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는 여러모로 흥미롭다. 물론 박근혜 대통령의 눈물을 쥐어짜내는 모습 역시 언제나 그랬듯 매우 어색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던 해경 해체론과 가칭 ‘국가안전처’의 창설이 확실해졌고, 그와 더불어 또다른 한국 사회의 중요한 이슈 중 하나인 ‘관피아’ 현상과 그것의 기반이라고 말할 수 있는 행정고시 제도에 관한 개혁안 역시 등장했다. 행정고시 개혁안이 실질적으로 다른 이슈에 비해 훨씬 중요할 것으로 생각되나, 일단 세월호 사건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분야인 해경과 국가안전처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다룰 필요가 있어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의 해경 해체론과 국가안전처 창설, ‘특수구조대’ 창설론은 내게는 과거의 일을 기억나게 한다. 바로 9.11 테러와 그 이후 부시 정부에서 미국이 택한, <테러와의 전쟁>. 그리고 아마 결과도 규모만 다를 뿐, 테러와의 전쟁을 연상케 하는 상황이 될 듯 하다. 목표도 불명확하고, 불명확한 목표에 힘입어 조직의 지향은 엉뚱한 방향으로 튀고, 전문성은 축적되지도 않고 돈은 이상한 곳에 나갈 테니까. 몇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 무너진 형평성, 고려되지 않는 전문성
천안함 사건을 떠나서, UAV 추락 사건에서 UAV가 청와대 사진을 찍어도 누구 하나 목이 날아간 장군이 없었다. 아무도 UAV가 떨어졌다고 전방 사단을 해체하라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하필 해경인가? 박근혜 대통령의 담화는 철저하게 해경이 ‘실패했으므로’ 해경을 해체한다고 한다. 해경의 구조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그것이 회피불가능하며 다른 조직을 통해 대체되어야 하는지 어쩐지는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어 보인다.
해경을 해체하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해경을 해체하는 것을 통해 박근혜 정부가 노리는 것이 재난대비를 위한 개혁인지, 아니면 개혁처럼 보이고 싶어하는 것인지를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정부조직의 형평성 차원에서 완전히 엉망진창이며, 당연히 ‘유니폼’을 포함한 공무원조직은 필사적으로 대통령에게 밉보이지 않는 것만 생각하게 된다.
심지어 해경은 엄연히 법적으로 존재를 인정받는 부서인데, 대통령은 아무런 공론화 없이, ‘해경의 해체까지도 포함될 수 있는 강도높은 개혁을 구현하겠다’도 아닌 ‘해경을 해체하겠다’를 들이밀었다. 물론 박근혜 대통령은 언제나 비민주적이지만, 그것도 정도라는 것이 있다.
지금의 해경(Maritime Police)를 분할해 치안 업무와 주변국과의 저강도 충돌을 맡는 해안경비대(Cost Guard)와 그 외의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로 나누자는 생각 자체는 그다지 신선한 생각이 아니다. 아주 흔한 해경에 대한 문제제기였고, 그렇게 틀린 말도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분리의 목적은 해경에 대한 응징이 아니라, 해양에서 발생하는 상황에 대한 전문화이다. 해양경찰은 경찰과 해군 사이에서 저강도 분쟁과 해양 치안을 담당하기 위한 전문 부서로서 탄생했고, 해양경찰이 해안경비대와 해양구조대와 같은 방식으로 분리된다면 그것은 해양경찰의 역할을 다시 분리해, 치안 업무와 해난 대응 업무로 나누어 개별 업무의 전문성을 높여 결과적으로 해양에서의 상황에 더 효율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
해경을 해체하고 싶어도 해경의 업무는 대체할 수 없다. 해경에는 어찌 됐든 해양 전문가가 있는 게 사실이고, 세월호 사건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해경 고위직 중 상당수가 어쩔 수 없이 국가안전처에서 다시 자리를 틀 것이다. 국방부장관이 예비역 장성일 수밖에 없는 것처럼. 그러면 무슨 소용인가? 해경 하부조직이 일을 망친 것도 아닌데. 아니면 하루아침에 낙동강 오리알이 된 해경 수험준비생이 천고의 대역죄인이라도 되는 것인지 난 모르겠다. 물론 해경과 언딘의 유착은 골치아픈 문제이며, ‘관피아’의 문제기도 하지만 그걸 이런 식으로 다루는 것이 가능한가?
