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에서는 어떤 스트라이크도 아웃을 용서받지 않는다
야구의 규칙은 명확하다. 수비팀에서 공을 던질 투수가 나오고, 공격팀에서 공을 칠 타자가 나온다. 투수가 던진 공을 타자가 치지 못하고 스트라이크 존으로 들어가면 스트라이크다. 3번의 스트라이크는 아웃이다. 타자는 방망이를 고이 들고 반지하 더그아웃으로 다시 돌아가고 팀은 공격권을 잃는다. 어떤 스트라이크도 아웃을 용서받지 않는다.
스포츠가 재밌는 건 속단하기 힘든 우리의 삶과는 다르게, 일정한 시간 안에 명백한 룰에 따라 승패가 결정 나기 때문이다. 삶에서는 야구와 달리 판단할 잣대가 애매하고 지금의 결과가 무엇으로 이어질지 끝을 알기도 어렵다.
가정을 해보자. 당신은 주변 사람의 잘못을 좋은 마음으로 용서해줬지만, 곧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는 모습을 보며 실망했다. 이제 당신에게 결정의 순간이 돌아왔다. 같은 잘못을 한 그 사람은 깊이 뉘우치는 듯하다. 용서할 것인가? 용서한다면, 세 번째 스트라이크가 날아오지는 않을까?
두 번의 범죄 이후 가석방이 만들어낸 아웃
칸은 런던증권거래소 폭파 음모에 가담한 혐의로 2012년 교도소에 수감된다. 그의 2번째 수감이다. 16년형을 선고받은 칸은 화이트 무어 교도소에서 이송된다. 6년이 지난 2018년 칸은 전자발찌를 차는 조건으로 가석방된다.
16년 형의 절반도 채우지 않은 시점에 가석방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칸은 성실히 수감생활에 임했다. 특히 대학생과 함께 공부하며 성공적인 사회 적응을 돕는 프로젝트 ‘러닝 투게더’에 적극 참여했다. 프로젝트의 모범사례로 꼽히기도 했다. 가석방 심사 당시 칸은 재판장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저는 많이 성숙해졌습니다. 좋은 무슬림이자 영국의 좋은 시민으로 살고 싶습니다.
가석방 후에도 사회 적응을 위해 러닝 투게더의 도움을 받았던 칸은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 그는 편지만으로는 감사의 마음을 충분히 전달할 수 없다며, 시도 함께 써서 보냈다. 아래의 이미지는 러닝 투게더 발행물로, 칸의 뒷모습과 그가 보낸 편지와 시가 있다.
가석방 후 칸은 러닝 투게더 참여를 위해 런던 시내 여행을 허락받았고 비극이 시작됐다. 러닝 투게더 행사를 마친 후 칸은 흉기를 들고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테러는 런던 브리지까지 이어졌다. 브리지 북단에서 10여 명의 용감한 시민들에 의해 칸은 제압당했다. 길바닥에 쓰러진 칸은 출동한 경찰관들에게 총살당했다.
당시 칸을 제압했던 시민은 칸과 대화를 시도했는데, 칸은 “다 죽여버릴 거야, 널 죽여버릴 거야”라며 사람들을 죽이겠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칸은 범행 당시 가짜 폭탄 장치를 둘렀다. 사건 이후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 국가(IS)는 이번 테러가 자신들의 전사 중 한 명에 의해 수행됐다며 테러의 배후를 자처했다.
칸과 테러에 대해 곱씹어 볼수록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감사의 편지와 시를 썼던 칸은 왜 갑자기 칼을 휘둘렀을까? 칼을 휘두른 대상과 장소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지난 행동은 모두 가석방을 위한 연기였을까?
가석방 중인 범죄자가 아들을 앗아갔지만, 가석방을 지지하는 아버지
칸의 테러로 2명이 목숨을 잃었고, 3명이 부상을 당했다. 목숨을 잃은 2명은 모두 수감자를 돕기 위해 러닝 투게더에 참석한 사람들이었다. 수감자들을 돕던 사람들이 수감자에 의해 목숨을 잃은 것이다. 사망자 중 1명의 이름은 잭 메리트로 러닝 투게더의 진행 책임자였다.
잭은 16년 맨체스터대에서 법률학 학사 학위를 받고 케임브리지 대학원에 범죄학과에 입학해 러닝 투게더에 참여했다. 팟캐스트 방송에 출연해 수감자들이 수감 중에 법학을 공부하는 일의 장점을 설명할 정도로 열정적으로 수감자들의 권리를 위해 활동했다.
수감자들을 열정적으로 돕던 아들이 수감자에 의해 목숨을 잃었을 때 가족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예기치 못하게 감당하기 힘든 사건을 접하면, 이성적으로 판단하기 힘들다. 감정적 부담을 덜기 위해 탓할 대상을 찾게 된다. 물론 은혜를 테러로 갚은 칸은 물론일 것이고, 일찍 사회로 복귀하게 만든 사회, 위험한 수감자들과 어울리던 아들을 말리지 못한 자신까지 탓할지도 모른다.
