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하는 언니들의 공생공사] 3일 중구 타작마당 여성 공학인 행사
여성만의 장점으로 만드는 새로운 기술…컴패니언 로봇·휴대용 수력발전기 등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20%도 안 되는 여성 공학인, 영역 늘려 새로운 가치 찾아야”
박혜린 이노마드 대표 “스스로 질문하고 답하는 훈련 하면 단단해질 수 있다”
여성들이 공학 리더가 되면 어떤 게 달라질까요?
2월 3일 서울시 중구 타작마당에서 진행된 ‘공학하는 언니들의 공생공사(空生空死)’에서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여성 공학인들에게 던진 질문이다. 노 관장은 “단지 남성들이 차지한 자리를 뺏는 것보다도 새로운 가치로 다른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며 “여성이기 때문에 내세울 수 있는 장점을 기술로 발현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해당 행사는 신산업 여성 공학도 인력양성을 위해 로봇·신재생에너지·플랜트 등 3개 산업별 인적자원개발협의체(SC)와 본지가 함께 준비했으며, SBS CNBC 문소리 아나운서의 사회로 진행됐다. SC는 기업, 학계, 협회 등이 모여 산업 수요에 부합하는 인력양성을 추진하기 위한 협의기구다.
이날 참여자는 선착순 모집된 약 30명으로, 신산업 분야에 관심 있는 여성 공학도와 여성 창업 준비생들이 모였다. 강연이 진행됐을 뿐 아니라 이날 모인 이들에게 각 SC가 관련 취업 정보, 직무 교육 자료 등을 나눴다.
여성의 손으로 그려보는 로봇과 인류의 공존
노 관장은 기술이 효율에 치중해 발전해오면서 초래한 차별과 소외를 미래 사회에서 풀어나가려면 행복·자아실현 등 다른 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가 그 예로 제시한 건 감정을 공유하는 로봇이다. 그는 “지인이 기르던 강아지를 대신 맡게 됐는데, 키우다 보니 강아지처럼 감정을 공유하고 힐링할 수 있는 ‘컴패니언(companion) 로봇’을 만들면 좋겠다는 발상을 했다”라고 설명했다.
아트센터 나비는 회사원 등 다양한 사람들과 모여 로봇 만드는 작업을 진행했다. 반응이 좋자 곧바로 일을 키웠다. 2015년 타작마당 공작실에서 한국, 중국, 일본 출신 로봇 제작자들과 ‘로봇 파티(ROBOT PARTY)’를 열어 30여 개 로봇을 전시했다. 바텐더 로봇, 쓰레기를 버리려고 하면 달려오는 쓰레기통 로봇처럼 사람의 일손을 덜어주는 로봇이 있는가 하면, “욕을 해달라” 주문하자 시원하게 비속어를 던지는 할머니 로봇부터 술을 마시고 취하는 로봇 ‘드링키(Drinky)’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인간과 감정을 공유하는 로봇들도 있었다.
노 관장은 “지금은 감정이 몸의 변화에서 온다는 학설이 각광받고 있는데, 바이오 기술이 발전한다면 본인 스스로가 감정을 느끼기 전에 기계가 먼저 알아차릴지도 모른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인공지능이 인간과 얼마나 소통 가능한지 알아보고 싶어 연구를 시작해 현재는 다양한 기관과 협력해 연구를 진행 중”이라며 앞으로도 관련 활동을 지속적으로 이어갈 것을 암시했다.
이에 대해 반도체공학도인 신연주 학생은 “학교에서 배우는 거대한 산업적, 수익적인 부분을 벗어나 다른 곳에 초점을 두고 공학을 새로운 방향에서 볼 수 있어 좋았다”라고 말했다.
문과 출신 공학자, 신재생에너지 산업 개척하다
수력발전 사업을 직접 개척한 경영학도의 사례도 이어졌다. 이노마드(대표 박혜린)는 휴대용 수력발전기로 에너지 접근성을 확대했다는 평가를 받는 소셜 벤처다. 박혜린 대표는 “전 세계가 물로 필요한 전력을 생산할 수 없을까 고민하다 8년 전부터 주도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했다”라고 창업 계기를 밝혔다.
