 미모를 질투하는지, 무엇을 위한 미모 대결인지 모르겠다. 아름다움이란 건, 외형적인 모습이나 나이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데 말이다. 아무튼, 왕비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 경쟁자(?)를 끝까지 추적해서 없애려는 것도 어이없지만, 지나가던 왕자의 키스로 일어나 결혼까지 하는 공주의 설정이 정말 너무나 어이없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도 마찬가지. 누군가 자신을 발견해서 구해줄 때까지 잠자는 상황을 벗어날 수 없다는 건 너무나 수동적이고 전혀 아름답지 않다. 뭐, 모르는 사람이 주는 건 받지도 먹지도 말아야 한다는 교훈은 얻을 수 있겠지만.
인어공주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기 위한 다리를 얻으려고,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목소리를 포기하는 인어공주. 그 상황을 아름답게 포장하는 것에 아무 문제가 없는 걸까. 그리고 목소리가 없으면 마음을 전달하지 못하는 걸까. 글이라도, 글이 통하지 않는다면 그림으로라도 마음을 전할 수 있지 않았을까. 어린 시절,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인어공주가 너무 불쌍해서 울었던 기억이 있다. 상대적으로 왕자와 이웃 나라 공주가 나빠 보였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 둘의 잘못은 없다. 인어공주가 해변으로 왕자를 보내준 것은 사실이지만, 왕자가 의식을 차리기 전에 그를 발견한 것은 이웃 나라 공주고, 그 공주 역시 왕자를 구해준 것이기 때문이다. 그 공주를 생명의 은인으로 아는 왕자 앞에, 자기를 구해줬다는 여성이 갑자기 나타나면 왕자는 굉장히 당황스러울 것이다. 게다가 목소리와 다리를 바꿨다는 것까지 알게 되면 고마움보다는 무서움이 더 크게 다가오지 않을까. 상대가 모르는 상태에서의 희생은(원하지 않는 도움은) 상대에게 거부감만 줄 뿐이다.
엄지공주
공주 동화 중에 최악이라고 생각한다. 공주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자기 아들과 결혼시키려는 두꺼비한테 납치되고, 결혼이 성사되지 않자 공주는 버려진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고생하다가 생쥐의 도움으로 생쥐의 집에서 살게 되는데, 두더지가 청혼해서 결혼 직전까지 간다. 공주는 계속 운다. 두꺼비랑 두더지랑 결혼하기 싫다고 결혼 준비를 하면서 계속 운다. 스스로 그 상황을 벗어날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계속 운다. 두더지와의 결혼 직전, 예전에 도와줬던 새가 구출해줘서 요정 왕자와 결혼할 때까지 꾸준하게 운다.
무시할 수 없는 또래 문화, 날로 확장되는 아동 뷰티 산업
나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화장하지 않는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화장하고, 집에 돌아와 화장을 지우는 모든 과정(중간의 수정 과정도)이 귀찮기도 하지만, 화장품이 어딘가에 묻어나는 게 싫다. 화장한 날은 그런 게 신경 쓰여서 활동 자체가 자연스럽지 못하다. 그리고 밀폐된 공간에서 가끔 진한 화장품 냄새를 맡으면 머리가 너무 아팠던 경험이 있어 타인에게 그런 불편함을 주기 싫은 이유도 있다.
또한 가끔 일이 안 풀릴 때면 정신 차리려고 세수를 하곤 하는데, 화장을 하면 그렇게 하지 못해서 싫기도 하다.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 변신하듯이 하는 화장이 좋을 뿐, 로션도 잘 바르지 않는 내게, 일상적인 화장은 정말이지 별로다. 사회 생활 하면서 여자는 화장하는 게 예의라는 말도 너무 많이 들었고.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든다. 또래 문화가 있으니 친구들이 공주공주하게 다니면 우리 딸도 그렇게 꾸미고 싶고 공주 장난감도 갖고 싶지 않을까. 그때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하면 될까. 혹자는 딸에게 그런 시기가 왔다가 금방 지나간다고 하지만, 지나가지 않고 성향으로 굳어지는 사람도 있고, 본인의 성향이나 취향보다 세상의 시선이 그대로 학습될까 봐 그게 걱정될 뿐이다. 파스텔톤 핑크 가득 공주 장난감은 보기만 해도 눈이 피곤하다.