잭의 아버지는 달랐다. 그는 칸의 뜻을 지지했고 칸의 죽음이 수감자들의 권리에 불리한 영향을 미치지 않기를 원했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아버지가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아래는 잭의 아버지가 남긴 트윗이다.
아들의 죽음이 누군가 부당하게 교도소에 더 오래 갇히는 구실이 되지 않길 바란다. 늘 약자의 편에 서는 아름다운 영혼을 지닌 잭은 함께 일하는 모든 이를 좋게 평가하고, 자기의 일을 사랑했다. 잭은 독립적으로 벌어진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부가 모든 재소자에게 필요 이상으로 가혹한 정책을 펼치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반대할 것이다. 잭은 그가 박차고 나간 문을 우리가 걸어가기를 원했을 것이며 보복 대신에 갱생에 초점을 맞추기를 바랐을 것이다.
비극 속 놓치기 쉬운 이야기
판도라는 열어서 안 될 상자를 열었다. 상자에서 온갖 재앙과 죄악이 세상으로 퍼졌다. 놀란 판도라가 급하게 닫은 상자에는 희망만 남았다.
우리도 비극적인 사건에 놀라서 너무 빨리 상자를 닫아버린 건 아닐까? 도심 한복판에서 일어난 테러를 빠르게 제압한 건 뿔과 소화기 맨몸으로 칸과 맞선 용감한 시민들의 역할이 컸다. 그리고 그 용감한 시민들은 칸과 같이 러닝 투게더에 참여했던 수감자들이었다.
첫 번째 용감한 시민, 수감자 ‘스티브 갤런트’
스티브 갤런트는 15년 전 살해 혐의로 현재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스티브는 칸을 제지하기 위해 용감하게 몸을 던졌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부상당한 사람들을 보고 칸을 제지하는데 망설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한 자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다시 사과했다.
누구도 다른 이의 목숨을 빼앗을 권리가 없어요. 피해자 가족에게 진정한 용서를 구합니다.
2022년에 가석방 자격이 주어지는 그는 “다시는 폭력에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스티브와 잭은 2016년 러닝 투게더에서 처음 만났다. 스티브는 잭을 롤 모델이자 친구로 생각할 정도로 특별한 관계였다. 스티브는 잭과 함께 읽고 쓰는 법을 배우고, 경영학 학위를 공부했다. 스티브는 잭의 죽음에 “감내하기 어려운 타격이며 상실감이 무한하다”고 말했다.
두 번째 용감한 시민, 전과자 ‘존 크릴리’
존 크릴리 과거 강도행각 중 사람을 살해해 수감 생활을 한 전과자다. 존은 소화기를 들고 테러범과 맞섰다. 그는 경찰이 현장에 도착하기 전까지 몸을 던져 범인을 제압해 더 큰 참사를 막아냈다. 그는 칸이 폭탄을 찼다는 것을 알고도 피하지 않았다.
존은 러닝 투게더에서 잭과 인연을 맺었다. 존은 잭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잭은 대화를 나눌 때 사람을 참 편안하게 하고, 중요한 사람인 것처럼 느끼게 해줬어요. 그와 대화를 하면, 그가 정말 진심을 다해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자신의 행동이 영웅스러웠다고 생각하는지 묻는 말에 존은 이렇게 답했다.
아뇨. 잭은 목숨까지 잃었어요, 저에겐 그가 영웅이에요.
세 번째 용감한 시민, 전과자 ‘제임스 포드’
테러의 현장에는 2003년 살해한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스탠퍼드 힐 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제임스 포드도 있었다. 포드의 존재는 과거 그가 수감됐던 그렌던 교도소에서 근무했던 데이비드 윌슨 버밍엄 시티 교수에 의해 알려졌다. 포드 역시 러닝 투게더 참석을 위해 하루 동안 풀려나 현장에 있었다.
포드는 칸의 칼부림 공격을 보고 그에게 달려들었고, 목격자들에 의하면 포드가 최소 몇 명의 목숨을 구했다고 전했다. 포드는 교도소에서 정신 치료를 집중적으로 받았는데, 수감자 교육이 얼마나 사람을 바꿀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받는다.
R.I.P. Jack Merritt
수감자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고 싶었던 청년은 수감자에게 목숨을 잃었다. 아마도 그 청년은 마지막까지도 자신이 돕던 수감자의 잘못을 막기 위해 온몸을 던졌을 것이다. 비록 테러를 막지는 못했지만, 그의 진심 어린 마음은 수감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준 것 같다. 그와 함께했던 수감자가 누군가에는 시민영웅이 되었다.
원문: 마인드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