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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대체로 익숙한 풍경과 사물들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때로 우리는 우리를 낯설고 불편하게 하는 말, 생각, 경험, 사태 속에서 예상치 못한 교육적 성취에 다다른다.
나는 광주의 도덕 교사 배이상헌이 중학교 도덕 시간에 프랑스 단편영화 〈억압받는 다수〉를 보여준 생각의 밑바탕에 이런 시선이 깔려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배이 선생님은 직위해제 상태에서 검찰 조사를 받는 처지가 되었다. 일부 학생이 이 영화를 보고 ‘불편함’을 느껴 민원을 제기하자 광주교육청이 직위해제와 수사의뢰 조치를 내렸기 때문이다.
교육청의 논리는 간단했다. 배이 선생님의 행위는 ‘성비위’와 관련되며, 성적인 측면에서 학생을 ‘불편하게’ 했으니 아동 보호 차원에서 일련의 조치를 내린 것이다. 우리는 즉각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든다. 학생이 느끼는 ‘불편함’을 누가 어떻게 판별해야 할까.
어떤 학생이 “00 교사의 이러저러한 말과 행동이 나를 불편하게 했다”라고 말했다고 하자. 그 말 자체가 학생의 불편함을 나타내는 근거가 될 수 있을까. 광주교육청은 배이상헌 교사 사태 이후 학생의 불편함(이라는 말)을 절대시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왔다. 학생이 느끼는 불편함은 반문이나 문제제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는가.
학생의 불편함이 학교와 행정 당국이 교사에게 수업배제나 직위해제 조치를 내리는 데 하나의 강력한 근거가 될 수 있다면, 교사는 자신의 말이나 행동 하나하나를 엄격하게 검열함으로써 학생들에게 낯섦과 불편함을 최소화하는 교육활동을 설계하는 데 집중할 것이다. 나는 이런 교실에서 결코 ‘좋은 교육’이 이루어지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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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가 쓴 『나쁜 교육』을 보면 배이 선생님 사태가 예언하듯 보여주는 우리 교육의 묵시록적 미래가, 1995년 이후 출생한 ‘i세대(iGen)’의 불안증과 이들을 포박하는 안전주의 문제, 그리고 최근 미국 사회 전체를 거세게 휩쓰는 ‘대단한 비진실(Great Untruth)’ 3가지를 통해 파노라마 펼쳐지듯 눈 앞에 펼쳐진다. 하이트가 내세운 비진실 3가지는 다음과 같다.
- 유약함의 비진실: 죽지 않을 만큼 고된 일은 우리를 더 약해지게 한다.
- 감정적 추론의 비진실: 늘 너의 느낌을 믿어라.
- ‘우리 대 그들’의 비진실: 삶은 선한 사람들과 악한 사람들 사이의 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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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1부는 이들 3가지 비진실의 실체를 하나씩 다룬다. 가령 유약함의 비진실은 안전주의가 널리 퍼지면서 사람들 가슴을 파고든다. 안전주의란 안전이 신성한 가치로 군림하는 믿음 체계다. 안전주의 교육에 따르면 교사와 부모는 상상 가능한 모든 위험에서 아이들을 지켜주면서 아이들이 ‘감정적으로 안전한’ 상태에 머물러야 한다. 아이들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을까.
땅콩 알레르기가 있는 8살 미만의 아이들이 1990년대 중반 1,000명당 4명에 불과했다가 2008년 14명에 이르게 된 것은 땅콩 때문이 아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1990년대에 부모와 교사들이 아이들을 어떻게든 땅콩에 노출하지 않으려 안전하게 ‘보호’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땅콩 함유 제품을 유아기부터 정기적으로 먹이면 알레르기성 면역 반응 대신 보호성 면역 반응을 끌어낼 것이다.”
안전주의는 안전이라는 말의 개념적 확장(concept creep)을 불러왔다. 안전이 물리적 측면에서뿐 아니라 감정적 측면에서도 규정되는 것. 앞으로 진행될 수업 내용이 학생들에게 꽤 고역일 수 있음을 교수가 학생들에게 말이나 글로 미리 고지하는 ‘트리거 워닝(trigger warning)’이 퍼지는 것도 안전주의가 가져온 현상이다.
