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현의 디지털 미디어’에 포함되지 못한 내용을 올립니다.
‘받은 약’과 ‘받은 정보’
친한 친구가 허접스러워 보이는 약병을 들고 찾아왔다고 생각해보자. 뚜껑은 이미 개봉되어 있고 병에는 삐뚤빼뚤한 손글씨로 “서울대병원 의사가 특별히 만든 약”이라고 써 있다. 그걸 들고 온 친구는 “믿을 만한 친구가 서울대병원 의사에게서 직접 받았다는데, 나랑 같이 마시자”고 권한다.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대답할 거다.
미쳤냐?
그런데 요즘 코로나19와 관련해서 카톡과 소셜미디어에서 위와 같은 행동을 하는 친구들이 부쩍 늘었다. ‘받은 약’이 아니라, ‘받은 정보’라는 점만 다르다. 아마 대다수 사람이 아래 네 가지 메시지 중 최소 한 개 이상은 받아봤을 거다.
a. “오늘 서울대병원 아침 회의에서 나온 내용”
여기에서 말하는 “오늘”은 언제인가? 내가 받은 날과 이 메시지가 작성된 날이 같은 날이라는 보장은 어디에 있는가? 서울대병원 아침회의의 정체는 뭔가? 서울대병원이 동네 의원도 아니고 수 천 명이나 되는 의사, 간호사들 중 누가 어디에 모여서 하는 건가? 대학로 서울대병원? 분당서울대병원? 거기에서 나온 회의록은 누가, 왜 카톡으로 돌리나?
b. “우한연구소로 파견되는 미국 친구의 글입니다”
우한연구소의 정체는 뭔가? 우한은 전염병 발생지로 알려져있는데 거기에 있는 무슨 연구소를 얘기하는 건가? 우한은 자동차 공업이 발전했고, 전자제품도 만든다는데, 우한 연구소는 질병 연구소인가, 엔진 연구소인가, 아니면 디스플레이 개발연구소인가? 거기에 미국인은 왜 “파견”되고, 그 사람은 누구의 “친구”인가?
c.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의사의 조언: 우선 크기가 매우 크며 셀의 직경은 400-500nm…”
어느 의사가 어디에서 한 얘기인가? 바이러스가 무슨 cell? 바이러스와 박테리아를 착각한다면 의사 맞나?
d. “정부에서 용역을 줘서 만든 어플이라네요. 코로나맵”
정부가 앱 만들었다고 발표했나?
정보를 전달할 때의 두 가지 룰
위의 메시지를 전달해준 사람들은 노인복지센터에 다니며 소일하는 70–80대가 아니다. 현재 활발하게 직장생활을 할 뿐 아니라, 자기가 일하는 분야에서 나름 똑똑하다는 말을 듣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가짜 정보의 슈퍼 전파자(super-spreader)들이다.
평소에 지식이 풍부하고 똑부러지게 일을 잘하는 사람들이고, 또 그런 사람들이 대개 인맥도 넓고 많은 사람들과 연락을 유지하기 때문에 슈퍼 전파자가 되는 거다. (우리는 왜 쉽게 믿을까? 여기에 관해서는 칼럼 본문에…) 정말이지 요즘처럼 멀쩡한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이 가짜정보를 퍼뜨리는 걸 본 적이 없다. 소셜미디어 보편화 이후로 최대의 전염병이니 우리나라만의 현상도 아니다. 그래서 WHO에서 “인포데믹”이라고 부른다.
현재 돌아다니는 정보 중에는 진짜 정보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가짜 정보도 섞여 있다면 다 믿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이건 살모넬라균이 들어간 달걀이 유통되었을 때 같은 기간, 같은 공장에서 나온 모든 달걀을 폐기하는 것과 같은 원칙이다. 일일이 가릴 수 없을 때는 전량 폐기해야 한다. 그래도 꼭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면 아래와 같은 룰을 따르자.
룰 1. 텍스트 복붙 (x), 링크 복붙 (o)
만약 당신이 좋은 정보를 발견했다면 텍스트를 긁어서 공유하지 말라. 긁어온 텍스트는 출처를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제멋대로 가감할 수 있고,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믿을 수 있는 기관이나 매체 등, 출처의 링크를 공유하라. 신뢰는 전달한 사람이 아니라 출처가 주어야 한다.
룰 2. 디자인 통일
정부기관이 공유되기 쉬운 메시지를 만들려면 조작하지 못하도록 이미지로 만들고, 정교한 로고와 동일한 색, 디자인을 적용하고, 메시지별로 일련번호를 부여해서 위조를 방지하라.
참고로 코로나바이러스 뿐 아니라 가짜 정보와 싸워야 하는 WHO는 자신들의 이름(WHO)을 사칭한 가짜 정보가 돌아다니는 것을 막기위해 코로나19와 관련한 정보를 내보낼 때는 동일한 하늘색 배경과 디자인을 사용한다. 이러면 WHO를 사칭한 위조 정보는 쉽게 구분된다. 정은경 본부장이 신뢰를 주는 이유 중 하나가 같은 장소에서, 같은 복장, 같은 말투로 발표하기 때문이다.
룰 3. 정보창구 일원화
“의료계 전문가”들은 소셜이나 메시지 등으로 자신의 견해와 조언 펼치는 것을 삼가고, 코로나 19와 관련한 정보는 무조건 ‘질병관리본부’ 한 곳으로 통일하라. 전달할 정보가 있으면 질본에서 발행한 이미지 파일이나 링크만으로 전달하라.
그리고 질병관리본부는 “우리가 방송이나 웹사이트에서 발표하는 내용 외에는 어떤 정보도 믿지 말라”고 강조하라. 지금은 일일이 팩트를 체크해주지만, 앞으로는 질본 이외의 정보는 모두 가짜 정보라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의약품이 허가된 제품 외에는 모두 불법인 것처럼, 인포데믹을 일으키는 전염병 관련 정보도 같은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그리고 정보 수용자의 룰
이번 인포데믹은 고전을 하지만, 다음 전염병이 올 때는 정보를 받으면 아래의 두 가지 질문을 하는 것이 우리의 습관이 되도록 해야 한다.
출처 링크 어딨어?
질본 로고 어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