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유행이 계속 진행되는 모양새입니다. 저번에 글을 쓸 때는 이웃 나라 이야기로만 여겼는데, 대구-경북 지역에서 지역사회 감염이 시작되자 더는 남의 나라 이야기라 하기 곤란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글을 쓰는 저도 대구 지역에 거주 중이라 가족과 친지들의 건강이 염려되는 상황인데, 안타깝게도 아직은 코로나19의 정립된 치료제가 없습니다.
다만 몇 가지 항바이러스 약물이 중국 등지에서 치료에 사용되는 중입니다. 현재까지의 정보를 종합하면 코로나19에 효과가 있다고 판단하는, 혹은 효과가 있을 것으로 짐작해 사용 중인 약물은 크게 네 가지입니다. 각각의 약물에 관한 설명과 간단한 작용 원리를 덧붙여 두었습니다. 시간이 더 지나면 중국에서의 임상시험 연구 결과를 통해 어떤 약이 정답인지가 나오겠지만, 아래 네 가지 약 중 하나일 것임은 분명합니다.
1. 렘데시비르 Remdesivir
렘데시비르는 미국의 바이러스 치료제 전문 제약회사인 길리어드(Gilead Science)에서 ‘개발 중’인 약물로, 원래는 다른 바이러스 질환인 에볼라(Ebola)를 치료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각국 식약처에서 허가 절차를 거쳐 승인을 받은 약은 아니지만, 몇 차례의 임상시험을 거치며 바이러스 질환을 치료하는 효과를 증명한 바 있습니다.
현재는 중국 정부의 요청에 따라 길리어드사가 대량의 제품을 공급하여 코로나19 치료에 시험적으로 사용되는 중입니다. 중국 연구진들의 발표에 따르면, 세포 수준에서 렘데시비르의 효과가 확인됐다고 합니다.
렘데시비르의 작용 원리
렘데시비르는 핵산 유사체(nucleotide analogue)로 바이러스가 RNA를 합성하는 과정을 방해하는 방식으로 작용합니다. 해외 토픽에 관심 많은 분이시라면, 중국 아파트에 철근 대신 대나무를 쓰는 바람에 아파트가 무너졌다는 기사를 보신 기억이 있을 겁니다. 렘데시비르는 바이러스 입장에서 일종의 ‘대나무’ 같은 존재입니다.
바이러스가 증식하기 위해서는 핵산(nucleotide)이 꼭 필요합니다. 건물의 철근 같은 존재인데, 바이러스한테 핵산 대신에 짝퉁 핵산(이를 전문적으로 표현하면 ‘핵산 유사체’가 됩니다)을 공급해서 부실 공사를 유도하자는 것이죠. 결과적으로 바이러스가 죽게 되는 겁니다.
2. 클로로퀸 Chloroquine
클로로퀸은 원래 말라리아를 치료하는 데 사용하는 약물입니다. 아주 오래된 약물이라 특허도 만료되어 매우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데, 2000년대 초반 사스(SARS) 유행 시기에 우연히 사스 치료 효과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2020년, 과거 클로로퀸을 사스 환자에게 사용했던 경험과 메르스 환자에게 사용했던 경험을 토대로 이번 코로나19에도 사용 중입니다. 기존의 사스와 메르스 연구, 그리고 이번 코로나19 연구에 따르면, 클로로퀸의 효과 역시 확인됐다고 합니다. 특허가 만료된 만큼 워낙 다양한 약이 많아 제품명은 표기하지 않았습니다.
클로로퀸의 작용 원리
바이러스가 우리 몸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특정한 매개체에 찰싹 붙어 들어와야 합니다. 사스 바이러스가 이용한 매개체는 우리 몸에 있는 효소 중 하나인 안지오텐신 전환효소(ACE)였는데, 바이러스가 여기에 들러붙기 위해서는 글리코실화(glycosylation)가 필수적입니다. 쉽게 설명하면 바이러스가 가진 ‘문어 빨판’ 같은 것으로 효소에 들러붙어서 몸속으로 들어온다는 것이죠.
이 문어 빨판을 만드는 글리코실화 과정을 방해하는 것이 클로로퀸입니다. 이번에 대유행을 일으키는 코로나19는 사스-코로나19의 사촌 동생뻘인 바이러스입니다. 코로나19 역시 ACE를 매개체로 이용하고, 클로로퀸의 글리코실화 방해가 바이러스 감염을 억제하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3. 칼레트라® Kaletra®
칼레트라®는 미국의 글로벌 제약회사 애브비(AbbVie)에서 개발한 에이즈 치료제입니다. 앞서 설명한 두 의약품과 다르게 칼레트라®는 2가지 성분이 같이 들어있는 복합제입니다. 항바이러스제인 로피나비르(Lopinavir)와 리토나비르(Ritonavir)가 같이 들어있어 약 한 알을 복용하면 두 가지 약을 동시에 복용할 수 있게 되어있는 구조입니다. 국내에서는 주로 이 약을 이용해서 환자들을 치료합니다.
칼레트라®의 작용 원리
로피나비르와 리토나비르는 에이즈 원인 바이러스인 인간 면역결핍 바이러스(HIV)가 가진 효소를 억제하는 방식으로 작용합니다. HIV는 단백질 분해효소(protease)라는 효소를 가졌습니다. 이 효소는 세포 내부에서 증식한 바이러스가 세포 외부로 방출되는 과정에 관여합니다. HIV는 단백질로 이루어진 옷을 입어야 세포 밖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모든 바이러스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일부 바이러스들이 그런 특징을 보입니다).
옷을 만드는 과정을 생각해볼까요? 옷을 만들려면 큰 섬유 원단을 가위로 잘라서 몸에 맞는 크기로 잘라야 합니다. 여기서 가위 역할을 하는 것이 ‘단백질 분해효소’입니다. 그래서 이 효소가 억제되면 바이러스가 세포 외부로 방출되지 못합니다. 다행히 코로나19도 단백질 분해효소를 가져, 이 약이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4. 아비간 Avigan®
아비간®은 일본 제약회사 도야마 케미칼(Toyama chemical)에서 개발한 항바이러스제입니다. 성분은 파비피라비르(Favipiravir)로, 일본에서 인플루엔자 치료제로 승인받았습니다. 승인은 인플루엔자 치료제로 받았지만, 앞서 설명한 렘데시비르와 유사하게 꽤 넓은 범위의 바이러스 질환 치료제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역시나 중국에서 아비간을 이용한 치료를 시도하는 중이고, 한국 정부에서도 아비간을 수입하는 방안을 고려 중입니다.
아비간®의 작용 원리
아비간에서 약효를 나타내는 성분은 파비피라비르로, 아직까지 정확한 바이러스 작용 기전이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이미 승인을 받은 약인데 작용 원리가 밝혀지지 않았다니 이상하게 여기실 수도 있지만, 실제로 그런 경우는 꽤 있습니다.
세포 수준에서 실험을 거쳐 바이러스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 동물 실험을 진행하고, 그때도 문제가 없으면 임상시험을 통해 사람에게도 효과가 있는지와 독성을 나타내지는 않는지 파악하는 데 이 단계를 모두 통과하긴 했거든요. 현재까지는 바이러스에게만 있는 특수한 효소를 억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추정됩니다.
원문: 박한슬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