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학 시절부터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되었던 크래프트 맥주에 대한 관심이 홈브루잉으로 이어졌고, 이제는 주말이면 이태원의 펍들에서 살다 시피하는 이른바 ‘맥덕’이다.
맥주 산업 역시 산업적으로 굉장히 다이나믹한 산업이다. 수십년 동안 과점 구도였던 맥주 시장이 점점 변화하고 있고, 2년 전부터 이태원의 몇몇 펍에서부터 불기 시작한 크래프트 맥주 바람이 이제는 홍대, 강남, 서래마을, 부산 해운대 등까지 퍼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태원 외부로 크래프트 맥주의 바람이 퍼지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대한민국 크래프트 맥주의 메카는 이태원이다. 지난 금요일 저녁에 우리 회사 동료 15명 정도를 데리고 이태원 펍 크롤 (펍 순례)를 돌았는데, 반응이 뜨거웠다. 그 코스를 소개하면서 우리나라 크래프트 맥주 이야기를 좀 해보고자 한다.
참고로 아래 소개한 곳들은 모두 자체적으로 개발된 레시피로 만든 맥주가 있는 곳이다. 몇몇 곳들은 유통도 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자기들이 원조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맥주를 판매하는 곳이다. 요즘 크래프트 맥주 중에는 같은 곳에서 생산하는 맥주를 다른 이름으로 판매하는 이른바 “리브랜딩”하는 곳들이 많다. 크래프트 맥주가 유행이라고 해서 마셔봤는데, 맛이 다 똑같더라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이는 바로 리브랜딩 맥주를 마셨기 때문이다. 즉, 다 같은 맥주였고, 이름만 바꿔서 부른 것.
하지만 아래 소개하는 곳은 모두 자신들만의 오리지널 레시피로 만드는 곳임을 밝혀둔다.
출발
출발점은 경리단 입구에서 남산 3호 터널쪽으로 올라가면 있는 육교가 적절하다.
1. 맥파이 브루잉 Magpie Brewing
경리단 입구 육교 있는 골목 안쪽으로 10발자국 들어가면 외국인들이 맥주 컵을 들고 득시글 거리는 곳이 보인다면 바로 그곳이다.
사실 모든 것은 맥파이에서 시작되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크래프트 맥주의 성지 이곳은, 아쉽게도 한국 사람들이 하는 곳은 아니다. 캐나다인과 미국인 홈브루어 4명의 동업으로 시작되었다.필자가 2012년 한국에 돌아왔을 때만 해도 제대로 된 맥주를 마실 수 있는 곳은 이곳 뿐이었고, 사실 지금 알고 지내는 많은 사람들이 맥파이 바에서 혼자 술을 마시다가 알게 된 사람들이다.
한마디로 여기가 그라운드 제로 (ground zero)라고 할 수 있다. 페일에일, 포터, 엠버에일이 있고, 페일에일 추천.
2. 더 부스 The Booth
맥파이에서 10발자국 더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된다.
맥파이 바로 옆에 문을 연 더 부스는 ‘한국맥주가 북한의 대동강 맥주보다 맛이 없다’라는 기사 하나로 한국의 맥주 생태계를 뒤바꾼 전직 이코노미스트 기자 다니엘 튜더가 공동 창업한 곳이다. 사람들은 한국 맥주에 대해서 그렇게 자신있게 ‘깠던’ 다니엘이 차린 곳이라면 얼마나 맛있는지 관심을 갖고 가게 되었고, 현재 더 부스는 강남, 이태원 해밀턴 호텔 뒷편, 해운대, 삼성동 등 6군데 이상의 점포를 거느린 크래프트 맥주 업계의 ‘큰손’ 이 되었다.
다니엘 튜더는 그 이후 이코노미스트를 그만두었는데, 사실 많은 사람들이 다니엘이 한국 맥주에 불만을 품고 회사를 그만두고 맥주집을 차려서 부자가 되었다고 생각 하지만, 사실 그 사건들의 연관관계는 그리 크지 않다고… Bill’s Pale Ale 추천.
3. 크래프트 웍스 Craftworks
맥파이/부스 골목을 나와서 이태원쪽으로 가다가 나오는 보라색 밀크 쉐이크 집이 나오면 왼쪽을 주시하라. 안쪽으로 입구가 살짝 들어가 있어서 주의하지 않으면 못 찾을 수 있다.
맥파이와 한국 크래프트 맥주의 원조를 다투는 곳이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맥파이보다 좀 뒤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곳이다. 외국인 홈브루어들이 주인인 이곳은 그들 커뮤니티에서는 꽤 유명한 곳이긴 하다. 나는 꼭 갈 일이 있지 않으면 가지 않기 때문에 이번 펍 크롤에서 생략했던 곳이나, 그래도 자체 맥주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소개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흥미로운 점은 더 부스의 Bill’s Ale 을 만든 빌이라는 사람이 북한산 페일에일을 레시피 공모로 제공해 준 곳이기도 하다. 사실 Bill은 내가 보기에는 국내에 존재하는 최고의 홈브루어인데, 너무 착해서 탓. 북한산 페일에일, 지리산 IPA 추천.
4. Made in 퐁당
크래프트 웍스를 나와서 경리단 입구쪽으로 건널목을 건너자. 유명한 츄로스 가게가 나오면 뒤를 돌아보라. 2층에 Made in 퐁당이 있다.