감정적 추론과 ‘우리 대 그들’의 비진실은 미세공격, 정체성 정치 들의 항목을 통해 드러난다. 미세공격은 일상에서 다반사로 일어나는 언어적, 행동적, 환경적 차원의 멸시다. 애초 유색인종을 대상으로 쓰인 이 말이 광범위하게 쓰이면서 비의도적인 무례에까지 적용되게 되었다.
미세공격 확대판을 옹호하는 이들은 ‘의도’보다 ‘영향’을 중시한다. 의도와 영향 중 어떤 것이 더 중요한지 명확하게 답을 내리기는 힘들 것 같다. 다만 의도보다 영향을 중시하는 분위기 아래서 ‘불편한 배움’은 이루어지기 힘들 것이다. 교육의 목적이 사람들을 단지 편하게 만드는 데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논란이 불필요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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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2부와 제3부에서는 비진실이 현실에서 작동할 때 벌어지는 일들을 ‘협박과 폭력’, ‘마녀사냥’의 관점에서 정리한 뒤 비진실을 만들고 키운 정치 사회적 배경을 6가지 차원에서 분석했다. ‘양극화 사이클’, ‘불안증과 우울증’, ‘편집증과 양육’, ‘놀이의 쇠퇴’, ‘안전주의를 지향하는 관료제’, ‘너무 정의로운 사람들’이 그것이다. 제4부에서는 ‘나쁜 교육’의 풍토에서 자라나는 비진실에서 벗어나는 해법과 방향을 모색하였다.
제2부~제4부에 등장하는 미국 이야기는 그대로 우리나라 현실에 적용해도 될 만큼 비슷한 면이 많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 사태 국면은 우리에게 정치적 극단주의에 따른 이슈의 양극화나 정서적 양극화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양극화 사이클). “안전하지 못하다”는 느낌(불편하거나 불안한 느낌)을 ‘정말’ 안전하지 못하다는 확증으로 삼게 하는(감정적 추론의 비진실: ‘늘 너의 느낌을 믿어라’) 교육, 양육 시스템(편집증적 양육)은 교사와 학생과 학부모 모두를 과잉 안전주의의 포로로 만들고 학교에 무사안일주의를 퍼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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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배이 선생님 사태가 악화한 핵심에 기계적이고 획일적인 매뉴얼 맹신주의가 자리 잡았다고 보는데, 지금 우리나라 교육계를 보면 단지 행동이나 업무 지침을 뜻할 뿐인 매뉴얼이 거의 모든 교육적 고민과 판단의 기준이 된다. 문제와 갈등을 해결하는 관료제적 수단인 매뉴얼이 교사나 학생들의 도덕적 판단력이나 독립적인 태도 형성에 방해물처럼 작용하 것이다(안전주의를 지향하는 관료제).
피해자 의식 문화가 등장하기 위해서는 관리자 혹은 법률 전문가가 존재해야 하는 것이 선결 요건이다. 이들이 누군가의 설득에 넘어가 한쪽 편에 서서 개입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중략) 행정적인 해결책을 쉽게 구할 수 있고, 그런 도움을 요청하는 데 일말의 거리낌도 없을 때, 이것은 이른바 “도덕적 의존” 상태로 이어질 수 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문제를 점점 외부 권위자에게 맡겨 해결하게 되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른 형태로 갈등을 관리해나가려는 의향이나 능력은 위축돼 그 기능이 퇴화해버릴 수 있다.” (360쪽)
“덜 너그러운 세대와 편협한 사회”에서 탈피하기 위한 글쓴이의 해법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불편한 것들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선한 의도에서 시작한 개선이 역효과를 불러온 사례(땅콩 알레르기 사례)를 떠올려 보자. 아이들이 무슨 일을 자기 힘으로 할 수 있게 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양육, 교육 지침이다.
원문: 정은균의 브런치