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히어로물인가?
‘히어로’는 영어로 영웅을 뜻하며, ‘물’이라는 단어는 왜국에서 보편적으로 쓰이기 시작해 건너온 이야기들 중 어떤 특정한 형태를 묶은 것이다. 그럼 영웅물인데… 보통 우리가 히어로물하면 떠 올리는 것은 일반적으로 바른 일 잘하고 건실한 바른생활맨(?)이 아니라, 째려보는 눈에서 광선이 나오며 발가락에 힘주면서 엉덩이를 뒤에서 앞으로 조절하면 하늘로 날아가는 정도의 간지는 나와주는 그런 모양새다.
즉 SuperHero , 케케묵은 영어사전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1917년 경 대중들이 더듬거리면서 쓰기 시작한 이래 1938년 슈퍼맨이 액션코믹스라는 만화잡지 컬러표지로 튀어나와 우리의 뇌리에 박힌, 보통사람을 훠얼씬 뛰어넘는 능력을 발휘해서, 역시 보통사람이 훠얼씬 감당하기 어려운 사고나 재앙 그리고 악당을 우리들로부터 막아주는 존재를 ‘슈퍼히어로’라고 일컫는다.
그리고 그런 슈퍼히어로가 만화책이든 극장영화이든 어떤 형태로든간에 남새스러운 복장으로 뛰고 날아다니면서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알흠다운 이야기를 히어로물이라고 우리는 인식하고 있다.
국내 대중문화에도 확실하게 자리매김한 슈퍼히어로시리즈들
이런 종류의 히어로물은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만화형태에서 본격적인 성장을 시작했다. 그 특성상 빠른 시간안에 전체 연령가 등급으로 유행할 수 있었기에 상업적으로 매우 벌이가 괜찮은 수익구조를 초기부터 선보여왔다. 그런 구조는 초기에는 단순해보이는 인물들이라도 곧 여러가지 다채로운 유형으로 파생되어 변덕이 은혁만난 아이유 팬들마냥 심한 대중들을 계속 붙잡아서 고정적이고도 고전적이고도 견고한 대중문화의 한 축을 이뤄내게 된다.
그 과정이 전개되는 중 북미에서는 DC (디지털카메라 인사이드가 아닌 디텍티브 코믹스의 약자)와 MARVEL 코믹스라는 양대 만화출판사를 통해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 그린랜턴, 플래쉬맨, 아쿠아맨 등이, 그리고 판타스틱포, 헐크, 스파이더맨, 엑스멘 등이 알려지게 됐다.
이들 슈퍼히어로물 만화책은 국내에 정식출간되기 어려운 우여곡절로 알음알음 빈약한 ‘묻지마번역’으로 번역만화시장을 오랜시간 채워왔다. 하지만 70년대말~80년대초에 리처드 도너가 연출한 슈퍼맨 영화시리즈의 정식개봉, 원더우먼 TV 시리즈의 안방극장 외화방영, ‘슈퍼특공대’라는 괴랄한 이름으로 방영되었던 Super Friends 시리즈 (아래 만화를 추억할 수 있는가!) 의 정성들여 만든 괴랄한 주제가판 방영에 이르기까지 영상매체들을 통해서는 꾸준하게 소개되어왔기에 지금의 스파이더맨이나 배트맨시리즈 그리고 어벤저스 등이 우리의 기억 속에도 제법 자리잡게 됐다.
히어로물의 새로운 패러다임과 고민들
주구장창 스타일이 바뀌지 않아서 그 음악이 그 음악 같았던 락음악이 80년대부터 불안하게 흔들리다가 90년대의 어느날 얼터너티브라는 새로운 조류로 다시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던 것에 감히 비견할 수 있듯이, 그 즈음에 히어로물도 새로운 갈등이 싹트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선악구도의 재분할이었다.
권선징악식의 이야기들이 오랜세월동안 변함없는 구도로만 쏟아져나오던 가운데 어느날부터 선은 과연 계속 선이었고 앞으로도 선이면서 그렇게 선이어야 하는지, 악은 원래부터 악이었고 이 세상 끝날때까지 악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어떻게 보면 단순하면서 근본적인 철학적인 질문이 이 시리즈에 쏟아지게 됐다.
