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위에는 공교롭게도 자기 분야에서 꽤 성취를 거두어 명망이나 인기를 얻은 사람들이 제법 있는데, 그중 상당수는 그렇지 않았던 시절부터 봐왔던 사람들이다. 대개 그들이 자기 분야에서 나름대로 성취를 거둔 과정을 보면 대단한 재능으로 앞서갔다기보다는 남이 하지 않은 모험을 하고, 자신이 동경하는 것에 충실했으며, 무엇보다 깊은 열망으로 꾸준히 시간을 투여한 사람들이 아니었나 싶다.
특히 모험, 동경, 꾸준함, 이 세 가지는 그들 모두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그들은 뒤가 없다는 듯이 자기 삶을 자기가 동경하는 것을 향해 내던질 만큼의 용기 혹은 결단이 있었다. 그리고 그를 향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했고, 계속 세상에 자기의 존재를 알리고자 했으며, 또 어디로든 다니며 배우고 흡입하려 했다.
모험, 동경, 꾸준함 중 하나라도 없었던 사람은 적어도 자기가 꿈꾸던 분야에는 이렇다 할 성취를 얻지 못한 채 사라졌다. 아마 그들 나름대로 자기에게 어울리는 삶을 찾아갔겠지만, 애초의 꿈과는 멀어진 곳에서 자기의 자리랄 것을 얻는 듯 보였다. 나 같은 경우만 하더라도, 모험, 동경, 꾸준함 중에서 모험심이랄 게 다소 부족한 데가 있었다.
나는 스스로 모험할 만한 인간이 못 된다는 걸 오래전부터 알았는데, 아마도 그 부족한 모험심이 여러모로 내 발목을 잡곤 했을 것이다. 아마도 내가 거둔 약간의 성취라는 것은, 딱 내가 했던 모험만큼의 보상이 아니었나 싶다. 어쨌든 나 또한 삶의 적지 않은 시간을 유예해가면서 동경하는 것에 꾸준히 다가서려 했고, 그렇게 누적되는 시간이 그저 내 삶의 다소 미약한 기반이나마 되어주었다고 믿는다.
사실 아직 무언가를 성취하기가 어려운 20대 시절에는 주위 사람들이 애쓰는 것들이 어딘지 우스워 보이기도 하고 비웃고 싶기도 하다. 나 자신이 애쓰는 것도 초라하게 느껴지고, 과연 의미가 있을지 불안하기도 하다.
보는 사람도 얼마 없는데 열심히 자기가 노래하는 걸 찍어서 유튜브에 올리는 사람이라든지, 읽는 사람도 없는데 열심히 글을 쓰는 사람이라든지, 투자도 잘 받지 못하면서 스타트업을 하겠다고 끙끙대는 사람. 그들이 왠지 허황한 꿈을 꾸는 것 같고 가망 없이 먼 길을 가는 것처럼도 보인다. 그런데 그 의미 없어 보이는 일을, 스스로의 초라함을 이겨내며 5년, 10년, 15년씩 하는 사람들만이 결국에는 자기 분야에서 자기만의 무언가를 가지는 사람이 된다.
학창 시절 교실에서 공책에 만화를 끼적거리던 친구가 10년쯤 뒤에는 유명한 만화가가 되어 있거나, 아무도 들어주지 않던 기타를 연주하던 친구가 어느 날 앨범을 냈거나, 혼자 블로그에 매일 이상한 글이나 쓰던 친구가 등단하고 책을 냈다는 걸 알게 되면 기분이 이상한 데가 있다.
그때만 하더라도 그저 초심자라고 할 법한 연습생들이 어느덧 프로가 되어 있는데, 그 세월의 격차라는 게 어딘지 낯설기만 한 것이다. 그런데 삶이라는 건 원래 그렇게 어설픈 나날들, 우습고 비웃어주고 싶은 시간들, 스스로도 확신 없는 불안으로 쌓아간 순간들이 만들어내는 무엇이 맞을 것이다.
꼭 삶을 걸고 모험을 하고, 그래서 동경하던 것에 다가서고, 최초의 꿈을 이루었다고 할 법한 삶만이 좋은 삶이라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 과정에서 잃는 것이 더 많은 것 같은 삶도 더러 보았다. 그럼에도 자기가 꿈꾸던 것에 남들이 하지 않는 모험을 하면서 착실히 다가간 사람들을 볼 때면, 그 용기와 힘이 멋지고 아름다워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만약 정말이지 간절하게 동경하는 어떤 삶이 있다면, 그곳을 향한 남다른 고집을 부려보는 삶도 나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아는 한 그렇게 꿈에 다가간 모든 사람은, 확실히 남들과 다르게 살았고, 더 모험했으며, 자기 꿈을 향한 집착을 잃지 않았다. 세상에는 그런 삶의 방식이라는 게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원문: 문화평론가 정지우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