해양경찰의 탄생, 해경의 분할론은 모두 해양에서 발생하는 여러 상황을 개념적으로 쪼개고, 그것에 맞는 부서들을 전문화시키는 과정을 거쳐 제기된 것이다. 해양에서의 저강도 안보위협은 경찰과 해군의 임무가 분화되어 합쳐진 해경이 맡게 되었고, 그 전문성이 두루뭉술함에 따라 좀 더 명확한 조직으로 분화시키는 과정으로서 해경의 해체를 논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논의의 흐름이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거의 이런 조직의 전문성을 감안하고 있지 않다. 그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국가안전처’다.
– 국가안전처와 특수구조대의 모순
국방부가 국방에 대한 전문성을 갖는 것은 이름이 국방부라서가 아니라, 휘하에 전쟁을 직접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육해공의 전문 집단군과 각종 지원부서들이 계열화되어 배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국가안전처라는 발상에도 똑같은 논리가 적용된다. 국가안전처라는 조직 자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지는 않지만, 국가안전처가 재난에 대해 보여주어야 할 전문성은 결국 하부 부서들의 전문성이 얼마나 우수하냐에 따라 1차적으로 결정된다. 국가안전처의 전문성은 하부 조직의 전문성을 통해 증명되는 소재고. 그러나 대통령은 그저 해경을 쪼갰을 뿐 해경의 문제를 발본색원하려는 의지도 크지 않아 보이며 해양 재난에 대한 전문성을 보유하는 집단의 필요성은 아예 무시한 것처럼 보인다.
이런 하부 조직의 전문성을 괄시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은 ‘특수기동구조대’에서 더욱 커진다. 무슨 레스톨 특수구조대도 아니고, ‘첨단 장비와 고도의 기술로 무장된 특수기동구조대’를 만들어 전국 어느곳, 어떤 재난이든 즉각 투입할 수 있도록 하고 군이나 경찰 특공대처럼 반복훈련을 통해 골든타임의 위기대응능력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일이 가능할 리가 없지 않은가? 고 한주호 준위도 그렇게 쉽게 순직한 마당에 이런 것이 가능할 리가? 재난 상황은 극한 상황이다. 결국 특수기동구조대는 실제로는 그냥 각자 분리되어 있는 특수부대나 구조대만도 못할 것이다.
더군다나 이런 특수기동구조대와 가장 가까운 것이 한국에서는 SSU나 UDT라는 점 역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대통령이 요구하는 수준의 구조대에 가깝게나마 인력을 양성할 수 있는 것은 ‘군’이며, 세월호 구조 작업에서 뭔가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관련 인력이 대부분 SSU를 비롯한 해군 출신이라는 점도 문제다.
국가안전처가 정말로 현장 실무인력을 갖추어 재난 상황에서 주도적으로 나서려면 국가안전처가 ‘군’을 움직일 수 있든지, 아니면 실제로는 군의 지휘계통에 따라 청와대에 정보를 제공하고 청와대에서 군에게 명령을 내리든지, 아니면 군 대신 구조대를 만들기 위한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군과 충돌해야 하는 문제까지 생긴다.
군은 당연히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아덴만 여명 작전을 해군이 얼마나 홍보를 열심히 했는가? 심지어 이런 종류의 기동구조대가 보유해야 하는 장비는 대부분 밀리터리 스펙의 군용장비여야 할 것이고, 예산 조달 측면에서도 3군과 충돌하게 된다. 특수기동구조대가 통영함 같은 구조선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지 못할 이유는 또 무엇이겠는가?
– 재난의 본질과 책임의 거버넌스
국가안전처의 또다른 문제는, 이 조직의 롤모델로 미 국토안보부 산하 연방재난관리청(FEMA)이 언급되고 있다는 점이다. FEMA는 평시에는 재난 예방 정보를 생산하고, 관련 2차 인력을 교육하면서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관리한다. 미국에서 재난시 1차 책임자는 주지사이며, 주지사는 그 때문에 주방위군의 제한적인 통솔권까지도 가지고 있다. 주지사와 주 재난관리청이 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부터 연방재난관리청이 본격적으로 재난 수습을 위해 움직이는 구조다.
그런데 세월호 사건을 돌이켜 보자. 일단 관할은 박준영 전남지사의 지역이긴 한데, 이 사건에서 전남도지사의 위치는 협조자일 뿐 책임자가 아니며 사실은 관객에 가장 가깝다. 재난이 발생하면 볼은 언제나 청와대로 넘어가며, 국가안전처의 존재 의의는 다분히 ‘평시’적인 분야로 압축될 수밖에 없다.
국가안전처는 결국 미 국토안보부와 같이 초법적인 집단이 되든지, 아니면 아예 재난시에는 존재의 의의가 사실상 없는 정보 생산 및 추합 조직으로 자리하게 될 것이다. 청와대는 국가안전처가 존재하든 말든 재난 컨트롤타워로서 대두되어야만 한다.