히어로물을 만들던 이들은 자신들의 오랜 주인공을 그 질문 속에 과감하게 집어던졌다. 그 과정에서 어떤 영웅은 죽음을 맞이했고, 어떤 악당은 자신이 정말 세상에 해로운 존재일 뿐인지 진지하고 과격하게 되물어보게 된다. 2012년 현 시점에서도 이러한 양상은 이 오래되어 보이는 만화장르가 이제 우리의 사회를 본질적으로 은유하고 풍자하는 그 ‘시작’에 불과하다. 속칭 안티히어로의 전성시대가 오게 된 것.
샘레이미가 빚어낸 닥터 옥터퍼스는 인류의 발전을 위해 성실한 연구를 하였던 학자이며, 마크 웨이드와 짐크루거는 세상을 구하기 위해 고민하는 루터와 세상을 망가뜨리면서도 뭐가 잘못되어가는지 모르는 슈퍼맨을 보여주고 있다.
별다른 고민 없이 가장 단순하게 보여왔던 그들의 세계가 이제는 더 이상의 명확한 구분 없이, 아니 오히려 그런 명확한 구분의 시도가 가져오는 편견의 재앙에 대해서 여전히 비슷한 스타일로 그러나 뒤집어보면 훨씬 무겁고 둔중하게 모험담을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만화 속 주인공들 사이에는 엄청난 대혼란이 일어난 것처럼 보였지만 지금 이러한 만화를 받아들이는 독자들은 그들의 고민을 통해 훨씬 더 세상을 다채롭게 바라보게 됐다.
이런 긍정적인 면을 보면 이 또한 이야기문화와 더불어 대중의 인식이 그만큼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지고 있다는 뜻하기도 한다.
우리는 왜 이러한 시선을 되려 만화책이 아닌 현실의 정치세계에는 돌리지 못할까?
현실 정치세계는 유행이 끝난 빛바랜 고전만화보다 유독 대중의 편견이 심하다.
이제 2013년 대한민국의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날이 바로 코 앞으로 다가왔다. 이 날을 위해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두 정당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국민의 표를 향해 손을 내밀며 많은 몸부림을 쳐왔다.
언제부터 네거티브라는 영어단어가 마치 처음부터 우리말이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쓰여왔는지 모르겠지만 서로가 서로를 향해 네거티브라고 손가락질을 하는 양상에는 곧 ‘나는 선이요, 너는 악이로다’라는 강력한 이분법이 자리잡혀 있다.
그리고 우리 대중은 그 이분법에 서슴치 않고 뛰어들어 꼬꼬마에서부터 어르신에 이르기까지 누가 악당이고 누가 나라를 구할 영웅인지를 분간해낸다. 그 구분에 따르지 않는데에서 촉발하는 갈등이란, 같은 지붕 직계가족이라도 밥먹던 숟가락을 던질정도의 풍파는 가정파탄이라는 축에 끼지도 못할 정도의 일상성을 구가할 정도이다.
– 저 놈이 정책을 저렇게 펴는 이유는 저 놈이 사악해서지 멍청해서가 아니다.
– 저 분이 정책을 저렇게 펴는 이유는 똑똑해서가 아니라 마음이 착해서이다.
…라는 식의 논리를 정책입안자에서부터 그 정책의 영향을 직접 받는 유권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분법적인 구분에 정신이 없는 것이 2012년 12월 우리들의 모습이다.
만화 속에서도 이미 십수년 전 시작된 선악의 구분선 붕괴로 인해 더 풍요로워진 재미와 흥행을 먼나라 이웃나라처럼 여기지 말고 서로가 서로에게 잘한 것과 잘못한 것, 멍청한 실수와 계산된 공약을 지적하며 돌아보는 정치인들을 이 나라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것은 바로 우리의 수준이 아직 히어로물 만화책 감상보다도 더 덜떨어진 상태를 정치판에 한해서 갖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은 그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게 되어있다는 말은, 자신과 반대방향으로 표를 던지는 사람이 수구꼴통이라서, 빨갱이라서, 좌좀이라서, 일베충이라서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간단한 사실을 깨닫고 서로 웃으면서 다양한 정치를 이야기할 수 있게 될 때 우리는 적어도 발전한 슈퍼히어로만화유행에 맞는 정치판, 선거판을 그나마 갖게 될지 않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