험한 세상이라 태권도 같은 운동(도복이 검은색 계통이면 좋겠다)을 가르치고 싶은데 주변에서는 ‘발레를 가르쳐야지 무슨 태권도냐’라고 한다. 나도 어릴 때 잠깐 발레를 배웠지만 좋은 기억은 별로 없다. 학교 체조 점수에 조금 도움이 된 게 다인 듯하다. 태권도를 배우고 싶었지만 여자가 무슨 태권도냐며 혼나기만 했다. 물론, 딸의 선택이 가장 중요하다. 발레를 하고 싶다고 할 수도 있다. 다만, “여자니까 발레 해야지.”라는 생각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동에게 공주 문화가 익숙한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에 하나는 연령이 점점 낮아지는 아이돌 산업이라고 생각한다. 음악을 좋아하면서도 K팝스타를 시청하지 않았던 이유는, 잠재력 운운하면서 나이가 어린 출연자에게 후한 점수를 주는 심사자 때문이었다. 20대 중반에게는 세상 끝난 것처럼 말하는 그들. 그들이 어린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리 없다. 비슷한 이유로 얼마 전 문제가 된 아이돌 프로듀스 프로그램도 안 봤다.
예쁘게 꾸미고 싶은 아이들이 무슨 잘못일까. 또래가 그렇게 예쁘게 꾸미고 TV에 나오니 당연히 그러고 싶겠지. 꾸며진 아이들을 양산하는 어른들의 잘못일 뿐이다. 그러다 보니 아동이 마사지 받고 화장하는 곳도 생긴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어떻게 키워야 할까
지난해 큰 이슈가 되었던 배스킨라빈스 광고가 있었다. 혹자는 그저 예쁜 광고를 보고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문제라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아니, 생각하지 않더라도 그 광고 관련 글에 달린 댓글만 봐도, 잘못된 것이란 걸 알 수 있다. 캡처하고 싶지도 않다.
우리나라 아동 모델과 해외 아동 모델의 광고 사진을 보면 확연히 다름이 느껴진다. 해외 아동 모델은 편한 옷차림으로 친구들과 어울려 웃고 뛰노는 어린아이의 모습인 반면, 우리나라 아동 모델은 성인의 축소판이다. 게다가 무표정하거나 멍한 표정, 어색하게 화장한 얼굴, 다리를 꼬거나 비트는 몸이라니.
나는 딸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저 자기 소신을 가진 주체적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예쁘게 꾸미는 것을 좋아한다면 본인의 스타일을 찾았으면 좋겠고, 예쁘지 않아도 되니까 유행이나 사회 고정관념에 따라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생일이나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등의 특별한 날에 딸에게 선물 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것은 너무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파스텔톤 핑크 가득한 선물을 받을 때면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기도 하다. 딸이 좋아하는 것을 잘 모르고 여자아이 선물로 추천받아 주시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면서 굳이 저런 선물을 주시는 분은 이해하기 어렵다. 마치 “여자아이니까 이런 걸 좋아해야 해.”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실제로 자동차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딸을 보면서 “여자아이니까 자동차는 안 어울려.”라고 말한 분도 계셨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기엔 일상에서 저런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듣는다.
딸에게 이번 크리스마스에 산타 할아버지가 어떤 선물을 주셨으면 좋겠냐고 물었다. 질문을 듣자마자 뽀로로라고 말하더니, 잠깐 고민한 후, 불난 사람 구해주는 불자동차인 로이를 받고 싶단다. 자동차와 빨간색을 좋아하는 딸다운 선택이다. 알았다고 했더니 “불났어요.” “도와줘요.” “구해줄게요.”를 외치며 한동안 신나게 뛰어다녔다. 그렇게 쭉 자기가 좋아하는 걸 좋아했으면 좋겠다. 나도 그런 딸을 응원하고 지원해주고 싶다.
원문: 고양이상자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