이노마드의 휴대용 수력발전기 ‘우노’는 흐르는 물에서 힘을 얻는다. 근본적으로 미세먼지를 발생시키지 않는 기술이며, 공급자 중심으로 에너지를 소비만 하는 게 아니라 생산도 할 수 있는 발전 방법이다. 우노로 4시간 정도 발전하면 아이폰 2대를 충전할 수 있다.
미국 캠핑 아웃도어 시장에 판매 중이며, 파타고니아 매장에도 판매되고 있다. 우노에 사용되는 모든 플라스틱이 100% 재사용 가능하고, 회로에 납이 없고, 생산 과정도 친환경적이라는 점이 파타고니아가 추구하는 환경적 가치와 맞아떨어진 것. 최근에는 아프리카, 인도 등 전력 소외지역까지 닿는 도전에 나섰다.
박 대표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세상을 바꾸는데 문·이과라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함을 강조했다. 그는 자신이 “공대생도 아닌 데다 사회에서 경험을 쌓은 적도 없었으며 자본도 없었지만, 새로운 경쟁력을 쌓아 기회가 왔고 임팩트 투자까지 유치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여성 공학인, 기술로 혁명을 꿈꾸다
이날 참가자들은 ‘2020 여성 공학인의 희망’을 담은 포스트잇 붙이기 행사에 참여했다. 공학인을 꿈꾸는 여성으로서 올해 이루고 싶은 소망을 담은 것. 두 연사는 각각 노란색 패널에 붙은 포스트잇 중 눈에 띄는 하나를 골라 읽었다.
노 관장이 고른 포스트잇에는 ‘인문학을 통섭하는 공학도 되기’가 적혀 있었다. 노 관장은 “기술, AI 발전은 공학 전공자로부터만 나오는 게 아니다”라며 “융복합 인재가 필요한 이 시점에 무척 필요한 것”이라고 공감했다.
박 대표가 고른 내용은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지치지 않는 엔지니어 되기”였다. 박 대표는 “성과를 이루기까지 시간이 길었다”라고 번아웃(burnout) 상태가 됐던 시간을 회상했다. 이어 그는 “회사를 창업한다고 했을 때, 3년 차 선배가 ‘존버(끝까지 버티라는 뜻의 신조어)’하라고 조언한 게 기억났다”며 “작은 줄기가 좀 더 넓어지는 시점이 분명히 온다”라고 말했다.
서울시립대 입자물리연구실에서 공부한다고 밝힌 김주아 씨는 두 연사의 강연을 듣고 “여성이 별로 없는 학문에 관한 강연이 열린다고 해 자연과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참여했다”며 “연사들처럼 여성 공학도 선배들이 있어 내가 있고, 또 내가 있어야 후배들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무척 의미 있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끝으로 노 관장과 박 대표는 공학에서 기회를 찾는 여성 후배들을 위한 조언을 전했다. 박 대표는 “공학 분야에서 여성을 찾기가 힘든데, 스스로에 질문하고 대답하는 훈련을 거쳐 단단해진다면 성공하고픈 영역에서 멋지게 해낼 수 있을 것”이라 격려했다.
노 관장은 “컴퓨터공학이 등장한 초기인 1980년대에는 전공자 중 여성이 많았는데, 돈이 되기 시작하자 여자들이 자리에서 오히려 쫓겨났다”며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공학도가 20%가 안 돼서 남자들이 만드는 기술에 의존한다”고 말했다. 그는 여성 공학도들이 ‘혁명가’가 되길 요청했다.
스스로를 혁명가라 여기세요. 거리에서 외치는 것만이 혁명이 아니에요.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기술 분야에 여성의 영역을 만들기 위해 분투해주길 바랍니다.
원문: 이로운넷 / 글: 박유진 기자 / 사진: 이우기 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