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그럴싸하고 좋은 말은 참 많다. 맞는 말인 줄 알면서도 그 자체로 내 삶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그런 명언도 즐비하다. 어릴 때 그런 명언을 접하면 설레기도 했고, 또 한편으론 시간이 흘러 지치기도 했다. 그 명언만큼 내가 성장해내지 못한 것 같아서 말이다. 명언이 나의 것이 되려면 수천 번의 되새김이 필요한 것 같다. 스치듯 한번 읽고 고개를 끄덕이면 아무 소용이 없었다.
나에게 가장 와닿았던 명언은 폴 발레리의 말이다. 솔직히 그가 누군지도 몰랐고 어떤 맥락에서 그 얘기를 한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 당장 생각하는 대로 살기 시작하지 않으면, 아주 가까운 시일 안에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라는 말은 내가 살고 싶은 삶의 형태를 잘 표현해준 말이었다.
22살 때였다. 조금만 생각을 멈추면, 내 환경이 내 생각을 지배하기 시작했고, 그러면 나는 환경대로 생각해나갔다. 주위 사람들이 게으르면 나도 게을러졌다. 내가 게을러져도 아무도 혼내지 않으면 더 게을러졌다. 그리고 그 모습이 내 미래를 빚어갔으리라. 그러나 생각대로 살고 싶었다. 생각을 할 때, 책을 읽을 때 깨어 있는 것 같았고, 모든 것이 바뀌는 것 같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았다.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했고 행복했다. 둘 중 하나의 삶을 내가 선택해 살 수 있다면, 생각하는 대로 살고 싶었다. 그냥 한 번쯤 곱씹고 끝날 수 있는 명언이었지만 수첩에 적어놨다. 매일 눈에 띌 수 있는 맨 앞장에 적어놨다. 어찌 보면 허세다. 그런 걸 적어둔다고 당장 내 삶이 변화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계속 읽고 되뇌었다. 군대에서, 해외에 파병 가서, 다시 복학해서, 끝없이 그 글귀를 읽었다. 그리고 누군가한테 허세 삼아 이야기했다. 반짝이는 눈으로 선배의 이야기를 맹신해주는 후배들에게 마치 내 삶의 거대한 철학인 양 얘기해주기도 했고, 일기 속에 수백 번씩 내 이야기인 양 적어놓기도 했다. 그 이야기를 반드시 내 이야기로 만들 참이었다.
그 과정에는 힘 빠지는 순간도 많다. 어느 날 정신 차려보니 여전히 사는 대로 생각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 한 발짝도 발전하지 못했나 싶을 때. 그렇지만 우리는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라 괜찮다. 계속, 계속 읊조리면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1년에 단 한 번이라도, 10년에 단 한 번이라도, 중요한 결정 앞에서 올바른 결정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점차 그 철학들이 내 삶의 철학처럼 녹아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남의 철학을 배울 때는 내 입을 통해 남을 가르쳐보는 것이 참 좋다. ‘남에게 가르친다는 것은 두 번 공부한다는 것이다’라는 이야기도 있지 않은가. 설령 거짓말이라도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은 내 자신을 바꾸는 힘이 있다고들 한다. 그걸 들은 사람이 나를 다르게 보기 시작하고, 나는 그 말을 두 번 반복할 용기를 얻고, 그 말을 증명하기 위해 살아가게 되고, 때로는 그런 철학의 현신처럼 자신을 인지하게 되기도 하잖은가. 그래서 이런 개똥철학들로 자신을 속이는 것은 참 중요하다.
서른도 참 젊기만 한 나이고, 마흔도 사실은 젊기만 한 나이다. 세상에 대해 개뿔 모르는 나이다. 내가 이 나이가 되어보니 알겠다. 아는 척하고 싶지만 사실 다 주워들은 이야기, 단편적인 경험들이다. 몇만 시간 쏟아부은 단 한두 개의 영역에서만 ‘약간 좀 아는 편’이다. 나머지는 하나 마나 한 이야기다. 또래끼리 떠들다 보면 너나 나나 말도 안 되는 소리들을 마구잡이로 늘어놓고 있는 나이가 마흔이다. 한 환갑 되면 그래도 옳고 그름이 대략 파악이 되지 않을까? 그런데 감히 철학을 논한다는 게 어색하다.
요새 간혹 네이버에 내 서평들을 찾아보는데, 내가 쓴 글귀들을 노트해 적어둔 독자들을 보면서 기분이 참 묘하다. 명언 비슷한 문구들이 참으로 민망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그분들이 자신의 입으로 그 말을 되뇌며 삶을 바꿔가고 있다는 것이 참 존경스럽기도 하다.
책을 읽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기 혼자 몇백, 몇천 번 자기만의 방식으로 되뇌이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자신의 이야기가 되어가는 과정, 자신의 철학이 되어가는 과정이 중요하단 생각이 든다. 그렇게 스스로 생각하는 방식으로 살기 시작한다면, 분명 자신의 운명들을 개척하리라 생각한다.
십수 년이 지나 읽어본 내 최애 책들은 모두 내 기억 속에서 변질되어 있었고, 내 삶에 그다지 직접적이지 않은 미묘한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그저 생각하는 시간을 담보해주는 장치로서, 그 책들과 그 문구들에 감사할 따름이다. 내 책과 독자들에 대해서도 그런 연결고리가 되어준 것에 감사해하면 될 것 같다.
원문: 불릴레오 천영록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