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아이돌의 태업은 용서받을 수 없다. 그 무대 하나가 간절했던 수십만 연습생을 생각하면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홍혜화의 오늘 무대는 이해할 수 없었다. 혜화는 절대 태업을 할 만한 아이가 아닌데, 오늘은 왜 그랬을까? 만약 컨디션의 문제라면 알아차리지 못한 내 잘못이겠지만, 무대를 소화하지 못할 정도의 일은 내 기억에 없다. 난 사무실 내 방으로 혜화를 불러 질책했다.
김동식의 단편 「마주치면 안 되는 아이돌」은 이렇게 시작된다. 이 작품은 몬스터를 주제로 한 다섯 편의 소설이 실려 있는 앤솔러지인 『몬스터: 한밤의 목소리』(한겨레출판)에 실려 있다.
김동식 소설들의 첫 문장은 대체로 바로 사건이 전개되곤 하는데 이 작품의 시작은 철학적인 명제의 예시 같아 보인다. 그의 소설은 갈수록 농익어 간다. 그는 작품을 한 주에 서너 편은 반드시 쓴다. 나는 작가가 괴물 같아 보인다. 1,000편까지는 가보자고 했는데 아마도 곧 700편을 돌파할 것 같다.
김동식 작가는 “당신이 생각하는 몬스터는 어떤 모습인가요?”란 편집자의 질문에 “제가 생각하는 괴물 중 하나는 ‘망각’이란 괴물입니다. 잊어선 안 될 것을 잊는 것 말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는 이 답변에서 영화 〈내부자들〉에 나오는 “어차피 대중들은 개돼집니다.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란 대사를 인용한다.
정보가 폭증하는 시대에 ‘망각’하는 힘은 필요하다. 일본의 원로 영문학자인 도야마 시게히코는 “인간은 기억하는 능력만으로는 컴퓨터를 절대로 이길 수 없지만 망각이라는 능력을 통해 컴퓨터가 하지 못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망각은 새로운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까지의 망각관은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망각이 개성화를 진행시키고 창조적인 활동의 기반임에도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은 지적 태만이다.”이라고 말했다. 나는 한때 「정보의 저장에서 정보의 망각으로」란 제목으로 강연을 하고 다녔다.
모든 것을 다 기억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작가의 말하는 망각은 그게 아니다. 인간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기억해야만 한다. 나는 출판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 출판인을 만났다. 그는 햇병아리인 나에게 네 시간 동안 출판문화에 대해 역설했다. 나는 감동받았다. 그분은 24시간 책밖에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나도 그분처럼 닮고 싶었다.
그로부터 37년이 지났다. 지금 그분은 부동산(돈)과 자식밖에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물론 지금도 ‘출판문화’라는 것은 입에 달고서 죽어라고 떠들어대지만 나는 그분의 말들이 너무 공허해 보인다. 문화는 사람이 연대해서 만드는 것이다. 자식 이외에는 누구든 사람 취급을 하지 않는 그분의 말을 지금은 거의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어제 어떤 이가 물었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는 지금 모두가 죽겠다고 아우성이다. 이런 때에 어떻게 해야 출판이 살아남을 수 있는가 하고. 온라인서점 매출은 떨어지지 않았다지만 그것은 펭수나 양준일의 책들이 팔려나가서 그런 거란다. 골수 독자들이 책을 읽을 여유를 갖지 못한다. 학교나 도서관도 문을 닫은 것이나 마찬가지니 책을 주문하지 않는다. 이러니 어려울 수밖에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독자들이 스마트폰으로 영상만 본다는 점이다. 유튜브가 베스트셀러를 만든다고 호들갑을 떨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그게 시들해졌다. 지금 출판은 6.25 같은 전쟁터에서 이뤄진다.
인공지능이 등장하면서 인간의 삶이 완전히 달라진다. 삶이 달라지니 모든 것이 달라진다. 노동, 관계, 텍스트, 마케팅, 편집 등 모든 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런 현실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김동식 소설에서 아이돌들은 이미지 관리에 열심이다. 지금은 이미지가 한 번 추락하면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다. 인간은 잘 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출판 비즈니스 모델은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그걸 고민해봤다. 그 글은 『기획회의』 507호에 실린다.
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초심이다. 초심을 지키려니 돈은 벌지 못했다. 매달 25일은 급여와 제작비, 인세 등을 내보내는 날이다. 매년 2월은 힘들었다. 올해라고 예외일 리 없다. 새벽 2시면 일어나는데 두 시까지 일을 하니 잠이 오지 않았다. 신체가 그걸 기억하는 것일까? 그래도 잘 넘겼다. 이제 봄이 오면 좀 풀리려나! 그럴 것이다. 코로나19가 잘 진정된다면 말이다. ㅠㅠ
원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