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산투자의 관점에서, 자식이 세 명일 때 셋 다 다른 종교를 가진다면 어떨까? 한 명은 기독교, 한 명은 불교, 한 명은 이슬람교로 하십시다. 부모가 천국 및 낙원에 가거나 성불하기를 각자 다른 곳에서 열심히 기원한다면 우리도 죽어서 행복해질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더 높지 않을까? 그것이 분산 투자 아닌가.
이 가설은 우선 사후의 세계가 존재할 가능성을 우리가 알 수 없다는 전제에서 시작한다. 사후 세계가 없다면 말짱 꽝이지만 혹시 존재한다면 헤지(hedge)를 해야 하니까.
가장 좋은 케이스는 천국이 하나인 경우다. 천국은 동일하지만, 천국으로 들어오는 길, 즉 ‘채널’ 혹은 접수창구가 다른 거라면? 말하자면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의 고객 만족 시스템은 개별적이지만 입국장은 똑같은 경우다. 모두 각자 다른 창구를 통해 자녀들의 기도를 접수해놨고, 셋 다 나름 가산점을 부여했다면 해피 케이스다. 마치 암 보험을 여러 개 들었는데 보험금이 다 함께 나오는 경우 아니겠는가.
현실 세계를 보다 보면 같은 종교여도 때에 따라서 ‘접수창구’가 제대로 작동 안 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예컨대 천국이 동일함에도 특정 교파에서 기도하는 게 효과 없는 경우라면, 한 군데에서 평생 기도해봤자 불발이 날 가능성도 생각해야 한다. 이런 경우에는 여러 교파 혹은 종교에서 골고루 기도하는 것이 기도 접수 가능성을 높일 것이다.
특히 기도가 ‘누적 기도량’보다 ‘접수의 유무’가 더 중요할 때 그러하다. 많이 기도한 게 아니라 ‘한 번이라도 로그인 흔적이 있어야 한다’가 더 중요하다면? 간혹 어떤 종교에서는 ‘죽기 직전에라도 회개한다면 똑같이 죄의 사함을 받는다’고 하는데 이는 분명 누적 기도량보다 접수 유무가 더 중요하다는 암시이리라. 그렇다면 무조건 많은 창구에서 접수를 해야 한다. 죽기 직전에 모든 종교에 다 귀의해볼 필요가 있다.
천국이 마치 롯데월드와 에버랜드가 다르듯이 물리적으로 따로 존재할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기독교의 천국과 불교의 천국이 별도로 존재한다면? 그렇다면 양쪽 기도가 다 접수되어 있을 테니 1) 더 크고 강력한 교파에서 알아서 영혼을 모셔간다, 혹은 2) 우리가 천국 가는 길에 선택권이 생긴다. 둘 다 나쁘지 않은 결과다.
가장 나쁜 경우는 천국 가는 행이 1인 1사 시스템으로 배타적일 때다. 그리고 여러 종교에 귀의했을 때 계약 위반으로 문제가 되는 경우다. 즉 기독교에서 기도했지만, 자녀 형제 중 누구라도 경쟁 종교에 기도를 넣은 행위가 그 자체로 법적 시비가 발생해서,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한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다. 예컨대 기독교의 천국에 입성 직전에 불교의 염라대왕 비서실에서 서류를 들고 찾아와서 행패를 부리다가 결국 양쪽에서 계약 파기를 이유로 지옥으로 떨어뜨린다면…
실제로 각 종교에서 이런 배타적 계약 이론을 설파할 이유는 충분하다. 그런 교리가 없다면 모든 합리적인 자산 배분가는 모든 종교를 다 돌아다닐 것이고, 그에 따라 그들의 막대한 십일조 및 기부금은 분산되어버릴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현실적인 문제다. 종교는 배타적일 필요가 있다.
만약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너의 첫째 딸은 나에게 기도를 해서 만족한다만, 너의 둘째 아들이 감히 부처에게 기도한 게 영 괘씸해서 나는 너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고 한다면, 우리는 저세상 헌법의 안정성에 심각한 의문을 제시해야 한다. 오히려 자식이 악마에게 기도를 했다 한들 넓은 품으로 ‘나’는 용서해줘야 정상 아닐까. 물론 이런 망상을 저지르는 죄는 피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자산 배분 입장에서 종교는 사후적으로 ‘대박 옵션’의 세계다. 만약 천국이 실재한다면, 단 한 번의 기도 접수만으로도 그 천국에 입성하느냐 마느냐, 수천 배의 행복을 얻느냐 마느냐가 결정된다. 즉 옵션 가치는 어마어마하게 높고 가격은 비대칭적으로 저렴한 상황이다. 그러니 이런 티켓은 최대한 다양하게 수집해두는 것이 맞다. 이론적으로는 모든 종교를 다 믿는 게 맞다.
그러나 물론 종교에서 말하는 믿음이란 논리적 근거를 초월한 신념을 말하는 것이니, 분산해서는 안 될 것 같다. 또 종교에서 주는 기쁨이란 사후적인 것보다 현세에서의 기쁨이 더 클 것이다. 오늘도 종교활동을 하시는 분들은 얼마나 큰 기쁨과 충만감을 얻었겠느냔 말이다.
다만 우리 자녀들이 모두 다른 종교를 믿는다면, 집안이 행복해질 가능성보다 불행해질 가능성이 훨씬 높지 싶다. 불행해질 가능성을 막고자 그런 꿈도 접어야겠다. 개인적으로 죽으면 모든 게 끝난다 생각한다. 오로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하나의 잔상으로 존재하는 것 아닐까. 나를 아는 사람들이 멸종하면 그것으로 존재도 끝이고, 나를 아는 사람들이 번성하면 그것으로 남에게 의미를 주고 사는 삶이 될 것 같다.
그러나 종교란, 우리가 세속 세계에서 살며 잊기 쉬운 영적 정신적 재교육을 해주는 시설이다. 인류의 지혜를 알려주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마련해주며,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기댈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존재이다. 앞으로 종교가 더 커질 것이냐 작아질 것이냐 묻는다면, 나는 매수 의견(long)이다. 다만 톱 픽(top pick)은 따로 없다.
원문: 불릴레오 천영록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