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익점 선생님이 왜 모카씨를 숨겨왔는지 알 거 같다. 문익점 선생님 땡큐~♡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천송이는 모카라떼를 마시며 문익점 선생님께 무한 리스펙을 보낸다. 비록 문익점 선생님이 가져온 것은 모카 씨가 아니라 목화 씨라는 게 함정이지만. 이 대사 한 마디는 마시즘의 심금을 울렸다. 만약에 문익점 선생님이 모카 커피 씨앗을 가져왔다면 우리의 지금 모습은 어떻게 되었을까?
단지 우리나라가 아니었을 뿐. 실제로 모카 씨를 훔친 문익점들이 있었다. 그들의 나쁜 손(…) 덕분에 우리는 가까이에서 커피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오늘 마시즘은 아랍에서만 자라던 커피나무를 전 세계적으로 옮긴 이들의 이야기다.
커피는 모카에서 독점 판매합니다
과거 글 「교황이 세례한 사탄의 음료수」에서 말했다. 커피가 처음 발견된 곳은 에티오피아의 산악지대다. 목동 칼디가 염소가 뜯어먹는 이 열매를 발견한 뒤로 커피는 수도사들과 군인들의 ‘레드불’ 역할을 했다. 이 녀석이 바다를 건너 아라비아로 넘어가고 6세기부터는 예멘 메카 지역에서 식물로 재배가 되기 시작한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무슬림의 머스트 헤브 음료. 커피는 멀리 유럽에도 전파가 된다. 하지만 유럽 사람들은 커피나무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예멘에서는 커피 재배를 독점하기 위해 외부에 생두를 반출하는 것을 막았다. 그들은 커피콩을 끓이거나 열을 가해 고자… 아니 발아 능력을 없앴다. 또한 수확한 커피는 ‘모카(Mocha)’의 항구에서만 판매를 했다. 때문에 모카는 커피의 대명사가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1600년경 철통 보안인 커피농장에 도둑이 들었다. 범인은 인도에서 온 이슬람 순례자 ‘바바 부단(Baba Budan)’이었다. 그는 예멘에서 발아가 가능한 커피 씨 7개를 훔쳐 인도로 돌아갔다. 그리고 인도 남부지역 마이소르 산악지대에서 작게나마 커피나무 경작에 성공한다. 하지만 바바 부단은 몰랐다. 자기가 가져온 씨앗이 어떤 사건들을 꽃피우게 될지.
씨앗 대신 나무를 훔치다: 네덜란드 자바커피의 탄생
바바 부단의 커피 씨앗 반출 썰이 네덜란드에 흘러 들어갔다. 그들은 기후만 비슷하다면 커피나무를 경작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1616년, 네덜란드는 산업스파이를 동원해 예멘에서 커피나무를 뿌리째 훔쳐 달아나는 기행을 저질렀다. 물론 당시(식민 개척 시대)에는 네덜란드가 바다를 지배하는 초강대국 중 하나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예멘에서 훔쳐 온 커피나무는 암스테르담 식물원에서 배양을 하였다. 그리고 네덜란드의 식민지인 ‘실론(스리랑카)’과 ‘자바섬’에 옮겨져 본격적인 재배를 시작하게 되었다. 실론은 안타깝게도 커피녹병이 발생하여 커피 농가 3/4 정도가 사라졌지만(그 자리에 찻잎이 생겨 실론티가 되었다), 자바섬의 커피는 무럭무럭 자라 예멘의 생산량을 추월했다.
자바에서 나온 커피는 곧 유럽인들이 마시는 커피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게 된다(1850년대 네덜란드 재정수입의 30% 이상이 커피에서 나왔다). 그동안 커피를 ‘모카’로 부르듯, ‘자바’는 커피의 또 다른 이름이 되었다. 물론 더 훗날 이과생들에 의해 프로그래밍 언어 이름으로 변질이 되지만.
네덜란드가 하면 프랑스도 한다, 데클리외의 모험
이제 커피를 재배할 수 있는 것은 예멘과 네덜란드뿐이었다. 네덜란드 역시 커피 재배 방법을 비밀에 부치기 위해 많은 애를 썼다. 딱 한 가지 불안 요소는 1714년 암스테르담 시장이 루이 14세에게 선물한 커피나무 한 그루였다. 이 커피나무는 파리 식물원에서 자라고 있었다.
멀리 서인도제도(중남미 부근) ‘마르티니크’라는 작은 화산섬에 있던 장교 ‘가브리엘 마티외 데클리외(Gabriel-Mathieu Francois D’ceus de Clieu)’는 독서를 하다가 네덜란드인들이 동인도제도에 커피를 옮겨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동인도제도와 기후가 비슷한 서인도제도에서도 커피도 자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커피나무만 가져올 수 있다면 이 심심한 땅을 돈…아니 커피가 가득한 공간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루이 14세는 자신의 리미티드 에디션인 커피나무를 데클리외에게 넘겨주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데클리외는 수년 동안 애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커피 씨앗 하나 얻질 못했다. 수년간의 구애 끝에 그는 겨우 루이 14세 주치의의 도움으로 커피나무의 곁가지를 얻게 된다. 힘들게 구한 이 녀석을 가지고 대서양을 넘어가기로 한다.
