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느낀 생생한 감정과 그때의 그 또렷한 감각을 구구절절 말로 열심히 떠든다고 한들 잘 선별된 사진 또는 그림 한 장이 지닌 그 어마어마한 설명력에 비할 수 있을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기 위해 좋아하는 브랜드나 공간, 물건, 서비스를 예쁘게 찍어 주변 사람들에게 전송하거나 부러 직접 보여준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또 온라인을 돌아다니다가 느낌이 확 오는 이미지를 발견하고 그것을 저장해 스마트폰의 배경 화면으로 설정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취향’의 힘을 아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또 의식하진 못해도 일상 속에서 ‘편집’을 실천하며 삶을 살아갈지 모른다.
자, 당장 인스타그램에 입장해보자. 그곳에서 만나볼 수 있는 사진을 크게 분류하면 두 가지로 추려질 것이다. 첫째, 계정의 주인이 잘 선별하고 편집하여 예쁘게 포장한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는 사진. 둘째, 그저 자신의 시간과 공간과 생각을 있는 그대로 담아 던지는 정직한 사진.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전자의 경우, 주인이 직접 올린 수많은 포스팅 속에서 그의 얼굴을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자신이 입은 티셔츠나 청바지, 신발을 무심하게 찍어 올린 조금은 연출이 가미된 사진이 넘쳐난다. 반면 후자의 경우, 계정 주인의 셀카가 이틀에 한 번꼴로 수시로 올라온다. 정말로 무심한 사람들이다.
이제 소셜 미디어 플랫폼의 성공은 자신의 고집스러운 ‘취향’을 얼마만큼이나 정갈하고 매력적으로 잘 드러내느냐, 또 자기 자신이 확보한 인간적인 매력과 분위기를 얼마나 잘 살려내느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유는 간단한데, 구글과 유튜브 덕택으로 이제는 누구나 다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이 되었기 때문이다. 내 학부 전공인 광고학의 전공 서적이 공통적으로 지겹게 떠들곤 하던 다음과 같은 클리셰는 사실 그 어떤 조건에 대입해도 자연스럽고, 심지어 옳기까지 하다.
상품과 서비스의 수준이 모두 비슷해진 현재의 비즈니스 환경 속에서 제품과 서비스의 차별적인 기능과 편익을 드러내려는 광고는 더 이상 효과적이지 않다.
그렇다. 그러한 연유로 우리는 ‘감성’에 매달린다. 존경하던 전공 교수님 한 분은 너무 감성만 찾는 건 철학의 빈곤을 드러낼 뿐이라며 큰 소리를 내곤 하셨는데, 죄송하지만 이제는 정말이지 일관된 ‘감성’과 ‘취향’의 연속 그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로 기능하는 시대가 왔다. 그것이 상품이든 서비스든 사진이든 영상이든 그것을 둘러싼 분위기와 감성을 껍데기로, 실제적 기능과 본연의 철학을 알맹이로 설정하는 이항대립은 구시대적이다. 이제 감성은 껍데기이면서 동시에 알맹이다.
JJJ자운드 JJJJound
여기 이름부터 심상치 않은 JJJ자운드(JJJJound)라는 브랜드가 있다. 패션 브랜드이자 디자인 스튜디오이자 개인의 이미지 아카이브이자 크리에이터들이 뛰어노는 영감의 놀이터이자 블로그이자 잡동사니 창고이자 취향의 공간이자 편집숍이다. JJJ자운드를 하나의 개념으로 쉽게 규정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느낌 있고 감성 충만한 심플한 사진들을 의식의 흐름에 따라 맥락 없이 주욱 늘어놓던 개인 블로그에서 유명 아티스트와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보물 창고가 되어 ‘취향’과 ‘편집’의 힘이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주는 JJJ자운드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귀감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퍼스널 블로그에서 취향과 영감의 공간으로
JJJ자운드는 캐나다 몬트리올 출신의 1982년생 프리랜스 그래픽 디자이너 저스틴 선더스(Justin Saunders)가 자신에게 영감을 불어넣고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2006년부터 자신의 블로그 사이트에 자신의 취향에 맞는 사진을 하나하나 올려 쌓아 두던 일종의 온라인 이미지 아카이브였다.
사진을 설명하는 제목도 없이, 소개 글도 없이, 어떤 규칙도 없이 랜덤으로 올라오는 느낌 있는 사진들의 향연. 실상 별것 없는 개인의 이미지 아카이빙 블로그. 그것이 JJJ자운드의 조용한 시작점이었다. 마음을 움직이는 사진을 컴퓨터 데스크톱에 저장해 두고 적절한 때에 그저 자신의 사이트에 스윽 올리면 끝이었다.
선더스에게 이 작업은 하나의 숙제와도 같았고 그는 자신의 스크랩북을 공유한다는 생각으로 사진을 차곡차곡 쌓아갔다. 스스로 영감을 불어넣기 위한 이미지 레퍼런스 아카이브를 구축한다는 단순한 동기. 하지만 선더스는 블로그 포맷을 택하는 대신 ‘글’을 전부 없애버리는 전략을 택하고 오직 ‘이미지’만을 이용해 자신의 온 에너지를 쏟아부어 그의 취향을 담은 하나의 작은 세계를 구축한다.
글 하나 없이 오직 이미지만이 무차별적으로 나열된 그의 블로그는 완전히 새로운 콘셉트였고 사람들은 곧 그의 블로그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여기저기서 날아드는 이메일, ‘그런데 당신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너드 기질로 집에서 영화나 보고 그림이나 그리던 선더스는 그렇게 자신의 이미지 아카이빙 블로그를 통해 ‘취향의 신’이 되어 오프화이트의 버질 아블로, 래퍼 카녜이 웨스트, 반스, 리복 등과 협업을 진행하는 거물 인싸가 된다.
