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생이 개복치인 나는 늘 뭔가 새로운 시작할 때면 설렘보다 두려움이 먼저 앞섰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도,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도, 하다못해 난생처음 보는 음식 앞에서도 잔뜩 긴장하고 경계했다. 잘 해내지 못하면 어쩌지? 나랑 잘 맞지 않으면 어쩌지? 걱정이 먼저 밀려왔다. 잘 해내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이 과해서 잘하지 못할 것 같으면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게 모순적이고 편협한 생각으로 청춘의 날들을 보냈다. 편협한 생각은 편협한 관계를 만들고, 편협한 관계는 편협한 인생을 만들었다. 겁을 잔뜩 먹고 나와 잘 맞지 않는다고 섣부르게 판단하고 도장을 찍고 선을 그어버렸다. 만나던 사람들과 늘 만나던 곳에서 만나 늘 하던 얘기만 했다. 몸도 마음도 편했지만 점점 나는 정체되고 있었다.
정적인 나를 바꾼 건 단연코 ‘여행’이었다. 낯선 곳에 가면 매일매일 새로움과 마주해야 했다. 한국의 일상에서라면 눈 감고도 할 일들을 여행지에서는 이제 막 세상살이를 배우는 3살짜리 아이가 되어 뭐든 겨우겨우 해냈다. 아이처럼 옹알이하듯 현지어를 해야 했고, 더듬더듬 현지어 메뉴판을 읽어 음식을 주문하고, 지하철 표를 어렵게 사 들고도 어디에 넣어야 할지 몰라 개찰구 앞에서 우왕좌왕했다.
평소 일상의 나라면 왜 겨우 이런 일로 헤맬까? 자책했을 테지만, 여행자인 나는 달랐다. 낯선 곳에 떨어져 처음 해보는 일이니 당연히 서툴고 어설플 수밖에 없다는 걸 인정한다. 여행에서 그런 마음으로 나를 대하는 연습하고 일상으로 돌아오니 ‘잘’해야 한다는 마음보다 무사히 ‘마치’는 것에 무게 중심을 두고 살기 시작했다.
크게 보면 사람은 모두 각자 인생이라는 ‘긴 여행’을 한다. 그래서 이번 생은 처음이라 뭐든 서툴 수밖에 없다. 잘해야겠다는 강박, 잘 해내겠다는 마음은 욕심을 버리고 뭐라도 시작해서 끝마치는 것을 목표로 두었다. 원래 나라는 인간의 성향이라면 시도조차 하지 않을 일을 하나둘 해보기 시작했다.
지독한 고소공포증이 있지만 눈을 꾹 감고 출렁다리를 건넜다. 합격보다 떨어질 확률이 높은 공모전에 과감히 도전했다. 무례하게 선을 넘는 사람을 (심장은 쿵쾅거렸지만) 팩트로 자근자근 밟아줬다. 비주얼도, 향도 내 취향이 아니지만 얼마 전 난생처음 과메기를 먹어봤다.
누군가가 보기엔 겨우 코웃음이 나오는 대단한 일도 아닐 테지만, 나에겐 큰 용기이자 도전의 결과였다. 그 결과에 내가 잘했는지 평가하기보다 내가 시도를 하고 하나의 결과를 얻었다는 데 큰 의의를 뒀다. 덕분에 나는 출렁다리를 건너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되었고, 과메기를 먹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이렇게 쌓인 크고 작은 경험들은 나를 좀 더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그 경험들은 다음의 새로운 경험 앞에서 망설이고 주춤 거리는 시간이 서서히 줄여줄 것이다. 결국 소중한 내 인생의 1분 1초가 망설임이 아닌 자신감과 성취감으로 채워져 가는 중이다.
원문: 호사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