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인간관계로 스트레스가 얼마나 괴로운지 당해본 사람만 안다.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에서 내가 싫어하는 사람 혹은 나를 싫어하는 사람과 함께 보내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그래서 직장 구성원들과 골고루 호의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호감을 사는 일이 필요하다. 호감을 사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점심 식사를 함께하는 것이다.
직장인에게 점심시간만큼은 상대적으로 긴장이 풀어지는 시간이다. 삭막한 사무실을 벗어나 한식, 중식, 일식, 양식 어떤 메뉴를 먹을지 오전 내내 고민하여 음식점에 들어가 맛있는 음식을 입속으로 넣으면 잠시 긴장이 풀어진다. 그리고 사무실에서 바빠서 혹은 어색해서 하지 못했던 얘기들을 좀 더 가까운 거리에서 말할 수 있는 시간이 점심시간이다. 밥을 맛있게 먹고 나면 이제 남은 건 계산이다. 계산 방법은 네 가지다.
- 한 사람이 무심하게 빌즈를 챙긴 후 카운터에 가서 계산한 다음 계좌번호를 불러주고 N 분의 1의 금액을 송금받는 방법이다. 한 번, 두 번 계속 계산하다 보면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총무가 될 수도 있다는 점 주의해야 한다.
- 각자 카운터에 가서 본인이 먹은 음식만큼만 계산하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분명 나간 건 한 테이블인데 계산하기 위해 긴 행렬이 만들어지는 진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 감사하게 상대방이 밥을 사는 것이다. 이럴 땐 가장 감미로운 “잘 먹었습니다”를 준비한 후 가게 문을 나서는 순간 외치면 된다.
- 그냥 내가 사는 것이다.
점심시간에 밥을 사준다면 평소 아무런 감정이 없던 사람이라도 감사하고 호감을 갖게 된다. 호감을 사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돈을 쓰는 것이다. 돈으로 사람의 마음을 사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리 크게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돈을 사용하는 방법을 보면 그 사람의 성향이나 인성을 파악할 수 있다.
진정한 부자는 허세를 부리는 데 돈을 쓰지 않고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기 위해 돈을 쓴다는 말이 있다. 언뜻 보기에는 쓸모없는 소비 행위처럼 보일지라도 본인의 일이 분명 도움이 되는 때가 온다. 이와 같이 상대방을 기분 좋기 위해 돈을 쓰는 것은 인맥 형성을 위한 투자이며 돈 쓸 곳을 잘 아는 현명한 소비가 되는 셈이다.
사회초년생 때 운이 좋게도 배울 점이 많은 분과 함께 일했다.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상사에게 깨졌을 때 슬그머니 다가와 맛있는 것 좀 사 먹여야겠다며 점심시간에 밥이나 커피를 사주었다. 그때의 감동은 고스란히 남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을 정도다. 그리고 항상 감사함을 느끼며 누가 시키지 않아도 줄곧 잘 따랐다.
이분들에게 배울 점은 주변 사람들에게 단순히 밥을 사주었기 때문은 아니다. 항상 돈을 쓰면서도 대가를 바라지 않았다. 매번 얻어먹는 것이 마음에 걸려 “다음번에 꼭 제가 살게요”라고 하면 표현 방법은 조금씩 달랐지만 이런 뉘앙스로 얘기했다.
나한테 얻어먹은 만큼 네 후배들에게 사주면 돼.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너무 멋있는 말이다. 주변에 이런 일화를 말하면 안 믿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그런 상사가 세상에 어디 있냐고 도리어 핀잔을 주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진짜 존재한다. 운이 좋게 만날 수 있었고, 지금도 항상 감사하고 존경한다. 밥값을 계산하는 것은 아무나 가능한 일은 분명 아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항상 베풀며 살고 싶은 마음은 늘 갖고 있지만 당장 떠오르는 다음 달 카드 값을 생각하면 쉽게 카드가 지갑에서 나오지 않는다.
또한 자기 자랑이 전혀 없었다. 요즘 흔히 유행하는 “라떼는 말이야(나 때는 말이야)”라며 옛날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오로지 함께 공유할 수 있거나 상대방의 고민을 들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혹여 “어떻게 하면 일을 완벽하게 해낼 수 있었어요?”라는 질문을 던져도 “다 같이 일해주는 팀원들 덕분이지”라며 다른 사람에게 공을 돌렸다. 본인의 노력이나 실력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도움이 있었기에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만약 밥을 사며 자기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는 경우 상대방 입장에서는 사주는 것은 감사하지만 굳이 시간 낭비와 감정노동을 하면서까지 얻어먹고 싶어 하진 않는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내 돈으로 밥 사 먹고 편하게 먹는 게 훨 낫지’라고 생각하며 빨리 이 순간을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만 할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돈만 쓰고 상대방과는 오히려 멀어지는 경우가 종종 생길 수도 있다.
반면 얻어먹는 사람도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다. 직급이 높거나 나이가 많은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면 밥이나 커피를 사줄 것이라는 기대를 나도 모르게 할 때가 있다. 하지만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사주지 않는다고 서운해할 필요도 없고 사준다고 당연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어느 한 날 지인이 고민을 털어놓았다. 지인은 회사에서 연차가 쌓여 어느 정도 높은 직급을 맡고 있었다. 후배들의 고충을 듣기 위해 종종 식사하는데 항상 밥값이나 커피값을 계산할 순간이 오면 당연하다는 듯이 후배들이 계산대에서 밀물처럼 뒤로 빠진다는 것이다.
한 번, 두 번은 기분 좋게 살 수 있지만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유명한 영화 대사처럼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기분이 언짢다고 했다. 밥과 커피를 산다는 것은 상대방과 더욱 기분 좋게 시간을 보내기 위한 노력이자 배려이다. 이를 당연하게 느끼고 감사의 표시도 하지 않는다면 관계는 더욱 악화할 수밖에 없다.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하기 위해 돈을 쓰는 것도 맞지만 감사함을 모르는 사람에게 구태여 투자할 필요는 없다. 내 통장의 씀씀이 그리고 마음 씀씀이 두 가지를 전부 생각하면서 밥값을 계산하는 것이 더욱 좋은 방법이다. 직장인에게 점심시간이 굉장히 소중한 시간이다. 그만큼 소중한 사람들과 보내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원문: 김화초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