굳이 말하면, 그런 이점은 있을 것이다. 대통령이 재난 시 상황이 엉켰을 때, 반성문을 제출하지 않고 국가안전처 탓을 하면 되고 국가안전처는 얌전히 샌드백이 되는 것은 가능할 것 같다. 뻔히 그려질 그림이지만, 국가안전처가 아무리 육해공을 좌지우지하는 재난 컨트롤타워가 되고 싶어도 결국 국가안전처의 수장은 셋 중 한 쪽 경력을 집중적으로 가진 사람이 되거나, 아니면 아예 현장과 상관없는 사람이 될 것이다.
이런 국가안전처의 모순적인 상황에 정점을 찍는 것이 청와대의 반응으로, 청와대는 NSC(국가안전보장회의)에 한사코 재난 컨트롤타워 기능을 부여할 생각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사실 말도 안되는 주장이다. 대재난만큼 국가의 안보를 손쉽게 뒤흔드는 상황이 어디 있으며, 북한의 군사도발이 쉽고 효과가 커지는 상황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당장 여당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그렇다.세월호 침몰 직후에 어떤 군함이 북한에 도발에 휘말렸다고 하자. 이 경우 정상적인 상황 수습이 얼마나 어려울 것인가? 언론과 여론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더군다나 세월호는 결국 해군이 중심이 되어 구조 작업을 수행하는 방향으로 나아가 버렸지 않은가?
재난이 가하는 사회 내외부적인 압력은 군사적인 긴장과 별 차이가 없다. 그래서 재난이 발생했을 때 항상 ‘군’이 중요하게 다루어져 왔던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는 이런 상황을 무시하고 억지로 국가안전처라는 상설적인 조직에 마치 재난 발생시 전권을 주기라도 할 것처럼 억지로 NSC를 군사적인 상황에 한정시키려고 하고 있다.
– 산 제물을 넘어서는 교훈을 찾자
내가 보기엔, 대통령의 이번 개혁안에서는 도무지 문제에 대한 심층적인 고민을 찾을 수가 없다.재난이라는 상황과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재난이라는 글자와 싸우려 한다.
어떤 재난이냐에 따라서 천차만별로 요구되는 전문성은 모두 ‘안전’이라는 형태로 두루뭉실하게 떠다니고, 하부조직의 강화되어야 할 전문성과 인적 쇄신을 통한 기강 장악은 어느새 뒷전으로 밀려 있다. 그뿐인가? 세월호의 비극성을 떠나 ‘해양 사고’에 대한 지식의 축적과 케이스 스터디를 통한 피드백은 해양 사고가 아닌 안전이라는 불명확한 키워드의 차원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물론 대통령의 담화는 지지층을 결집하기는 좋을 것이며, 대통령의 눈물은 많은 사람들에게 마치 이 개혁안이 대단한 타당성을 갖고 있는 것처럼 비춰지도록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절대 아니다.
무엇보다도 이 사건에서 조직개편이 필요하다면 그건 청와대다. 그것도 이미 김한길 대표가 지적하듯 좋은 선례가 있었다. 참여정부의 NSC가 갖고 있었던 재난과 군사적인 문제를 총체적으로 다루는 기능이다. 거기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재난은 기본적으로 추상명사고, 전쟁과 가장 유사한 상황이다. 따지고 보면 자연과의 전쟁 아닌가.
그러나 한사코 청와대는 NSC에 재난 컨트롤타워 기능을 빼려고 하고 있고, 이건 결국 정치적인 술수일 뿐이다. 책임소재를 전가하는 것. 마치 테러와의 전쟁처럼, 재난은 언제나 정치적 필요에 의해 그 형상이 정의되고 다루어질 것이다. 그 와중에서 행정수반의 책임은 별 무리없이 약화될 수 있다. 나는 이런 꼴은 도저히 용인할 수 없다.
다시 말하지만, 해경이 존재하느냐 아니냐, 국가안전처가 존재하느냐 아니냐는 사실 그 자체로서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문제는 이런 조직이 어떤 논리로 만들어지고, 어떤 계통으로 어떠한 형태의 전문성을 발휘해 다음의 재난에 대해서 어떻게 다른 결과를 낼 수 있느냐에 관한 고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이 문제를 생각하면 결국 대통령의 개혁안은 개혁안이라고 불러주기도 민망한 소재일 뿐이다. ‘관피아 때려잡기’가 그렇듯, 해경이라는 조직은 그냥 성난 민중을 달래기 위한 산 제물 비슷하게 구원파와 같은 제사상에 올라가 있을 뿐이며, 이걸 민주적이고 지혜로운 해결책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원문: 잉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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