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당하는 게 싫어 거절하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누군가의 부탁이건 제안이건, 일이건 내 취향도 아니고 심지어 쓸모도 없는 못생긴 사은품이건… 좀 버겁더라도 나를 향한 손길을 단칼에 자르지 꾸역꾸역 잡곤 했다. 어리석게도 그게 나라는 인간의 쓸모를 증명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주변 사람들에게 나는 뭐든지 ‘좋아 좋아, OK’라고 말하는 예스걸이 되었다.
거절 못하는 사람을 이용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다가간다.
- “이건 네가 아니면 할 사람이 없어 “라고 밑밥을 깐다.
- 목적을 달성하면 “너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라고 가벼운 칭찬을 던지고 재빨리 빠진다.
처음엔 진심으로 나 아니면 안 되는 건 줄 알았다. 누군가에게 난 필요한 사람이구나, 난 쓸모가 있는 사람이구나 싶어 마냥 기뻤다.
하지만 세상에 나 아니면 안 되는 일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대타는 야구장에만 있는 게 아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굴러가고, 할 만한 사람이 없으면 지나가는 길고양이의 솜방맹이 같은 발이라도 빌려서 목적을 달성하는 게 조직이고 세상이다. 내가 필요해서라기보다 부리기 편해서 굴리기 쉬워서 나를 선택했다는 현실을 인정하기까지 적지 않은 인생의 수업료를 지불해야 했다.
누가 봐도 분명 무리였는데 나를 내던지고, 나를 갈아서 결과물을 내려고 애썼다. 나를 선택해준, 나의 존재를 알아준 이들이 고마워 그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내 능력 밖의 일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해결할 수 없다.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내 노력이 부족해서라고 자책했다. 좋게 보면 순수했고, 결과적으로는 멍청했던 나는 스스로 판 무덤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자학의 시간들이 쌓이면 자기 자신을 병들게 한다는 걸 한참 후에야 알았다. 한참 크게 앓고 나니 정신이 번뜩 들었다.
늘 YES를 말하던 입에서 처음 NO가 나오던 날, 사실 상대방보다 내가 더 긴장했다. 일말의 의심도 없이 YES라는 당연한 답을 기다리던 상대에게 NO를 외쳤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숨기며 손톱깎이처럼 딱 부러지게 잘라냈다. 작정하고 내가 뱉어 놓고도 상대방이 상처받으면 어쩌나 걱정하는 나를 애써 진정시켰다. 예상치 못한 나의 NO에 얼음물을 뒤집어쓴 듯 바짝 얼어버린 상대의 그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사람들은 모두 필요에 의해 움직인다. 내가 그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면 거절 따위에 나를 손절하진 않는다. 작은 부탁을 거절했다고 나를 손절할 사람이라면 일찌감치 내 인생에서 거른 게 다행인 사람이다. NO를 외친 그 순간은 분명 불편하고, 미안하다. 하지만 그 찰나의 순간만 참으면 된다. 나를 갉아먹는 자학이나 불필요한 시간 낭비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자고로 인간이란 간사해서 편한 사람은 편하니까 막대하고, 어려운 사람은 불편하니까 조심한다. 편한 사람, 착한 사람보다 똑 부러진 사람이 대우받는다. 배려랍시고 나 자신을 2순위, 3순위로 미뤄두면 상대방은 나를 100순위, 1000순위쯤으로 미뤄도 괜찮은 사람으로 대한다. 나의 존재 가치는 스스로 챙겨야 한다. 누군가를 통해 자신의 쓸모를 인정을 받기 위해 애쓰는 일은 그만두자. 그 시간에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일을 찾아보자.
지금 이 시간에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단호하게 거절하지 못한 무거운 부탁 때문에 괴로워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예스걸, 예스맨에서 탈출하고 싶다면 이 방법을 시도해 보길 권한다. 매일 아침 집 밖으로 나서기 전, 거울 앞에서 단장을 마치면 마지막으로 단전에 힘을 빡 준다. 그리고 거울 속 내 눈을 똑바로 보고 말한다.
안 됩니다. 못 합니다. 싫습니다. 그건 제 능력 밖이라서요.
원문: 호사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