환경에 민감한 커피 묘목을 바다 건너에 가져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데클리외는 나무상자와 유리를 이용해 휴대용 온실을 만들었다. 하지만 항해가 얼마 되지 않아 튀니지 해적들이 나타났다. 해적들을 물리치고 나니 배 안에 함께 탄 승객들이 데클리외의 커피나무를 노렸다. 데클리외는 점점 사람을 만나지 않고 커피를 지키는 데 힘을 써야 했다. 열대 무풍지대에 갇혀 한 달 동안 배가 움직이지 않을 때도 자기 몫의 물을 커피나무에 나눠줄 정도였다.
드디어 마르티니크에 도착한 데클리외는 소중하게 가져온 커피나무를 기르게 된다. 몇 년 후에 이곳에는 400만 주의 커피나무가 자라며 자바에 이은 또 다른 커피 농가가 된다. 커피나무 하나에 목숨을 건 데클리외 덕분에 프랑스가 세 번째 커피 생산국이 된 것이다.
잘생기면 다!… 야! 브라질의 꽃미남 커피 탈환기
예멘에서만 기르던 커피는 이제 네덜란드, 프랑스까지 세 국가로 늘어나게 되었다. 더 이상의 확장은 없다. 네덜란드와 프랑스는 제3 국가에 커피 재배를 유출하지 않기로 암묵적 동의를 한다. 물론 커피만의 이야기고 실제로는 영토분쟁으로 많이 다투게 되었다. 특히 프랑스령 가이아니와 네덜란드령 가이아니 사이에 국경 분쟁 때문에 제삼자에게 중재를 맡기게 된다. 하지만 그 중재자가 커피를 훔칠 또 다른 문익점(…)이란 사실을 네덜란드와 프랑스는 알지 못했다.
그는 포르투갈령 브라질 장교 ‘프란시스코 데 멜로 팔레타(Francisco de Melo Palheta)’였다. 팔레타는 사교성이 뛰어나고 아주 잘생긴(…) 사람으로 프랑스와 네덜란드 사이의 중재를 성공적으로 진행했다. 그의 일은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팔레타의 실제 임무는 프랑스 총독 부인을 유혹하는 것이었다. 오늘날로 치면 일종의 007 제임스 본드라고 해야 하나. 암튼 이래서 잘생긴 것들은!
팔레타가 임무를 마치고 브라질에 돌아갈 때가 되었다. 프랑스 총독 부인은 그에게 이별의 꽃다발을 선물로 주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커피 씨앗이 한 움큼이 몰래 들어있었다. 팔레타는 이를 가지고 브라질에 돌아가 커피를 기르게 되었다. 이후 브라질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커피를 재배하는 국가가 된다.
밀수와 도난의 커피사는 무엇을 남겼을까?
한 잔의 음료에도 지구를 도는 모험사가 담겨있다. 예멘에서만 비밀리에 길러지던 커피는 이제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작물이 되었다. 아마 그들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는 (귀족이 아닌 이상) 커피를 마실 수 없었을 것이다.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처음에는 사람이 다니는 곳에 커피농장이 만들어졌지만, 대규모의 농장이 들어서자 이제 커피가 있는 곳에 사람들이 모여들게 된다. 특히 인력이 부족했던 브라질의 커피 농가에는 처음에는 아프리카 노예들이, (노예제 폐지 이후에는) 다른 대륙의 노동자들이 달려왔다. 브라질 커피농장은 곧 복잡한 인종의 블렌딩이 되었다.
반성은 식민지에 커피농장을 가장 먼저 시작했던 네덜란드부터 일어났다. 1980년대 네덜란드 출신의 데어 호프(Frans van der Hoff) 신부가 ‘공정무역커피(Fair Trade Coffee)’운동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훔치고 싶을 정도로 유혹적인 커피’에 대한 사랑이 이제는 그것을 재배하고 만드는 사람에게 향하기를. 따뜻한 목화… 아니 모카라떼를 마시며 바라본다.
원문: 마시즘
참고 문헌
- 신혜경, 「원산지가 에티오피아인 커피가 남미에서 재배 가능하게 된 과정은…」, 조선비즈, 2016.11.11
- 이성무, 「남미의 열정을 담은 브라질의 ‘카페 징요(cafezinho)’」, 일요서울, 2018.1.18
- 이명석, 「커피, 각성과 착취의 검은 길」, 경향신문, 2008.3.14
- 홍익희, 「세상을 바꾼 식품 이야기, 커피」, pub조선, 2016.8.19
- 트리스탄 스티븐슨, 『커피 상식사전』, 길벗,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