수줍고 내성적이고 걱정이 많은 저에겐 인터넷이 딱 맞아요. 전부 인터넷을 통해 만났어요.
선더스는 텀블러를 위시로 한 블로그 플랫폼과 발달한 온라인 환경 그 자체에 무한한 애정을 품는다.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것, 또 자신이 앞으로 둘러싸여 살고 싶은 걸 하나하나 나열하며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고, 인터넷 세상이 도래하면서 더는 ‘타이틀’이 중요하지 않은 시대가 찾아왔다는 것이다. 모두가 어떤 정보라도 손쉽게 얻을 수 있는 현실에서 우리는 그 무엇이든 잘 알고, 잘할 수 있는 똑똑한 사람들이 되었ㄱ기 때문이다.
텀블러나 핀터레스트, 인스타그램은 우리에게 손쉽게 비주얼 오피니언을 공유하도록 도와줘요.
디자인 스튜디오로 진화하다
인테리어, 자동차, 여성, 패션 등을 아우르는 쿨하고 감각적인 사진들을 기반으로 고급진 ‘취향’의 맛을 선물해 온 JJJ자운드는 결국 몬트리올을 거점으로 하는 크리에이티브 디자인 스튜디오로 발전한다. 유명 기업과 아티스트, 셀럽 등과 함께 과제를 해결하면서 하나의 작품을 탄생시키는 식이다. 마치 아카데믹 리서치 팀처럼 좋은 디자인과 가치를 심도 있게 논하고 대화를 통해 프로젝트로 발전시키는 하나의 랩이 된 것이다.
미국 힙합 씬의 실험적인 천재 아티스트이자 전 세계적인 문화의 아이콘 래퍼 카녜이 웨스트는 JJJ자운드의 블로그 속 이미지를 통해 예술에 관한 JJJ자운드의 고집스러운 관점과 쿨하고 심미적이며 심플한 취향에 푹 빠진다.
이거 JJJ자운드가 공인한 거야?
- 카녜이 웨스트
그의 이런 멘트는 10여 년간 블로그에 이미지를 쌓으며 비주얼 오피니언으로 하나의 취향 세계를 구축한 블로거 저스틴 선더스라는 인물이 만든 새로운 종류의 영향력을 가늠하게 한다.
JJJ자운드 속 저스틴 선더스라는 개인
저스틴 선더스는 1982년 몬트리올에서 태어났다. 그의 일상은 생각보다 규격화되어 있다. ‘888 어프로치(888 Approach)’를 늘 이야기하며 8시간의 업무, 8시간의 놀이, 8시간의 수면이라는 개인의 사이클을 지켜나가고, 밸런스 있는 삶을 가꾸어 나간다. 또한 소박하고 조용하며 잔잔한 라이프스타일을 가졌다.
블랙진과 청바지, 크루넥 티셔츠 등을 즐겨 입고 명상을 즐기며 패션 디자이너를 비롯한 유명인들과 함께 엮이지만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어느 정도의 거리감을 유지한 채 몬트리올에 위치한 자신의 작업실이라는 통제된 환경 속에서 자신만의 프로젝트를 이어 나간다. 그는 자신을 ‘실용적인 사람’이라 참칭한다. 집은 베이직 아이템으로 이루어져 간소하며, 그의 스튜디오는 오래된 커피 머신, 1970년대 크루넥 티셔츠 등 시간을 먹은 오브제로 가득하다.
어린 시절부터 무언가를 모으기를 좋아했다던 그의 개인적 경험은 자신의 취향이 묻은 이미지를 모아 자신의 웹 사이트에 전시하는 일에 몰두하게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선더스가 그렇게 성실하게 쌓아 올린 10여 년의 노력은 일개 개인의 이미지 아카이빙 블로그를 이 시대의 가장 화려한 인물들이 열광하는 디자인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로 발전하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크고 화려한 이미지보다는 개인이 운영하는 작은 블로그나 웹 사이트에서 개인적이고 작은 이야기를 담은 이미지를 찾아내는 걸 더 좋아하는 그는 어쩌면 개인의 소소하지만 심미적인 취향이 하나의 브랜드이자 비즈니스로 기능하는 이 시대에 가장 적합한 인물일지도 모른다.
취향, 큐레이션 그리고 개인
‘취향’ ‘큐레이션’ 그리고 ‘개인’이라는 키워드는 수직적으로 제한적이던 과거의 라이프 스타일에서 앞으로 펼쳐질 수평적으로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시대적 부름에 가장 똑똑한 대응책이 될 것이다.
선더스는 2006년부터 텀블러(Tumblr)와 핀터레스트(Pinterest)의 시대를 앞서 살며 비주얼 오피니언과 축적된 취향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그저 자신의 취향에 맞는 이미지를 모으고 블로그에 마구 전시했을 뿐이다. 그것이 전부다. 늘 느끼지만 이 세상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단순한 곳일지도 모른다.
원문: 스눕피의 브런치
참고
- 「How JJJJound Went From Tumblr Sensation to Real Life Design Studio」, GQ
- 「JJJJound」, Saturdays NYC
- 「Kanye West’s Favorite Tastemaker Talks About His New Vans Collab」, GQ
- 「Making Taste」, Interview Magazine
- 「What The Fuck is JJJJound?」, Newspread
- 「Montreal Style – Justin R. Saunders of JJJJound」, hearty magazine
- 「Kanye West: Free Form」, SURFACE
- 「Victory Sportswear x JJJJound Trail Runner Sneakers」, Heddels
- 「A Guide to Who Went to Kanye’s Birthday Party」, Vulture
- 「Archives of Dope: An Interview With Justin Saunders of JJJJound」, PSF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