용산에 세계맥주 가게로 처음 문을 열었던 퐁당은 신사동 가로수길 점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크래프트 맥주 펍으로 거듭나더니 급기야 올해 초, 이태원에 진출하면서 자체 맥주까지 소개하기 시작했다. 퐁당은 사실 신사점이 좀 더 넓고 쾌적하고, 분위기도 좋긴 하지만 이태원 펍 크롤을 한다면 한번쯤 들러 볼 만한 곳임에는 분명하다. 특히 위치가 아주 기가 막히게 좋은데, 경리단에서 이태원쪽으로 넘어가는 가교 역할도 하는 곳이다. 모자이크 에일 추천.
5. 로비본드 Lovibond
녹사평역 근처, 이태원 입구쪽으로 가서 길을 건너면 맥도날드와 스타벅스가 있다. 그 오른쪽을 살짝 보면 그리스 레스토랑 산토리니가 있고, 그 건물 지하 1층에 있다.
가장 최근에 오픈한 펍 (2014년 5월 현재)이며, 비어포럼 운영진 중에 한명인 이인호 사장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곳이다. 아직까지 한국의 크래프트 맥주 펍들에는 제대로 된 안주나 페어링 같은 것들이 잘 되어 있지 않은데, 로비본드는 피자, 미국식 팟 pot 요리, 그리고 맥주에 맞춤된 감자튀김 소스 등이 나온다. 술도 훌륭한데, 열대 과일 향이 나는 트로피칼 에일과 에스프레소 향이 나는 포터 2종 모두 좋다.
약간은 미국 서부나 영국식 정통 펍이나 몰트 하우스에 온 느낌을 주는 인테리어다. 로비본드라는 이름은 맥주 전문 용어인데, 이인호 사장이 워낙 홈브루잉에 달인이라서 생각해 낸 이름이다. 맥주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재료인 몰트는 색 단위를 10L, 30L, 40L, 60L과 같이 표현하는데, L이 바로 Lovibond의 약자. (높을수록 진한 색을 나타낸다) 2014년 주류박람회에서 호평을 받았던 포터 추천.
6. 사계 Four Seasons
로비본드에서 나와서 해밀턴 호텔 쪽으로 올라가다가 오른쪽으로 나는 골목으로 들어가라. 예전 바토스 자리를 지나서 쭉 올라가다보면 JR펍이 나오고 그 건너편 건물 지하 1층에 사계가 수줍게 자리하고 있다.
대부분의 크래프트 맥주 펍이 외국인들에 의해서 주도되고 있다면 토종 홈브루어들의 대응이 바로 사계라고 할 수 있다. 사계는 우리나라 크래프트 맥주에 대한 담론을 이끄는 비어포럼의 운영진 5인방이 운영하는 곳이며, 맥주 이름을 노을, 미리내, 개나리 와 같이 모두 한글로 짓는 것으로 유명하다. 일본식의 가스트로 펍 분위기와 유사한 독특한 인테리어를 가지고 있으며, 간단하게 요기할 수 있는 안주들이 준비되어 있다. 직접 작성하는 레시피로 만든 맥주들이 시즌마다 계속 바뀌기 때문에 가끔 가주지 않으면 금새 이 곳의 트랜드를 놓칠 수도 있다. 코코넛 향이 듬뿍 나는 미리내 포터 추천.
7. 라일리스 탭 하우스 Reiley’s Tap House
사계에서 나와서 해밀턴 호텔 쪽으로 길을 건너자. 오른쪽으로 좀 가다보면 스무디 킹이 나오는데 그 건물 3층이다. 이곳이 바로 펍 크롤의 종착지이다.
이태원이라면 역시 이국적인 분위기, 외국인들이 북적거리는 가게 안의 분위기, 펍이나 레스토랑의 직원들도 몇명은 외국인으로 구성될 것 같은 느낌일 것이다. 바로 이런 것을 원한다면 라일리스에 꼭 가야 한다. 이태원에서 가장 많은 20여 종의 탭 (드래프트) 맥주를 가지고 있고, 자체 제작한 제주 IPA와 서울 스위트 스타우트 Seoul Sweet Stout 를 보유하고 있으며, 다양한 병맥주도 가지고 있다.
안주들도 괜찮은 편이긴 한데, 가격은 아주 착하진 않다. 개인적으로는 서울 스윗 스타우트 추천, 하지만 맥덕이 아닌 일반인들은 제주IPA를 더 좋아하긴 한다.
나가며…
위에 소개한 7군데에서 한잔씩만 마셔도 7잔의 맥주이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여러 사람이 가서 사람 숫자보다는 적은 맥주를 시킨 다음에 나워서 마실 것을 권한다. 크래프트 맥주 업체들은 착해서 그런지 잔을 넉넉하게 달라고 하면 알아서 잘 해 주는 것 같다. 위에 소개한 코스를 거꾸로 역행해도 아무 문제 없다. 나의 경우에는 7시에 시작해서 11시 정도에는 끝이 났는데, 데려갔던 모든 사람들이 엄청나게 만족스러워해서 기뻤다.
아직까지 한국의 크래프트 맥주 업계는 서로서로 다 같이 친구인 편이다. 위에 소개한 업체중에 한두군데를 제외하면, 오너들이 홈브루잉을 위해서 가끔 만나서 맥주를 만들던 곳이며, 여전히 굉장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저마다 각자의 색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각 펍마다의 색깔이 전혀 다르고, 그 특징들이 맥주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맥주 마시기 좋은 날씨가 오고 있다.
원문: MBA Blog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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