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계단이 있다.
지금은 민주인권기념관으로 바뀐, 예전의 남영동 대공분실에 있는 나선형 계단이다. 남양동 대공분실은 군사독재 시절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고문하고 취조하던 장소다. 19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열사 고문 사망 사건도 이곳에서 벌어졌다.
5층에는 복도를 사이에 두고 15개의 취조실이 있다. 대공사건 피의자가 되어 남영동 대공분실에 잡혀 오면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하고 세상과 단절된 상태에서 모진 고문과 취조를 당했다고 한다. 피의자들이 대공분실에 들어서면 정면의 주 출입구가 아닌 후면의 쪽문과 이어진 나선형 계단을 통해 5층 취조실로 걸어서 이동한다. 건물 내에는 엘리베이터와 직선 계단이 있지만 피의자들은 나선형 계단을 통해서만 취조실로 올라갈 수 있다.
나선형 계단은 어떻게 이런 계단을 설계했을까 싶을 정도로 독특하다. 한 사람이 올라갈 수 있는 좁은 폭에 계단이 상당히 가파르다. 게다가 1층에서 5층까지 올라가는 계단 길에 일절 출입구가 없다. 흰색 벽과 철재 계단 만이 나선형으로 끝없이 이어진 느낌이다. 포승과 수갑에 묶인 채 뒤에는 수사관이 따라오는 상태에서 좁고 가파른 계단을 돌아 돌아 올라가면 방향감각을 상실한 피의자들은 극도의 불안과 공포감에 휩싸인다고 한다.
우리 조직에도 직원들이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목적과 목표를 모르고 예측 불가능한 상태에서 반복적 업무를 하면서 지속적으로 실적 압박을 가하면 직원들의 감정은 혼란, 불안, 공포감을 느낀다. 내가 왜 이 일을 하지?
우리 회사와 내가 하는 일이 세상과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주고 내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하게 하고 알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오로지 돈을 벌고 생존하기 위해 힘들지만 버티는 직원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우리 회사의 미션을 잘 정립하고 내재화하여 일의 의미를 알고 내가 하는 일이 가치 있는 일이라는 자부심과 사명감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나선형 계단이 5층까지 이어지고 중간에 출입문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올라간다면 혼란과 공포는 덜할 것이다. 우리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목표가 명확하고 상황이 예측된다면 준비할 수 있다. 목표를 이루어가는 기쁨과 즐거움도 느낄 수 있다. 비전과 목표는 기대감과 함께 안전함을 느끼게 한다.
저성장과 초경쟁 시대는 기업과 조직의 생존을 위협하지만 그 속의 직원들 또한 불안감이 있다. 앞으로 해가 갈수록 돈 들어갈 일도 많고, 한편으로 여유롭고 즐거운 삶도 살고 싶다. 그런데 회사가 앞으로 5년 후, 10년 후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다면 인생을 대비할 수 없다.
사람은 30대, 40대, 50대라는 신체적 나이가 주는 의미가 있지만 회사는 2000년, 2010년, 2020년과 같이 새로운 10년을 맞는 시기가 주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많은 회사가 ‘비전 2020’ 같은 비전을 5–10년 전에 만들었다. 이제 2020년이 된 지금, 자연스러운 과정이기도 하고 현실적 필요성도 큰 만큼 앞으로 5–10년을 전망하고 과제를 만들고 우리가 만들고 싶은 비전과 목표를 수립하는 작업을 하는 것은 당연하기도 하고 꼭 필요한 중요한 과제다.
우리 회사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서 노력할 뿐, 인위적인 비전이나 목표를 세우지 않으려고 합니다.
라고 말하는 경영자가 있다. 개인이 인생을 관조하면서 행복을 찾는 철학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생각이다. 하지만 조직은 개인의 행복 철학으로 경영될 수 없다. 모든 구성원 각자가 자기 나름의 행복과 성공의 철학이 있기 때문에 조직은 모두에게 예측 가능한 미래를 비전이라는 이름으로 정해주어야 한다.
어떻게 비전과 목표를 수립할 것인가?
- 직원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경영자(오너)의 비전이거나 경영자를 위해 만든 비전이 된다.
- 비전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 목표에는 수치와 직장 목표가 포함되어야 한다. 기업에서 생존, 성장, 발전을 위한 숫자가 없는 목표가 성립될 수 없다. 직원들에게 어떤 이익이 돌아오는지 직장 목표라는 이름으로 정해야 한다. 직원들이 자기들에게 어떤 이익도 돌아오지 않는데 평소보다 더 폭발적 몰입과 열정을 다할 수 있겠나.
- 비전 기한이 설정되어야 한다. ‘비전 2025’ ‘비전 2030’처럼 말이다. 기한이 없는 비전은 되면 좋고 안 되면 그만이라고 해석될 우려가 있다.
모든 기업이 고민하는 새로운 비전 수립 어렵지 않다. 자기 회사 비전과 목표를 스스로 만들지 못하는 직원들은 없다. 나의 경험이 그렇고 사실이 그렇다.
원문: 더밸류즈 정진호가치관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